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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 은 시 와 글

성찬경 / 추사(秋史)의 글씨에게

by 솔 체 2014. 10. 7.

추사(秋史)의 글씨에게

성찬경



몸통을 틀며 꼬리를 튕기며 하늘을 찢는 비늘 돋친 용(龍).
시기하는 눈알하고 천 길 낭떠러지를 뛰며 오르내리는 성난 호랑이.
허나 이젠 용(龍)이 너에게 늘어져서 힘을 빌린다.
너에게 근육(筋肉)을 빼앗긴 호랑이도 더는 뛰지를 못 하는 병신이다.

어느 천둥벌거숭이가 너의 모험(冒險)을 겁없이 바라보랴. 어느 제왕(帝王)의 횡포가.
어느 미치광이가. 어느 귀신(鬼神)이 너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흉내내랴.
비단을 吐하는 누에의 솜씨보다도 쉽사리 네가 마구 뿌리는 그 절묘(絶妙)한 멋을
어느 제비의 비상(飛翔)이. 어느 선녀의 너훌거리는 옷자락이 한 번인들 지녀 왔으랴.

너의 주춧돌도 기둥도 대들보도 그 위에 박힌 온갖 잔 못까지도
모두가 山 위에 제멋대로 뒹구는 무심한 광물(鑛物)처럼 스스로의
온통 온전한 모양과 무게에 매혹(魅惑)되어 깊은 잠 속에 가라앉는다.
그러면서도 하늘의 성좌(星座)처럼 어김없이 서로의 자리를 눈뜨고 지킨다.

규우브니 훠어브니 하는 이십 세기의 회오리바람이 너로 하여 비롯된다.
데포르마숑이 너로 하여 기계(機械)다운 기계(機械)가 된다. 너로 하여
피라미드처럼 쌓인 울적이 무산(霧散)한다. 팽창한 자의식(自意識)이 작열(灼熱)한다.
벽에 밴 오랜 곰팡내가 가신다. 해풍(海風)이 밀려온다.

무슨 슬기가 야릇하게 홍소(哄笑)하는 너의 표정(表情)의 뜻을 샅샅이 풀어낼 수 있으랴.
불순(不純)을 산산이 바수는 무슨 치도곤(治盜棍)이 너처럼 무자비하랴.
너를 키운 한국(韓國)이란 물, 한국(韓國)이란 땅, 한국(韓國)이란 바람은
너의 천둥 같은 나래 소리로 해서 길이 멀리 떨칠 자랑을 간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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