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시인세계 신인상 당선작
개나리꽃이 피었습니다 외 4편/이 임 숙
눈 많은 나에게 그 눈 다 감으라 하시더니 그 눈 다 감은 채로 세상을 읽다 보면 동지섣달
찬바람 속에서도 견딜 만하리라 하시더니 마음 독하게 먹지 않고는 눈조차 마음대로 감지
못하리라 하시더니 눈 많은 내가 아직도 나를 못 믿어서 샛노란 헛구역질을 삼켰더니 창백
한 햇살들 몸 풀러 다녀오고 철없이 와글와글 들끓는 세상 말 많고 탈 많은 세상입니다 한
눈 슬쩍 떠 보세요 아뿔싸, 벼랑 끝까지 뒤집어지는 하늘 까슬까슬 머리털 곤두서는 나락입
니다
눈 부릅떠도 한 세상이더이다 세상살이도 이제 알 만큼은 알았고요 하루아침에 바뀌는 세상
은 아니겠지만 개나리꽃 환하게 피었습니다 꽃 핀다고 다 꽃이 되나요 마음 다 주지 않고
피지 못할 꽃들만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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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들
양파 사 들고 집에 오는 동안
손바닥에 붉은 자국이 생겼다
삶이 주리를 튼 흔적이라나?
비닐 끈에 묶여 있는 양파자루를 열었더니
인질 같은 여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네
벌겋게 드러내놓은 어깨 위에
우두자국 선명한 여자들
아 놔, 속없이 살다보니
모서리도 없고 알맹이도 없고
드잡이만 하느라 엉클어진 삶이
뭔가 알고 있다는 냄새를 풍기며
비좁은 그물망 속에서 내 어깨를 툭툭 치네
근본은 하난데 뿌리는 있으나마나
실속도 못 챙기고
쯧쯧, 혀 차는 소리도 들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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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멜무지로
돼지가 하늘을 난다
분홍 돼지가 공장에서
곧 터지려는 웃음을 참는다
당신 몇 살이야?
얼마 안 먹었어
꽃분홍 한창인데
돼지 같으니라고
돼지가 튄다
웃는 돼지 튄다
만 원짜리 몇 장 물고
가로 세로로 튄다
한물 간 돼지가
새로 산 기계 앞에서 웃는다
선반기계도 밀링기계도 굽어 살피시사
쇠만 깎게 하시고 별 탈 없게 하시고
꽃필 만하니까 바람도 불지
비슷비슷하거나 아주 다르게
살거나 죽거나 아무것도 아니거나
세월이 밥 먹여 준다고
당신 몇 살이야?
쇳가루만 십 수 년짼데
기계가 손가락을 먹어버린 세월을 합쳐도
아직은 청춘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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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바닥과 바닥 사이에 틈이 있다
촘촘한 타일 바닥에 구두굽이 끼었을 때
어금니 깨물어 봤자
허깨비 같은 낮달만 민망하구나
옴짝달싹 못하는 죽사발 같은 나
그 틈에 끼어서 구두를 벗는다
구두 한 짝 낚으려고
허방 저수지에 낚싯대라니
눌어붙은 껌 자국에도 아랑곳없던
바닥이 반쯤 들려서 파닥대네
사방팔방으로 뚫린 게 길인데
이 길이 다 파닥댄다고 쳐
오호라 빡센 길을 쥐고 흔드는
사실적이고 우호적인 이 바닥
구두 굽에 이빨자국쯤 우습겠지만
현실은 그 바닥에 숨어 있는
내숭을 좋아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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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기나무
독일어 신학서적에 눈 찔리는 봄
당신은 빤한 이치를 현란하게 말씀하시는군요
내가 나눈 빵은 조그맣고 배고팠어요
오병이어의 기적을 바라던
핏기 없는 군중들을 몰고 다니며
비루먹은 짐승 같은 날들을 바라보았죠
읽어도 읽어도 납득이 잘 안 되는 각주를
행간마다 달아두고 오오 핑크빛 슬라이스
당신에게 입술을 내어주던
탱고의 밤을 기억하나요
생인손 앓는 가지마다
부스럼 같은 꽃이 피었죠
그런데 당신은 누구인가요
한 번도 본 적은 없는데 낯이 익어요
애스터리스크(Asterisk),
자홍색 꽈리 같은 심장을 열면
터질듯이 부풀어 오른 당신이 보이죠
스티로폼 알갱이 같아서
불면 훅 날아갈 듯하지만
쉽게 시들지 않아 녹록하지도
낯설지도 않은 당신이라는 꽃이 피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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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이 전부 나사다 외 4편/하 린
하청에 하청을 거듭할수록
본체의 중심에서 멀어지는 사내들이
자취방에 모여 라면에 소주를 마시며
음란비디오를 보던 밤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욕이 나온다
씨발로 시작해서 좆도로 끝나는 환각제 같은 배설물이
밤하늘 가득 사정되고 서러운 별들은 촘촘해진다
매혹적인 망사스타킹의 여자
아! 신음소리까지도 친절하다
더 이상 체위는 신선하지 않고
떠난 애인들만 머릿속에서 지쳐간다
그렇게 욕구불만의 밤은 섣부른 발기로 졸아들고
꿈속에선 CF 속 여자 배우와 자동기계가 되어 섹스를 한다
에어컨을 선전하며 바람을 매번 일으키는 인기 절정의 여자
그녀가 재생시키는 웃음의 값은
이십 년 동안 결근 한 번 안 하고
나사를 박아야 하는 질긴 시간의 값이다
하루 종일 이천 개도 넘는 수나사가 암나사와 만난다
나사들은 화려한 디자인에 갇혀 죽었고
생각은 모두 단순화되어 규격 박스 안에 담긴다
더러는 조인 나사를 풀고 싶어 떠났던 녀석도 있다
조금 더 안쪽의 중심부품으로 살아 보겠다고
차선을 자꾸 변경하다 다시 아웃사이더로 밀려난
옥탑방 구석에 버려진 소주병 같은 녀석들
그 녀석들 다 돌아와 라면에 소주를 마시고 포르노를 본다
온몸이 전부 나사인 세상을 향해 울부짖는 청산가리 사내들
신나를 들이붓고 싶은 밤을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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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를 접다
꼭 생리하는 날 물을 준다 건망증에 걸린 후
물 주는 날을 일일이 맞출 수 없는 여자
한 달에 한 번 산세베리아에게 하혈을 권한다
물받이로 내려온 건 30일 동안 쌓인 욕망의 파편일까?
정해진 양만큼만 받아들이고 뱉어내는
식물의 본능 앞에 여자는 배신감을 느낀다
전자파에 취한 몸으로 만월滿月을 기다렸던 산세베리아
건조한 언어만 되풀이하는 TV 옆에서
행복과 불행의 조건을 드라마로 세뇌당하고 있다
여자에게 불필요한 정보를 뉴스가 전한다
일정한 주기로 찾아왔던 남자의 행방은 알 수 없고
지독한 황사가 곧 덮쳐올 거라고 주절댄다
늘 가슴 속에 거대한 설계도를 품고 있던 남자는
정밀한 기계처럼 움직이며
사랑도 오차 범위 안에서만 허용했다
이 화분 좀 맡아 줘 꼭 찾으러 올게
남자의 다짐은 짧은 간결체였다
폐경기에 접어든 엄마가 욕을 하고 갔지만
여자는 엄마의 싸구려 파마약 냄새에 더 화가 났다
목 안에서 모래 바람이 소용돌이쳤고
산세베리아는 끝내 꽃으로 둔갑하지 않았다
이파리 끝이 뾰족하게 핏대를 세운다
달의 피를 모조리 마셔버린 기세로
하늘을 향한 안테나가 되어 주려나?
아주 조금씩 달이 날개를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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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가운에 대한 기억
질문 따윈 던져서는 안 되지요
낯선 사람에게 알몸을 다 맡긴 배짱 좋은 노인이
저승과 이승이 갈라서는 길목에서
먼 길 가다가 제
저 노인이 무슨 일로 1번 국도를 건너가려 했을까?
그런 구차한 몸 확인하러 오기 전에
모든 과정을 냉정하게 처리해야만 합니다
빈틈을 보이다간 울컥 두려움이나 역겨움이 올라와
자꾸 뒤돌아보게 되고 밤새 뒤척이게 되지요
급속 냉동으로 굳어진 몸을
마트에서 산 냉동 닭이라 생각하며 구석구석 닦아야 합니다
탄력을 잃은 몸매의 암컷이군요
검버섯을 잔뜩 피워낸 얼굴과 깡마른 손
볼품없이 힘줄만 튀어나온 발을 보니 고생깨나 했겠습니다
쪼글쪼글 정기를 다 내준 가슴을 보세요
오래 전 가동을 멈춘 폐공장이 같지 않습니까?
컴컴한 사타구니를 보니까 자식을 다섯 이상 낳았고
너무 일찍 영감을 떠나보낸 섹스의 흔적마저 희미하네요
갑자기 사고를 당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배설을 하는 겁니다
눈을 감지 마세요
사체 앞에 뻔뻔스러워져야 진짜 전문가가 되는 것입니다
휘거나 부러진 뼈를 다시 맞춰놓고
마지막으로 모든 구멍마다 솜으로 틀어막으세요
외떨어진 마을에서 농사나 짓는 과부댁 노인은 이제
일당을 지불받게 될 최고의 물건이 된 겁니다
사연도 없는 고사목이 된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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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이 있는 그림
1.
가까운 숲 속에 정신병원이 있다
병원의 불빛은 밤마다 야광찌처럼 빛나고
하루 종일 울거나 웃는 자들이 그곳에서 늙어간다
의사들은 영혼이 가장 맑아지는 시간을 골라
야생의 이미지로 가득 찬 비디오를 반복해서 틀어준다
동물의 왕국과 공룡대탐험을 보면
3D입체 게임을 즐기는 효과가 있다고 하던데
그들은 바보를 흉내낸 코미디 프로를 가장 좋아한다
그 때부일제히 소등을 하면 병원은 잠수함처럼 가라앉는다
터 소문은 산 아래 마을로 번져간다
눈깔 뒤집힌 짐승이 매미처럼 철창에 매달려 울부짖다
진정제를 투여받고 죽어 간다는 소리
간호원과 은밀한 거래를 하여 탈출한 짐승이
먹을 걸 훔치러 마을로 내려와
어린 아이의 심장을 파먹는다는 소리
두려운 소문이 조무래기의 베개 아래로 와서 웅성거린다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 이불 위
에 그려지곤 했다
2.
미칠 일을 처음 경험한 나이는 열일곱 살 때였다
친구 하나가 특이하게 양쪽 손목에 힘줄을 따냈다
붉은 반항심을 폭발적으로 토해 내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럴 거면 빨리 죽어버려
소리친 소녀는 전학을 갔고 한동안 교사들은 진지해졌다
뼛가루가 뿌려진 강물에서는 젖은 비명 소리가 자꾸 울렁거렸고
종일 강가에 앉아 빈 낚시 바늘만 꽂았다
하루는 외제차 한 대가 큰길을 지나 정신병원으로 빨려 들어갔다
여자아이가 코스모스를 잡으려고 차창 밖으로 금간 손목을 내보였다
손목이 금간 아이와 코스모스, 외제차가 잘 어울리는
그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낚싯대에서 묵직한 신호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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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추한 가족사 3
―유리상자
소읍의 쇠약해져 가는 학교 앞에서
유리를 팔던 어머니는 그 당시
틈을 가장 잘 이용하는 마술사였다
한동안 학교의 유리는 주기적으로 깨어졌고
보수적인 태엽만 돌리던 교장 선생의 훈계는
머릿속에서 이미 파열된 상태였다
어설픈 청춘들이 자해하듯 담뱃불을 자꾸 지졌다
날을 세우고 싶던 아이들은 틈 하나씩 만들고 사라졌고
어머니는 환상의 빈자리가 커지기 전에 새 유리를 끼웠다
포개진 유리 사이로 공업용 다이아몬드 칼이 지나가면
유리들은 모범생 흉내를 내며 일렬횡대로 갈라졌다
그렇게 틈의 배후엔 유리가 있었고
문을 열 때마다 위선僞善으로 가득 찬 어머니가 드르륵거렸다
직접 유리를 잘라 보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깨진 유리를 가지고
만취한 아버지를 매일 도려내는 일뿐이었다
화학 물질 가득한 신발공장에서 문득
유리 구두를 신고 날아오르고 싶다던
누이의 유언이 연서戀書용 편지지를 타고 날아왔고
에서 박제된 채 살아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더 이상 유리를 자르지 않았다
마네킹처럼 변한 내가 자라는 것을 거부한 채
어머니가 만든 쇼윈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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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준비된 수상자들
황 동 규
준비된 두 명의 수상자를 한꺼번에 내기로 했다.
하린의 「온몸이 전부 나사다」는 중심에서 멀어져 고되고 의미가 느껴지지 않는 작업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 삶을 그린 작품들 가운데 짜임새로 보나 울부짖음이 억제되어 흥치 있는 리듬이 된 말투로 보나 뛰어난 작품이다.
하청에 하청을 거듭할수록
본체의 중심에서 멀어지는 사내들이
자취방에 모여 라면에 소주를 마시며 (앞 3행)
이 말은 같이 동봉된 작품 거의 모두에 할 수 있으며, 그만큼 작품들의 수준도 고르다. 그러나 구도構圖가 미리 강하게 주어져 있어 개성이 자리를 넓히는 데 힘이 들 거라는 생각도 든다.
「양파들」의 이임숙은 개성이 돋보이는 시인이다.
양파 자루를 열었더니
인질 같은 여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네 (…)
아 놔, 속없이 살다보니
모서리도 없고 알맹이도 없고 (중간 6행)
그는 중간 중간 눙치는 재주도 눙치지 않고 견디는 재주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봉한 시들의 수준이 덜 고르고, 시를 멋있게 추상적으로 끝내려는 유혹을 벗어났다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개성이 그를 건져줄 것이라는 믿음도 든다. 이런 생각이나 믿음은 색인索引일 뿐이다. 진짜 신인은 이미 심사위원의 입김 밖에 살고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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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기의 시와 섬세함의 시
김 종 해
마지막 예심에 남은 사람은 모두 18명이었다. 18명의 응모작들은 그 나름대로의 수준과 기량을 갖고 있어 최종심에 남을 작품을 뽑는 데 품이 많이 들고 힘들었다. 선자들의 눈에 번쩍(!) 띄는 발군의 작품, 시를 읽는 기쁨과 즐거움을 함께 던져줄 <새로운 시인>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그래서 선자들은 심사 중에도 오랫동안 지루하게 읽다, 쉬다를 반복했다.
최종심에는 김택희의 「아직도, 가끔 그리고 자주」(외 10편), 이재영의 「공세리 바다 소금에 절인 말씀」(외 11편), 하린의 「온몸이 전부 나사다」(외 9편), 이임숙의 「개나리꽃이 피었습니다」(외 9편) 이상 네 명의 예비시인이 남아서 경합했다.
네 사람 모두 안정된 시 쓰기의 기량을 보여주었지만, 굳이 흠을 잡자면 김택희에겐 시적 대상과 감각이 해외여행의 풍물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고, 이재영에겐 「공세리 바다…」와 같은 환상적인 시의 좋은 면도 있지만 「국어 선생님」 같은 산문시의 파격이 시인의 재능을 의심케 하였다. 하린과 이임숙은 마지막까지 장시간 경합했다. 선자들은 심사를 하던 《시인세계》 사무실에서 나와서 자리를 옮겨 저녁식사를 하면서 토론을 했다.
최종적으로 선자들은 하린의 작품에서 보이는 ‘패기’와 이임숙의 작품에서 보이는 ‘섬세함’을 모두 수용해서 두 사람 모두 당선작으로 뽑는 데 합의했다. 이임숙의 「개나리꽃이 피었습니다」는 감각적이고 섬세하다. 시를 다루는 화법 또한 재미있고, 언어구사가 자유분방하다. 「에멜무지로」 같은 작품은 공장의 새로 산 기계 앞에서 고사를 올리는 장면이 시로 묘사되면서 시를 읽는 재미를 준다. 하린의 「온몸이 전부 나사다」는 거칠고 야성적이며, 남성적인 감각을 시화해서 보여준다. 다소 외설스럽기도 하지만, 절제되지 않은 감정의 카타르시스가 시로써 잘 분출되고 있다. 그에겐 시로서 숙성된 언어의 연마가 좀더 요구된다. <새로운 시인>으로 뽑힌 두 사람 모두 좋은 시인으로서의 대성을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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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과 체험 사이
이 숭 원
예심을 거쳐 올라온 18명의 작품은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눈길을 확 끄는 작품은 의외로 많지 않아서 당선작을 고르는 데 어려움이 컸다. 네거티브 심사와 포지티브 심사를 거쳐 네 편의 작품이 최종적으로 남았다. 그 중 개성이 다른 두 작품이 당선권에 올랐는데 몇 시간 동안 논의를 거듭해도 우열을 가르기 힘들어 두 작품을 모두 당선작으로 정하였다.
이임숙의 작품은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고 실생활의 체험을 기반으로 시상을 내면화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자루에 담긴 양파나 제물로 오른 돼지머리 같은 일상의 사물도 그의 시에 들어오면 독특한 어법에 힘입어 시의 윤기를 머금는다. 다만 시를 지탱하는 뒷심이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등단을 계기로 야성적 생명력을 얻게 되기를 바란다.
하린의 작품은 좌충우돌하는 야전군 하사관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시의 육체가 크고 몸짓이 활달하며 시야도 넓고 지구력도 있다. 거침없는 언변과 대담한 사유가 매혹적이다. 거기 섬세한 감각이 결합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이제 팽팽한 젊음의 발기상태를 정리하고 삶의 풍경을 관조하는 눈을 가질 단계에 이르렀다. 이재영의 작품과 김택희의 작품도 주목을 받았다. 앞의 작품은 시의 진폭이 넓게 퍼져 있어서 시선의 응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비해 뒤의 작품은 시야가 어느 영역에 한정되어 있어서 자신의 틀을 타파해야 하는 고비에 이르렀다. 정진과 노력으로 머지않아 좋은 결실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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