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 명시들

바다의 층계(層階) (외1 편)/조향|

솔 체 2019. 7. 6. 08:34

바다의 층계(層階)

조 향



낡은 아코오뎡은 대화(對話)를 관뒀습니다.

-- 여보세요!

<뽄뽄다리아>
<마주르카>
<디젤ㆍ엔진>에 피는 들국화.

-- 왜 그러십니까?

모래밭에서
수화기(受話機)
여인(女人)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비둘기와 소녀들의 <랑데ㆍ부우>
그 위에
손을 흔드는 파아란 기폭들.

나비는 기중기(起重機)의
허리에 붙어서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

 

 

Episode

조향


열 오른 눈초리, 하잔한 입 모습으로 소년은 가만히 총을 겨누었다.
소녀의 손바닥이 나비처럼 총 끝에 와서 사쁜히 앉는다.
이윽고 총 끝에선 파아란 연기가 몰씬 올랐다.
뚫린 손바닥의 구멍으로 소녀는 바다를 내다보았다.

-아이! 어쩜 바다가 이렇게 똥그랗니?

놀란 갈매기들은 황토 산태바기에다 연달아 머릴 쳐박곤 하얗게 화석이
되어 갔다.



*** 시인소개---조향. 1917 - 1984. 경남 사천 출생. 본명은 섭제, 니혼 대학 상경과
수학. <매일신보> 신춘문예로 등단(1941)하여 동인지 <노만파>
<일요문학>을 주제했으며 <후반기> 동인으로 참여했다. 그는 시에 외래어를
대담하게 도입하고, 종래의 산문적 설명적 요소를 철저히 배격하여
초현실주의 계열의 시풍을 확립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