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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인 문 학 상

현대시학 제15회 신인작품공모 당선작 / 김영식

by 솔 체 2015. 3. 10.

현대시학 제15회 신인작품공모 당선작 

 우화등선 

                          김영식


빗방울이 베란다 유리창을 붙들고 있다
간밤 어둠이 불륜처럼 슬어놓은 알들
둥근 발톱으로 수직의 절벽 움켜쥐고 있다
염낭거미가 잎 말아 만든 두루주머니 같다
실을 토해 제 몸에 감옥을 씌운 누에고치처럼
오글오글 모여앉아 변태를 기다리는 것들
점점이 찍어놓은 마침표 같은 그것들이 가슴에 조용히
날개와 몸통, 여윈 발을 묻고 있는 걸 본다
실핏줄 사이로 가늘게 들숨 날숨도 쉬면서
젖은 눈알을 염주처럼 굴리고 있다
밤새 추위에 떨던 입술 오물거리며 조금씩
빛알갱일 환약처럼 삼키고 있는,
눈가에 검은 눈썹달을 매단, 이글루 같은 입자들은
바람이 불면 꿈틀!
천 길 낭떠러지 아랠 굽어보기도 한다
수천의 꼼지락거림이 그린 한 장의 繪畵
이윽고 구름 사이로 태양마차가 내려오자
겨드랑이 밑 날개를 꺼내 일제히
어린 고양이 털 같은 공길 가르며
물나비떼가 공중의 산맥으로 훨훨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내 죽지에서 자욱이 날갯짓소리가 들려왔다 


 물꽃


냄비 속 물이 끓는다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다는 듯
흰 챠도르 두른 물의 분자들이 비등점까지 솟구쳐 오른다
물 갈피에 갇혀 있던 막막한 기다림들이 일제히
둥근 수면을 떠밀며 돌기하고
이제 막 옹알이를 시작하는 꽃몽오리들
푸르르푸르 새의 부리처럼 지저귄다
어둠 속을 고요하게 흐르기만 하던,
샘에 앉아 기껏 허공의 얼굴이나 비추던 그녀는
얼마나 목이 타는 말을
제 뼈 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것일까
간절한 것들은 모두 꽃이 된다고 물은 지금
최초의 설렘인 듯 최후의 결심인 듯
전심전력으로 피어나고 있다 몸속에
뿌리, 줄기를 감추고 있는 저 구름가계의 족속들은
더러는 수증기가 되어 천정까지 발돋움 한다
무수한 골짜기와 봉우리가 일어섰단 스러지고
흰 머리칼 쓸어 넘기며
젖은 입술 흔들어대며
가스레인지 위로 화르르 끓는 절정을 토해내는 그녀의,
뜨거운 혓바닥이 밀어 올리는 수천의 아우성들
태어나자마자 죽어버리는 무뇌아처럼 지금
세상에서 가장 짧은 생을 가진
슬픔이 무럭무럭 피어나고 있다

 

 

돌풍


시장 바닥에 노랗게 서서 누군가를 향해
고래고래 소릴 지르는 여자,의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격렬한 파동은 짧고 빠른 혀를 가졌다
천둥처럼 터지는 격음의 혓바닥들이
지느러밀 파닥거리며 좁은 골목을 헤엄친다
제 설움에 컥컥 목이 메다가
물간 생선 좌판 위로 거칠게 뿜어대는 시퍼런 적의
무엇이 또 혼자 사는 늙은 여자의 슬픔을 요동치게 했는가
향유고래 같은 여자의 숨구멍에서 솟구쳐 나온 울분들이
포목점이며 참기름집 처마를 쥐고 흔드는 동안
사람들은 소용돌이치는 분노를 무심히 바라볼 뿐,
몸 밖으로 뛰쳐나온 수만 개 말들이 수만 개
눈 부릅뜨며 집어삼킬 대상을 탐색한다 비칠비칠
애먼 시비의 가시권 밖으로 물러서는 사람들
을 집요하게 좇아가 어깨를 붙잡는 혀
삿대질하는 손끝에서 공기들은 하얗게 질린다
검은 비닐봉지를 흔들며 시장골목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억울한 허공의 멱살만 움켜잡던 말이
동굴 같은 입속으로 캄캄하게 삼켜질 때까지
질펀한 自轉을 스스로 멈출 때까지 시장은
잠시 오래 침묵한다 길바닥에 마구 흩어진 회오리를
주섬주섬 거둬들인 여자가 다시 좌판 앞에 쪼그려 앉는다
그래도 울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미처 수거하지 않은 몇 개의 혀가
지나가는 이들의 발뒤꿈치를 문다, 덥석


떠들썩한 식사


오래 기다리던 빗소리가
유리창떠들썩팔랑나비처럼 창을 두드리는
오후 두시의 강변뷔페 안
창가 식탁에 앉아있는 젊은 부부
힐끔거리며 건너오는 시선들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수화를 나누고 있다 남자는
아내의 빈 그릇 위에 부지런히 음식을 옮겨놓고
봉긋 배가 부른 여자는 웃음을 깨물며
나비머리 예쁜 고개를 팔랑팔랑 젓는다
남루한 날갤 파닥여 부지런히 필담을 건네는
두 사람의 소곤소곤 떠들썩한 말이 식탁위로
한낮의 고요 사이로 열대어처럼 헤엄쳐 다닌다
빈 들녘이 창가로 바짝 무릎을 당겨 앉는 동안
손바닥을 폈다 오므렸다
빙그르르 한줌 허공을 돌리기도 하는,
공중의 갈피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자음 모음이
쟁반 같은 가슴에 고봉으로 담긴다 어느새
키가 커진 노랑하늘말나리 실내를 기웃거리고
호기심으로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
잠시 밀쳐두었던 어떤 사소함을 생각하는 듯
창 안쪽으로 모여든, 빗소리보다 많아진
유리창떠들썩팔랑나비 떼 날갯짓
물비늘 같은 한나절이 지느러밀 파닥이고
무수한 파문 사이로 여름 산이 건너오고


북평* 물장수


북평 장날
단봉들길 물가장길을 마중물처럼 걸어가면
내가 모르는 아득한 순간에 한때
이 골목에 살 붙이고 살았다는 느낌이
북평약국, 북평참기름집이 빼꼼이
미닫이문 열고 오래 적적했던 안부를 묻는다
알 수 없는 시간들이 몸 안으로 흘러오고
아버지가 살았다는 북청을 나는 왜 이명처럼
북평으로 환청했던 것일까
정선더덕이며 농기구, 엿 좌판으로 떠들썩한 시장 한켠
담벼락에 기대 선 낡은 물지게, 나는
등태에 긴 막대길 가로댄 물통 가득
출렁거리는 골목을 담고 깔깔대는 아낙들 농담도 채우고
물이요, 물! 성냥갑 가게마다 한 동이씩
누비솜옷 같은 희망을 배달했을라나
북평이불집 북평옹기점 돌아 물지겐
적막한 아버지의 시절을 지나 두만강 건너
북간도로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을 휘적휘적 달려간다
천식처럼 쿨럭거리며 증기기관차는
만주 벌판으로 블라디보스톡으로 임시정부처럼 망명해가고
독립군 같은 짜장면 냄새가 등 뒤를 밟아와
어이! 물장수, 북평 물장수 더벅머릴 당기는,
그리움에 돌아보는 북쪽 하늘
쇠기러기 떼 출렁출렁 물밀 듯 날아간다



* 동해시 북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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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1960년 경북 구룡포 출생. 주소, 포항시 북구 홍해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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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구상나무의 요술장갑

 

 


                                정연희



붉은구상나무는 가지마다 눈장갑을 두툼하게 끼고 있다
자세히 보면 손가락 쪽이 뭉툭뭉툭하다
소복이 눈이 덮인 눈 장갑 속으로
끊어진 가지 뼈가 보이고
그 상처에 굳은살이 볼록하게 올라와 아문 것 같았다
상처에는 아직도 뜨거운 피가 들끓는지
소복이 덮어주는 눈의 온기에 감각이 살아난 듯
김이 오르곤 했다
언젠가 보았던 요술장갑이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낄 수 있는 만능장갑입니다
사내는 장갑을 꺼내 지하철 승객들에게 펼쳐 보이더니
손을 쫙 펴서 장갑을 끼었다
검지와 무명지 없는 손가락이 약간 아래로 쳐졌지만
장갑 다섯 손가락이 상처를 감싸자 멀쩡해졌다
그때도 나는 사내의 끊어진 손가락에
무언가 자라는 걸 보았던 것 같았다
그래서
만능장갑이 아니라 요술장갑이라고 생각했었다
붉은구상나무가 문득 양털 빛 요술장갑을
내게 내밀고 있다


달의 흔적


그날 낮달이 서쪽으로 기울고 있을 때
산언덕 층층나무 계단에서 흰 얼룩을 보았다
바닷물이 층층나무 계단 꼭대기까지 밤새 잠겼다 빠졌을까
소금기 같은 흰 얼룩이 생겼다
해안선 따라 모래사장에 그려진 파도 무늬처럼
층층나무 계단에 물거품 이는 파도 출렁이고 있다
언젠가 새조개 속껍질에서 저 층층계단의 파도 무늬를 보았다
부드러운 속살을 떼어낸 자리 양수물이 흥건했다
새조개의 들숨과 날숨 때마다 바닷물이 남긴 파도무늬였다
달이 바닷물을 따라 들어왔다 나가며
새조개 속살을 여물게 한 힘이다
내 어머니의 배에도 저런 파도무늬가 숨겨져 있다
초승달과 만월이 교대로 떠오르는 동안 겹겹이 생긴 주름에
파도무늬가 깊이 새겨졌다
층층나무 계단의 저 파도무늬는 생명을 가진 흔적
지난밤 한 생명을 층층나무 계단에서 잉태시켰다

다시 만월을 기다려야 할 시간이다


호랑거미의 역사책



호랑거미는 역사를 기록하는 史官이다
그는 가늘고 질긴 실로 짠 둥그런 천을 올리브나무 가지 사이에 내걸었다
씨실과 날실의 간격이 일정한 흰 비단 천이다
호랑거미가 그 천 위에 엎드려 史草를 쓰고 있다
물감을 찍어서 가는 세필로 깨알처럼 써내려갔다
햇살을 받은 글씨를 들여다보면 무지개 빛깔이다
중요한 일은 올리브 새순 같은 연두와 흰 물감을 듬뿍 찍어
굵은 글씨로 써놓았다
무슨 내용을 쓰고 있는지 궁금해서
고대 상형문자 같은 글씨를 해독하기로 했다
그 글씨에는 거미들의 오랜 역사가 낱낱이 적혀 있다
그의 조상 아라크네는 베를 잘 짜는 여인,
자만심에 여신과 겨루기를 하며 신들의 비행을 모조리 짜 넣었다
여신보다 천을 더 잘 짰지만 시샘을 받아 거미가 되었다
지금 저 호랑거미가 그 솜씨를 이어 받아 깨알 같은 글씨를 써내려간다
두루마리 천을 짜는 방법과 물에 젖지 않게 하는 방법이 쓰여 있다
저 호랑거미는 오랜 세월
천에다 조상의 업적을 기리는 서사시를 썼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그 내력을 기록할 것이다

줄을 슬쩍 흔들자 호랑거미와 눈이 마주쳤다
이제 호랑거미가 나와 겨루어 질긴 천 위에 내 일상을 속속 기록할 것이다
저 씨실과 날실에 내 비행을 새겨 넣을 것이다

 
그 산에 칼레의 시민들 청동상이 있다



그 산에 가면 '칼레의 시민들'이 청동상으로 서 있다
산길은 몇 미터 앞이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바로 눈앞의 나무만 보이고 그 나머지
나무는 형체만 희미해서 배경처럼 보였다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는 것 같았다
안개 낀 이른 봄날 등을 대고 무리 지어 서 있는 나무를 보면
나무들이 내게 걸어오는 듯 어슴푸레하다
안개 자욱한 산에서 나무들을 보면 '칼레의 시민들'처럼 보였다
두 손을 움켜쥐고 저벅저벅 앞으로 다가오는 나무
머리를 손으로 감싸 쥔 채 고뇌하듯 일그러진 나무
손에 열쇠를 쥐고 망설이듯 서 있는 나무
배경은 다 지워지고
굳은 결의를 다짐한 엄숙한 표정으로 나무가 내게 다가왔다
나무는 내게 말을 걸어왔다
함께 갈 거냐고 묻는 것 같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안개 늪으로 걸어 들어가는 나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직 겁이 많은 어린아이 같아 그 늪으로 따라갈 용기가 없다

 


붉은 소나무가 立春大吉 쓰고 있다


붉은 소나무가 병이 들었다
한 아름이 되는 그 붉은 몸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잎이 시들어 베어냈다
베어진 붉은 소나무가 제 몸에 글씨를 쓰고 있다
잘린 단면 그물코처럼 촘촘한 나이테 가운데부터
양쪽으로 한 획을 그었다
다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다 양끝으로 갈라지며 붓꼬리처럼 가늘어졌다
사람이 양팔을 벌리고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큰 大자가 맞다
立春大吉
봄을 기다리며 마음에 새기고 있다
붉은 소나무가 푸르던 제 몸의 기억을 복원하고 있다
입춘대길의 大자를 지금 막 써내려갔다
거칠게 잘려진 단면에 스스로 써놓은 큰 大자
아무래도 저 붉은 소나무는 큰사람이 되고 싶거나
집의 대들보가 되고 싶었나보다
병들어 일어설 수 없게 되자 다시 설 수 있기를
붉은 가슴에 大자를 새겨놓고 기다리고 있다

문득 내 손에 立春大吉을 써 주는 붉은 소나무의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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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희 충남 홍성 출생. 성신여대 국어교육과 졸업. 주소, 서울시 강동구 상일동.

 

[시 부문]

믿음직한 신인 둘을 내보내며


「우화등선」 등의 작품을 쓴 김영식은 대상을 투시하는 관찰력이 깊고, 그 대상을 시의 질서 속에 편입시켜 형상화하는 능력이 돋보였다. 「우화등선」에서 보여준 빗방울, 「물꽃」에서 그려낸 물방울, 「돌풍」에서의 혀 등은 사물에 대한 그의 치밀한 관찰과 유려한 상상력, 정치한 표현기교 등이 이미 신인수련을 잘 닦아왔음을 증거하였다. 「떠들썩한 식사」,「북평 물장수」 역시 일상적 삶의 풍경을 내면화해내는 작업이 믿을만한 수준에 와 있음을 알게 하였다. 연전의 최종심에서 그의 작품을 읽었던 기억이 그간 치열한 내공이 있었음을 짐작케 하였다.
「붉은구상나무의 요술장갑」을 쓴 정연희 또한 대상이 품고 있는 시적 함의를 잘 간파하여 이를 활달하게 상상하고 긴밀하게 조립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산언덕 층층나무 계단에서 발견한 얼룩이 바닷물의 파도 무늬가 되었다가, 다시 새조개 속껍질의 파도 무늬로, 어머니의 배에 새겨진 파도 무늬로 전환되는 뛰어난 상상적 비유를 보여준 「달의 흔적」, 그리고 베어진 붉은 소나무에서 존재의 아픔과 꿈을 찾아낸 「붉은 소나무가 立春大吉을 쓰고 있다」 등의 작품은 이 신인의 넉넉한 가능성을 신뢰하게 했다.
두 사람의 수상자 외에 「꽃잎 지는 시간」 등의 김지숙, 「입춘」 등의 신석강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 중 김지숙은 섬세하게 감각을 형상화시키는 능력이 돋보였다. 그러나 작품에 내향성이 강해 외연적 구체성이 떨어진 점이 못내 아쉬웠다. 신석강은 기교가 녹록치 않은 듯했다. 그러나 기교는 한 벌의 장식일 뿐, 개성적 표현력과 절박한 진정성이 작품에 힘이 된다는 점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며 다음 기회를 기다린다.
■ 이수익


깊이 있는 인식, 언어의 활력


응모자들의 시편들은 주류적 담론에 편승하기보다는 각자의 경험적 구체성을 언어예술로 승화하려는 의욕을 보여주었다. 예심을 거쳐온 시편들이라서인지 수준의 편차가 그리 심하지 않은 편이었다. 치열한 장인정신이 유감없이 발현된 시편들을 읽는 일은 언제나 그렇듯 즐거운 노동이었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 중에서 우리는 김영식, 김지숙, 신석강, 정연희 등 네 분의 시편들에 특별히 주목하였다. 이분들의 시편들은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읽기, 언어에 대한 자의식, 다양한 미학적 충동과 방향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주의와 괸심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하지만 그 가운데 심사위원은 생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과 시적 언어의 활력, 미래의 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김영식 씨와 정연희 씨를 당선자로 뽑기로 흔쾌히 합의하였다.

김영식 씨의 시편들은 사물에 대한 집요한 응시와 섬세한 관찰, 그리고 그 결과를 언어미학을 통해 생동감 있게 구현해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또한 주변부 삶의 음영에 대해 언급할 때도 그 절박한 정황을 직설적으로 토로하기보다 극적인 방법으로 제시함으로써 울림과 공감과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요컨대 그는 화자 우월주의가 흔히 빠질 수 있는 감정과잉의 함정과 위험을, 정황 개입에 대한 가치 판단을 유보하는 보여주기 방식을 통해 슬기롭게 피해갈 줄 안다. 여기에 언어 장악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정연희 씨의 시편들은 대체로 병치의 방법론에 입각한 것들로서 사물의 형상에서 인간 삶의 편재하는 원리나 법칙을 궁구하는 인식에의 깊이를 획득하고 있다. 병치란 확장된 비교로 서로 다른 것들끼리의 유사성에 대한 지각이란 점에서 비유의 원리나 연상의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발견의 눈이 없다면 불가능한 시적 자질이다. 인간과 세계 이해에 대한 통찰과 생각의 계기를 부여하는 것이 문학(시)의 오래된 주요한 역할이라 할 때 정 씨의 시편들은 이러한 시의 본분과 효능에 부합하는 충분한 덕목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신석강 씨의 작품들은 사물과 언어에 대한 예리한 감각과 발랄한 독창성이 돋보였으나 삶에 대한 농익은 인식과 깊이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이, 김지숙 씨의 작품들은 서정성이 돋보였으나 세계에 대한 발견과 표현에서의 독특한 개성의 발현이 다소 미진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당선자들에게는 축하의 인사를, 아깝게 다음으로 기회를 넘긴 이들에게는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 이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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