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참고서재

문정희의 「쓸쓸」감상 / 권혁웅

솔 체 2017. 12. 6. 15:34

문정희의 「쓸쓸」감상 / 권혁웅

 

 





쓸쓸   

 


  문정희 (1947~ )

 

 





요즘 내가 즐겨 입는 옷은 쓸쓸이네

아침에 일어나 이 옷을 입으면

소름처럼 전신을 에워싸는 삭풍의 감촉

더 깊어질 수 없을 만큼 처연한 겨울 빗소리

사방을 크게 둘러보아도 내 허리를 감싸 주는 것은

오직 이것뿐이네

우적우적 혼자 밥을 먹을 때에도

식어버린 커피를 괜히 홀짝거릴 때에도

목구멍으로 오롯이 넘어가는 쓸쓸!

손글씨로 써 보네 산이 두 개나 위로 겹쳐 있고

그 아래 구불구불 강물이 흐르는

단아한 적막강산의 구도!

길을 걸으면 마른 가지 흔들리듯 다가드는

수많은 쓸쓸을 만나네

사람들의 옷깃에 검불처럼 얹혀 있는 쓸쓸을

손으로 살며시 떼어 주기도 하네

지상에 밤이 오면 그에게 술 한 잔을 권할 때도 있네

그리고 옷을 벗고 무념(無念)의 이불 속에 알몸을 넣으면

거기 기다렸다는 듯이

와락 나를 끌어안는 뜨거운 쓸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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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쓸쓸은 쓸쓸하기도 하지. 여기에 쓸쓸 종합선물세트가 있네. “삭풍”이 데려온 쓸쓸은 ‘쌀쌀’맞고, 혼자 먹는 밥과 커피는 ‘슬슬’ 넘어가는 법이 없지. 거리에는 마른 가지 ‘쓸리듯’ 발을 끌며 걸어가는 이들 천지네. 쓸쓸은 옷에 검불이나 거‘스러’미처럼 묻어 있고, 술 한잔에 자기 얘기를 ‘술술’ 풀어내기도 하지. 자려고 이불 속에 들어가면 쓸쓸이 와락 ‘쏟아’지네. 쓸쓸은 ‘ㅆㅆ’처럼 첩첩산중이고 ‘ㄹㄹ’처럼 구불구불하네. 마음에 샌드페이퍼 문지르는 소리가 이럴 것이네. 마음의 ‘찰’과상, 그게 쓸쓸의 정체였던 거네.

 

 


권혁웅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