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현대문학>신인추천작 _ 한세정
태양의 과녁 / 한세정
1
단 하나의 과녁을 위하여
새의 부리는 제 몸을 향해 자란다
2
나는 예고되지 않는 끝을 보기 위해
눈이 먼 사람의 눈동자를 기억한다
구름의 그림자가 눈동자를 덮을 때마다
내 몸에서 융기하는 산맥이 지평선 밖으로 윤곽을 뻗는다
바람의 파문波紋을 따라 빙산이 결빙되고
나의 윤곽을 구름이 관통한다
하여 나는 허공의 빗줄기를 수혈하는 자
온몸에 새겨지는 모반母班의 무늬들
그러므로 나는 오직 흔적으로만 기억되는 자
3
나에게는 아직 지워지지 않은
태양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나의 눈은 지금 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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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 안의 권총 / 한세정
귓속을 채우는 소리를 제거하라
나의 관자놀이는 나만의 것이므로
내 손 안의 권총은
몸 밖으로 열린 두 개의 귀를 관통할 것이다
총성은 유리벽을 뚫고
오후 네 시의 거리를 향해 울려 퍼질 것이다
탄환이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거리
당신의 뒤통수가 달아오르고
전신주는 수직으로 몸을 뻗는다
나의 목표는 관자놀이를 분해하는 것
관자놀이는 나를 위한 것이므로
과녁을 꿰뚫는 건 손을 가진 자의 자유이므로
망막을 찢고 들어오는 눈동자들을 몰아내라
내 손 안의 권총은
몸 밖으로 열린 귀를 사수하고 있으므로
권총에 대해 나는 여전히 승자이므로
당신의 관자놀이는 나의 과녁과 무관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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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당신과 나는 / 한세정
어쩌면 우리는 지구 반대편의 거리에서 서로의 흉곽을 읽어내는 가로수였는지도 모른다
궤도를 벗어난 행성이 지구 바깥쪽으로 꼬리를 감추는 순간
내 손 안에 장전된 탄환이 당신의 권총에서 발사되고
태양은 당신의 머리 위에서 명멸할 것이다
그때 내 눈에는 난간 위에 서 있는 눈먼 자의 눈동자가 스칠지도 모른다
당신의 내부를 관통하지 못한 지구 반대편의 태양 아래서
당신은 서서히 당신의 손 그늘 속으로 사라지고
나는 여기에서
바닥과 밀착되어가는 고양이의 호박색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른 위도와 경도에서 당신과 내가 던진 부메랑이 되돌아오는 시간
태양은 각기 다른 각도로 부메랑의 날을 재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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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이 날아오르는 시간 / 한세정
텅 빈 시소가 문득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순간
손에서 빠져나간 풍선은 유유히 하늘을 날아오르지
웅덩이에 고인 육중한 윤곽을 들여다보며
화면 속 코끼리가 마지막 눈꺼풀을 닫을 때
어린 코뿔소가 웅덩이를 빠져나온다
코뿔소의 뿔이 태양을 찌르는 어느 사바나의 오후
키 작은 처녀가 퍼렇게 싹이 난 감자를 삶아 먹고
문고리에 줄을 묶고 생사生死의 거리를 가늠하는 동안
햇빛 무섭게 쏟아내는 파란 웅덩이 속으로
풍선은 깃털보다 가볍게 제 몸을 투신 중이지
초원을 달리던 얼룩말떼가 감쪽같이 사라진 사바나
사자의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수풀 속으로 돌진한다
무거운 몸통을 힘껏 날려 끝끝내 허공의 점이 되는
사나운 것만이 지닐 수 있는 저 유연하고 가장 가벼운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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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하는 노파 / 한세정
태양이 맨질한 마당에
그림자를 널어놓는다
빛바랜 칫솔을 물고
노파는 주름진 입술을 오물거린다
거품을 문 입술은 지느러미보다 유연하다
칫솔이 움직일 때마다
헐렁한 소맷자락의 꽃들이 간들거린다
노파와 칫솔이 만드는 각도에 맞춰
마당 안의 사물들이 일제히 몸을 흔든다
마른 손등에 검버섯이 피어오르고
담 밑의 꽃봉오리가 조금씩 입을 벌린다
제 키를 훌쩍 넘는 그림자를 발끝에 달고
한 무리의 아이들이 달려나간다
양은대야 가득 경쾌하게
구름이 흘러간다
오래전 지붕 위로 던진 치아들이
뭉게뭉게 떠 간다
―《현대문학》2008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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