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솝씨의 행방 1
이홍섭
나무들이 허공 속으로 양팔을 쭉 뻗어올리자
후두둑 단추들이 떨어진다. 겨울이 들켜버리는
순간이다. 갑자기 양파 속처럼 눈이 시려온다
몸이 무거워진 것일까. 한 발을 떼어놓을 때마다
보도블록 한 장씩이 달라붙는다. 오래 전에 버린 질문처럼
안간힘을 다해 척척 달라붙는다
어쩌면 내 기억은 잘못 익은 유산균 음료 같은
것인지도 몰라. 그 속에 가느다란 빨대나 처박고 사는
나는 병든 짐승인지도 몰라. 빨대를 냅다 던져버리고 달아나면?
날아가는 새들의 발이 보인다. 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보도블록 한 장씩을 양발에 꿰차고 바람을
거슬러올라간다. 그들이 불끈불끈 솟아올랐음을
나는 안다. 그들은 어느 숲속에다 저들의 길을 내고 있는
것일까
여기저기서 나무들이 양팔을 뻗어올린다. 저들의
뿌리는 너무 깊게 박혀 있다. 벌받는 아이처럼
손을 올릴 때마다 후두둑 단추들이 떨어진다. 단추들을
주워들고 걷기 시작한다. 버릴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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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 강원도 강릉 출생. 1990 <현대시세계>로 등단. 1998 시집 <강릉, 프라하, 함흥> 출간
1998 <시와 시학 젊은 시인상> 수상. 2000 <문화일보>신춘문예 평론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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