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 명시들

정념(情念)의 기(旗) /김남조

솔 체 2019. 7. 13. 21:32

정념(情念)의 기(旗)

김남조



내 마음은 한 폭의 기
보는 이 없는 시공에
없는 것 모양 걸려 왔더니라.

스스로의
혼란과 열기를 이기지 못해
눈 오는 네거리에 나서면

눈길 위에
연기처럼 덮여오는 편안한 그늘이여,
마음의 기는
눈의 음악이나 듣고 있는가.

나에게 원이 있다면
뉘우침 없는 일몰이
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 가는
그 일이란다.

황제의 항서와도 같은 무거운 비애가
맑게 가라앉은
하얀 모래벌 같은 마음씨의
벗은 없을까.

내 마음은
한 폭의 기.

보는 이 없는 시공에서
때로 울고
때로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