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주 '눈 내리는 내재율' 감상 _ 안도현
눈 내리는 내재율
김경주
뚜껑이 열린 채 버려진
밥통 속으로 눈이 내린다
눈들의 운율이
바닥에 쌓이고 있는 것이다
어린 쥐들의 깨진 이빨 조각 같은 것이
늦은 밤 돌아와 으스스 떨며
바닥을 긁던,
숟가락이 지나간 자리 같은 것이
양은의 바닥에 낭자하다
제 안의 격렬한 온도를,
수천 번 더 뒤집을 수 있는
밥통의 연대기가 내게는 없다
어쩌면 송진처럼 울울울 밖으로
흘러나오던 밥물은
그래서 밥통의 오래된 내재율이 되었는지
품은 열이 말라가면,
음악은 스스로 물러간다는데
새들도 저녁이면 저처럼
자신이 닿을 수 없는 음역으로
열을 내려보내는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
속으로 뜨겁게 뒤집었던 시간을 열어 보이며
몸의 열을 다 비우고 나서야
말라가는 생이 있다
봄날은 방에서 혼자 끓고 있는
밥물의 희미한 쪽이다
―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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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주 / 1976년 광주 출생. 2003년 대한매일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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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내재율'이라는 전대미문의 통사구조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뜰 필요는 없습니다. 뚜껑이 열린 밥통 속으로 내려 쌓이는 눈, 저녁에 내려앉는 새, 밥통 속에서 끓는 밥물, 이 세 가지 이미지의 병치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시입니다. 시인이 툭툭 던지는 이미지와 리듬에 그냥 몸을 맡겨볼 일입니다. 이 새로운 시인의 문법은 낯익은 것과 낯선 것 사이에서 긴장을 잃지 않고 한창 팽팽합니다. 그는 시적 생부와 계부 사이에서 갈등하는 동안 자신의 길을 만들어 냈습니다. 아무도 '닿을 수 없는 음역'을 어떻게 찾아가는지 지켜봐 주기 바랍니다.
2008.4.21. 문학집배원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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