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인 문 학 상

2011년 격월간《유심》 5. 6월호 신인추천작품 당선- 엄계옥

솔 체 2017. 8. 10. 13:16

2011년 격월간《유심》 5. 6월호 신인추천작품 당선- 엄계옥

 

                                           심사위원- 김기택. 공광규

 

 

 

허기를 현상하다 외 4편

엄계옥

 

찬거리로 사온 자반고등어

고등어 눈 속에 내장된 필름 한 컷

물로 걸러내면 찜통에다 얹는다

뽀얗게 물오른 살에

고춧가루 앉히고 열을 가하면

계절의 두께에 갇혀 있던 물기

수증기를 타고 품어져 나온다


집집마다 모내기가 들썩이던 들녘

봄 열기가 비등점에 닿을 무렵

들밥 머리에 인 아낙의 실루엣에

흙살을 털어내던 종아리들

윗논과 아랫논이 잠깐씩 쉬는 사이

물때 낀 종아리들 앞으로

하나씩 건네진 고등어 토막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눙쳐 놓았다

 

산도라지 취나물만으로도

장딴지에 온통 푸른 빛이 감돌던 시절

고등어토막, 나뭇잎에 살포시 싸여

짚으로 한 겹 더 여민 날렵한 포즈로

저마다 저녁 밥상에서

주린 입에 들 순간을 기다리던

잘 쪄진 고등어를 입안에 넣는다

세월의 증발을 가늠한 조리개에

물컹하게 현상되는 옛 말

볼 가득 허기 배에 문 봄

흑백으로 인화되는 허기 한 줌

 

풍경

 

도원으로 망명을 꿈꾼 날

명치끝에 밀쳐둔 골굴사를 꺼냈지요

화선지 위로 파르르 떠는 산몽화

구깃구깃 접혔다 펴진 길을 따라

골굴사 뜨락에 피어올랐지요

산문에 섰던 진돗개

속세를 배웅하고 돌아서면

청춘의 끓는 피 돌탑에 새기듯

목탁은 토닥토닥 제 빈 속 다독입니다

층층이 굴곡진 계단을 끌어안은 동백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했다나요

마애여래좌상이 그려놓은

한 폭 풍경화로 걸린 골굴사

도회로 빠져나온 다람쥐의 족적을

서둘러 봉인한 채

산허리 뼈마디 골-골 문양들

제각각 환하게 내걸었습니다

참꽃 속에 살던 어린 부처

아장아장 입안에 들어

우주 밖을 배회하던 한나절이었습니다

 

 

매미집

 

태풍 매미가 마지막으로 다녀갔어도

정선군 여량 아우라지에

그 시절 풍운아는 돌아오지 않았다

벌거벗은 웃음이 흥청대던 저잣거리

휑한 표정만 짓고 있다

한때 석탄산업의 활기로 호시절 만났던 광부와 매미들

적막에 싸인 산하 그토록 요란하게 뒤졌던가

그을린 물낯끼리 만나지 않고

석탄가루가 날지 않으면서부터

광부와 매미들은 광속으로 사라졌다

빈 집엔 왕거미만 분주히 오갔다

두어 평 남짓한 허물에

씨근거리던 근육과

분홍빛 레이스로 찰방이던 날갯짓

구구절절 뽑혀진 아라리 구음

노쇠한 창틀에 끼인 채 쿨럭인다

음양이 만나야 어우러진다는 아우라지 구절역

그 닫힌 문틀 앞에서

한 쌍의 여치가 교미에 열중이다 

상기된 얼굴로 매표소를 빠져나오면

레일바이크가 발기된다

빈 집을 향해 힘껏 가한 팽창

조용하던 마을이

발정 난 레일바이크로 인해 시끌벅적해진다

 

 

서어나무

 

실버 요양원 정원에

속이 텅 빈 채 비스듬히 누운 서어나무

휘어진 다리 부르튼 힘줄로

그렁그렁 수분 끌어올리느라 비틀대자

정작 내 몸에서 축축한 여자가 빠져나온다

영안실 안쪽 벽면에 누운

일백 오십 센티 불강아지 닮았던 그 여자

앙다문 눈, 생의 발악까지도

찌든 냄새들이 곧추세우고 있었다

스스로 거룩한 몸 경배라도 하듯

온몸으로 뿜어내던 지린내

 

뿌연 황사가 맨살 데쳐도

층층이 뭉개진 이파리들 건조한 생의 내력을 훑어댔다

아들 하나 얻으려고 한 생 시장 아귀로 살더니

요양원 가는 날 입적이니 이게 호상인 게지

애끓는 건 영정 앞 음식을 향해 달려 든 몇 마리 파리뿐

되돌아간 요람에 울음보 헐 듯

풀었다 감기를 반복하던 장송곡

 

휘 늘어진 가지로 앙상한 관절 스스로 싸안은 저, 서어나무

불그레 새순에다 봄을 게워 놓고 있다

 

 

상처 냄새

 

팔순의 몸을 씻기다

오래전에 영면한 상처와 직면한다

못 볼 걸 본 것처럼 쭈뼛 일어서는 동공

구겨지고 어긋난 골격들

구부정하게 돌아앉는 순간에도

감추고 싶었던 신음소리

일그러진 몸을 비누로 씻어내고

머리를 감길 즈음 불현듯 다가서는 기억

때론 기억이란 환영을

진실로 착란하기 일쑤였다

악동이었을 거야,로 주춤거리는 사이

손가락 끝이 먼저 당도해 버린

움푹 파인 분홍빛 묏자리

통증이 일시에 전신을 습격해온다

고스란히 수장되어 있던 몸의 침묵

득달같이 그날을 재현하고 있다

등덜미 삭아 내린 팔순의 몸

상처에 속수무책 가격당한 줄도 모르고

젖은 흉터에다 겹겹 적박을 쌓고 앉았다

다섯 살 그 여름의 흔적

먼 산 그리메에 으스으스 깔리던 침울 너머

폐부 깊숙한 멍으로부터 피부 표층까지

오소소 와 닿는 상처의 냄새

얼른 듬성한 머리카락으로 상처를 덮는다

까마득한 시간의 사슬에도

상처만은 죽지 않고 그날로 산다

철옹성인 몸 안에다 울음보를 장전한 탓에

 

상처에선 늘 무덤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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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계옥/ 경북 울진 출생.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울산문인협회, 울산수필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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