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그 결핍과 욕망의 풍경들 / 박남희
인간이 어머니의 자궁 문을 열고 나와서 일생을 살다가 무덤에 이르는 과정은, 집으로부터 집에 이르는 여정으로 비유될 수 있다. 어린아이가 태어날 때 울음을 터뜨리는 것은 집을 잃어버린 허전함 때문이고, 늙어서 무덤에 드는 일은 다시 잃어버렸던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 집은 스스로 안온함을 꿈꾸지만 금방 벽의 단절감에 답답해하기도 한다. 이러한 집의 이율배반적 특성은 집의 개방성과 폐쇄성 사이에서 길항하는 인간 욕망의 단면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집은 인간의 양면적 욕망을 대변해주는 가장 확실한 제유적 대상물이다.
빈집으로 바람이 부산히 출퇴근하는 동안, 오후가 조금씩 그늘을 입는 동안, 나뭇가지 끝에서 해체된 집들이 똑똑 물방울을 따먹는 동안, 막다른 골목을 노부부의 빈 수레가 걷어갈 동안,
버려진 목숨들이 서로를 보듬어 탑을 이루었다. 묻혀있던 봄 소매를 끌어당기며 노파가 쪼글쪼글 웃어 보인다.
백열등 아래 병아리 다리가 나오는 소리, 고드름이 몸을 내주는 소리, 유리벽 안에 붙잡힌 화분이 조용조용 나비문양을 그리는 소리, 가방에 햇빛을 가득 담고 개학식에 가는 아이들의 발소리,
노부부는 가슴을 들추어 소리를 꺼낸다.
가파른 골목 끝까지 번진 질기디질긴 겨울은 곧 그곳에서 철거될 것이다.
― 최형심, 「겨울은 철거를 기다린다」 전문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2008년 7-8월호)
최형심의 시는 겨울이라는 계절과 노인의 삶을 철거되는 집의 이미지에 연결시켜서, 자연과 인간의 삶이 어떻게 소멸되고 생성되는지를 섬세한 관찰을 통해 인상적으로 우리에게 전달해준다. 전체적인 시의 맥락을 살펴보면, 이 시는 빈집이 있는 철거촌에 사는 노부부의 삶을 겨울이라는 계절로 은유하고 있다. 철거촌은 이미 헐려야 할 운명에 놓인 집들이 존재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곧 헐려야 하는 노인의 삶과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1연은 빈집에 사람 대신 바람이 출퇴근하는, 오후의 그늘이 드리운 시각에 "나뭇가지 끝에서 해체된 집들"인 낙엽들이 떨어져 내려 마지막 물방울을 따먹고 있고, 막다른 골목으로 노부부의 빈 수레가 걸어가는 일련의 모습들을 '동안'이라는 병치적 시간의 이미지로 연결해 놓고 있다. 이러한 1연의 이미지들은 2연의 "버려진 목숨들이 서로를 보듬어 탑" 즉 집을 이루는 눈물겨운 모습과 병치되면서, 집을 중심으로 한 삷과 죽음, 소멸과 재생의 팽팽한 긴장관계를 보여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묻혀 있던 봄 소매를 끌어당기며 노파가 쪼글쪼글 웃어 보인다"는 진술은 소멸을 앞둔 생명의 눈물겨운 마지막 긍정의 몸짓으로 읽힌다. 노부부의 이러한 태도는 3연의 알에서 깨어나는 병아리와 고드름 떨어지는 소리, 화분에서 나비 문양의 새싹이 움트는 소리, 가방에 햇빛을 가득 담고 개학식에 가는 소리로 대변되는, 신생의 봄에게 기꺼이 겨울의 자리를 내어주려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기존의 헌 집을 철거하고 부단히 새로운 집을 짓는 자연의 생리와도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친자연적인 태도라고 할 만하다. 이처럼 인간의 삶을 포함하는 모든 자연적 삶은 집의 생성과 소멸의 반복적 순환 과정으로 해석된다. (……)
―《현대시》2008년 8월호 '월평'의 일부
--------------
박남희 / 시인. 199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폐차장 근처』『이불 속의 쥐』, 평론집 『존재와 거울의 시학』.
'문학 참고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백무산 '그대에게 가는 모든 길 ' 감상 / 김수이 (0) | 2014.11.20 |
|---|---|
| 고은의 시 '나무의 앞' 감상 / 유성호 (0) | 2014.11.18 |
| 고은에겐 누이 없고 그 바다엔 우체국 없네 / 안도현 (0) | 2014.11.18 |
| 김선우의 시 '목포항' 감상 / 김수이 (0) | 2014.11.16 |
| 낯선 생명으로 들어가보는 거야 / 안도현 (0) | 2014.11.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