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시
견인지역 - 조정
병원 앞길이 소란했다
끌려가기를 거부한 여자를
용의주도하게 끌고 가는 남자처럼
견인차들이 줄줄이 차들의 멱살을 잡아챘다
이 많은 차들이 경고를 무시했다
여차하면 끌려가기 십상인 걸 알고도 모르는 척
적당히 거리를 잡거나
견디는 데까지 견디라는 말로 읽기도 했다
삼십 년을 견디어도 모자라는 셈이 있었다
이혼하는 날 아침에 쓰러져버린
남편의 엉덩이를 들고 기저귀를 갈며
여자는 한숨을 쉬었다
등 돌리는 자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면
이기게 되어 있다
되찾아온 차 운전석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내내
여자와 나는 구두 속에 든 발을 꼼지락거리며
벌금고지서를 읽었다
제 몫의 벌금을 내야 사는 일이 끝난다고 읽었다
벚나무는 연신 꽃을 떨어뜨려
땅에게 바치고 있었다
바다가 나를 구겨서 쥔다 - 조정
눈이 수평선을 지우고
바다가마우지 떼를 지우고 온다
소나무 숲을 지나 송림 슈퍼에서 뜨거운 커피를 산다
알루미늄캔 속에 출렁이는 바다
낡은 목도리를 두른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끊어진 길을 위해
낡은 자전거를 불태운다
딛고 올라가기에 인생만큼 부실한 사다리도 없다
많은 침묵을 풀어 물위에 내려놓은 사람들이 바다를 빠져나간다
굳이 떠나야만 했던 길을 되짚어 가는 동안
눈은 한정 없이 쏟아지고
출항을 포기한 집들은 문을 깊게 닫고 잠이 들 것이다
빈 탈의실이 문도 없이 떨고 서 있다
푸른 비치파라솔을 그려 넣은 옆구리에 한 사내가 오줌을 눈다
내가 그만 바다와 저 비굴한 기다림과
이 추위 속에서 길을 잃을 것만 같다
빈 캔을 주머니에 넣고
운동화를 벗어 털면
병든 시계바늘이 쏟아진다
엇갈린 바늘처럼 비명을 지르는 시계가 발바닥에 고인다
제 때 제 곳으로 가지 못하는 발을 위해 나는 발목을 불태워 버린다
거대한 냉기가 모래를 헤치고 엎드려
손을 내민다
조금 더 내리고 말 눈이 아니다
바다가마우지가 바다를 통째로 삼키고 올라온다
올라오지 않는다
바다가 큰 손으로 나를 구겨서 쥔다
이발소 그림처럼 - 조정
풀은 한 번도 초록빛인 적이 없다
새는 한 번도 노래를 한 적이 없다
해는 한 번도 타오른 적이 없다
치자꽃은 한 번도 치자나무에 꽃 핀 적이 없다
뒤통수에 수은이 드문드문 벗겨진
거울을 피해
나무들이 숨을 멈춘 채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지친 식탁이 내 늑골 안으로 몸을 구부렸다
밤이 지나가고
문 밖에 아침이 검은 추를 끌며 지나가고
빈 의자에 앉아
밖을 내다 보면
회색 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고 있었다
나는 다시 잠에 들어 두 편의 꿈을 꾸었다
풀은 흐리고
새는 고요하고
해는 타오르지 않고
티베트 상인에게서 사온 테이블보를 들추고
식탁 아래 몸을 구부렸다
자꾸만 어디다 무엇을 흘리고 오는데
목록을 만들 수조차 없었다
허둥지둥 자동차를 타고 되짚어 가는 꿈은 유용하다
탱자나무 가시에 심장을 얹어두고
돌아온 날도
나는 엎드려 자며 하루를 보냈다
삶이 나를
이발소 그림처럼 지루하게 여기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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