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 명시들
검은 신이여 / 박인환
솔 체
2019. 7. 2. 07:32
검은 신이여
박인환
저 묘지에서 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저 파괴된 건물에서 나오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검은 바다에서 연기처럼 꺼진 것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내부에서 사멸된 것은 무엇입니까.
일년이 끝나고 그 다음에 시작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전쟁이 뺏어간 나의 친우(親友)는 어디서 만날 수 있습니까.
슬픔 대신에 나에게 죽음을 주시오.
인간을 대신하여 세상을 풍설(風雪)로 뒤덮어주시오.
건물과 창백한 묘지 있던 자리에
꽃이 피지 않도록.
하루의 일년의 전쟁의 처참한 추억은
검은 신(神)이여
그것은 당신의 주제(主題)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