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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목월시의 의경과 한시적 미감

by 솔 체 2014. 11. 24.

목월시의 의경과 한시적 미감


정 민




〈목차〉

Ⅰ. 머리말

Ⅱ. 목월시의 한시적 의경

Ⅲ. 지용과 목월

Ⅳ. 지훈과 목월

Ⅴ. 목월과 미당

Ⅵ. 맺음말




〈ABSTRACT〉




Jung, Min. 2008. The Mood and the Esthetic Sense of Mok‐Woel’s Poetry. The mood of Park, Mok‐Woel’s early poetry is surprisingly similar to the way of expression‍! in Chinese poetry. The poet delivers the meaning in a way of showing, not speaking directly. His early poetry, in which we see the structure of introduction, development, turn and conclusion with rhythm of 7 .5 meter, reminds of the quatrain with five Chinese characters in each line, of Wang‐Yoo of Chinese Dang dynasty. The most characteristics of Mok‐Woel’s early poetry are substantive description without a modifier, simplicity of structure and complete objectification having no subjectivity.

This study is to make a comparison of Mok‐Woel’s poems with Chung, Ji‐Yong’s, Cho, Ji‐Hun’s, and Seo, Chung‐Joo’s works which consist of Chinese poetry’s structure, a structure of introduction, development, turn and conclusion. It’s found that Park, Mok‐Woel made more clear objectification of image t! han Chung, Ji‐Yong, and his world of poetry is completely differ ent from Cho, Ji‐Hun and Seo, Chung‐Joo who infiltrate the subjectivity.

Park, Mok‐Woel’s early poetry is at the height which any other Korean poems have never tried to. And there is a deep sense of Chinese poetry on the basis of his early poetry. This study casts a question to the problem of viewing his poetry only in a way of modernity.




주제어 : Park, Mok‐Woel(박목월), Mood(의경), Chinese poetry(한시), Chung, Ji‐Yong(정지용), Cho, Ji‐Hun(조지훈), Seo, Chung‐Joo(서정주), Modern poetry(현대시), Modernity(모더니티).




*한양대 국문과 교수







Ⅰ. 머리말




청록파 세 사람 중에 한시의 정서에 가장 밀착되어 있는 시인은 단연 박목월이다. 대표작 〈윤사월〉이나 〈산도화〉, 〈청노루〉, 〈나그네〉 등은 보여주기 방식의 시상 펼침과 7.5조 기승전결 구성으로 이루어져 한시로 치면 왕유(王維) 풍의 5언절구에 가깝다. 이 글은 목월 초기시가 보여주는 이러한 한시적 의경(意境)과 미감의 소종래를 살피는 데 목적이 있다. 군더더기 없는 명사형의 서술, 기승전결의 깔밋한 구조, 주관이 끼어들 틈이 없는 객관화는 상대적으로 주관적 침윤이 강한 지훈시나 아예 산문시의 영역으로 뛰쳐나간 혜산 시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격을 선보인다. 목월시의 이러한 성취는 확실히 이전의 한국 현대시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기축(機軸)을 열어 보인 것이었다.

청록파 세 사람의 초기시에는 정지용의 그림자가 일정 부분 짙게 드리워져 있다. 특히 1930년대 후반 지용 시가 보여주는 동양적 서정으로의 선회와 이른바 사물시, 자연시로 일컬어지는 객관 추구의 시세계는 이전 시기 서구 모더니티 지향의 시세계와 일정한 경계를 긋는다. 지용시의 이러한 새 경향이 즉각적인 반향을 일으켜, 도출된 것이 바로 《청록집》의 시세계다. 그중에서도 목월시는 지용이 선창(先唱)한 새 목소리에 적극 호응하면서 한층 더 높은 단계로 끌어올린 공이 크다.

이 글에서는 의경론적 관점에서 똑같이 기승전결의 한시 구성으로 이루어진 지용과 목월, 목월과 지훈, 목월과 미당의 작품을 대비적으로 읽어, 목월시가 도달한 지점과 그것이 갖는 시사적(詩史的) 의미를 짚어보기로 하겠다.1)




Ⅱ. 목월시의 한시적 의경




목월의 초기 대표작으로 흔히 〈나그네〉․〈산도화1〉․〈청노루〉〉․〈모란여정〉․〈불국사〉 같은 작품을 꼽는다. 이들 작품은 〈불국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7.5조의 가락을 바탕으로 2행 1연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기승전결의 결구를 갖추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목월의 초기시가 한시의 기승전결 구조에 근간을 두고 창작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청록집》에 수록된 15수 중 〈임〉․〈윤사월〉․〈삼월〉․〈청노루〉․〈갑사댕기〉․〈나그네〉․〈산그늘〉등 7수가 모두 4연체의 기승전결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2) 《산도화》의 〈산색〉․〈불국사〉․〈산도화1〉․〈산도화2〉․〈모! 란여정〉․〈해으름〉․〈임에게1〉․〈임에게2〉․〈임에게4〉 등도 어김없이 기승전결의 짜임을 놓치지 않았다.

목월의 초기 대표작들이 한결같이 보여주는 한시적 구조는 목월 초기시의 미학을 가늠하는 매우 중요한 자질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구체적 작품 대비에 앞서 이 부분에 대한 논의를 앞세우기로 한다.

본고에서 한시적 의경이라 함은 이미지의 제시를 통해 말하기 방식이 아닌 보여주기 방식으로 전달되는 표달 방식을 뜻하는 제한적 의미로 쓴다. 그것은 불착일자(不著一字) 진득풍류(盡得風流), 즉 한 글자도 설명하지 않았는데 할 말은 이미 다 해버린 경계다. 이때 지수술경(只須述景), 정의자출(情意自出), 단지 경물만 묘사했는데도 시인의 정서는 절로 다 드러난다. ‘산단운련(山斷雲連)’, 산은 끊어졌건만 구름은 이어지듯, 시인은 토막토막 단어만 이어놓았어도 끊어진 부분은 구름이 채워 이어진다. 그 결과는 언유진이의무궁(言有盡而意無窮)이다. 말은 이미 끝났는데 남는 여운이 끝없다.

한시의 의미 표달 방식에 대해 살펴보자. 원나라 때 시인 마치원(馬致遠)의 사(詞)작품인 〈추사(秋思)〉다.




앙상한 등나무

늙은 나무

저물녘 까마귀

작은 다리

흐르는 물

인가(人家)

옛 길

가을 바람

비쩍 마른 말

석양은 내려앉고

애끊는 이

하늘 가에.




枯藤老樹昏鴉

小橋流水人家

古道西風瘦馬

夕陽西下

斷腸人在天涯




처음 3구까지는 서술어가 하나도 없다. 제 4구에 이르러 처음으로 ‘내려앉고’란 서술어가 보인다. 명사들끼리 만나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런데도 시 속의 의미는 오히려 몇 배 증폭되어 전달된다.

바짝 마른 등나무 등걸이 얼키설키 얽혀있고, 늙은 나무 위에는 저물녘 갈가마귀 떼가 모여 앉아 깍깍 거린다. 더 없이 적막하고 서글픈 풍경이다. 그 옆에 작은 다리 하나가 놓여 있고, 강물이 흘러간다. 그리고 그 너머에 사람 사는 집이 한 채 보인다. 나그네는 그 집에 부탁해서라도 오늘 하루 밤을 묵어가야 할 처지다. 고개를 들어 앞길을 보면, 아련히 사라지는 옛길 위로 먼지를 일으키며 가을 바람이 분다. 비쩍 마른 말은 배가 고픈지 이제 더는 못 가겠다고 버틸 기세다. 어느새 석양도 서편 하늘로 떨어진다. 아! 이러한 때 애닯게 보고픈 그 사람은 내 곁에 없고 저 하늘 끝 먼 곳에 있다.

시인이 툭툭 끊어놓은 언어의 길 사이로 슬쩍 감춰둔 말을 복원하면 이렇게 행간이 유장하다. 시인은 제목을 ‘추사(秋思)’라 했지만, 그의 생각은 직접적 언술로 보다는 단어들의 행간으로 유장하게 이어져, 서글픈 가을날 낯선 땅을 떠도는 여행자의 심사를 그릴 듯이 그려냈다.

한 수 더 보자. 조선 중기 백광훈(白光勳)의 〈홍경사(弘慶寺)〉다.




가을 풀 전조(前朝)의 절

남은 비 학사의 글

천년을 흐르는 물이 있어서

지는 해에 돌아가는 구름을 보네.

秋草前朝寺

殘碑學士文

千年有流水

落日見歸雲




1,2구는 명사 뿐이다. 3,4구에 ‘유(有)’과 ‘견(見)’의 서술어가 있지만 큰 의미는 없다. 홍경사는 고려 때 절이다. 절은 가을 풀에 덮였다. 남은 비석에는 학사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천년을 흐르는 물이 있고, 지는 해에 돌아가는 구름을 본다. 자연은 변함이 없는데, 인간이 만든 것들은 다 덧없다. 동강나 뒹구는 잔비 너머로 가을 풀에 뒤덮인 옛 절, 천년을 한결 같이 흐르는 강물, 구름처럼 덧없이 스러지는 해. 그래서 어떻다는 말은 안해도 할 말은 이미 행간으로 고여서 넘친다.

이제 목월의 〈불국사〉를 살펴보자. 이 작품은 목월의 초기시 중에서도 율격면에서 뿐 아니라 형식면에서 매우 파격적이다.




흰달빛

자하문(紫霞門)




달안개

물소리




대웅전(大雄殿)

큰보살




바람소리

솔소리




범영루(泛影樓)

뜬그림자




흐는히

젖는데




흰달빛

자하문(紫霞門)




바람소리

물소리




2행 8연의 구조다. 2연씩 묶으면 기승전결 구성이다. 명사로만 토막토막 이어지는 전개는 한국 현대시사에서 달리 유례를 찾기 힘든 실험이다. 글자도 띄어쓰기를 무시한 채 3, 4글자로 맞췄다. 서술어라고는 전(轉) 부분의 ‘흐는히 젖는데’ 뿐이다. 약간의 어조사를 넣어 구문화 하면 이렇다.




흰 달빛 자하문엔 달안개와 물소리뿐

대웅전 큰 보살은 바람소리 솔소리라.

범영루 뜬 그림자 흐는히 젖는데

흰 달빛 자하문엔 달안개와 물소리뿐.




그러니까 위 시는 수미쌍관의 구성이고, 3,4조의 가락을 맞춘 것이다. 달빛 어린 자하문(紫霞門)은 달안개에 잠기고, 들려오는 것은 물소리 뿐이다. 큰 보살을 모신 대웅전에는 솔바람 소리가 해맑다. 범영루의 그림자가 달빛에 젖고, 자하문은 안개에 잠겨 물소리만 들린다. 자하(紫霞)에서 안개를 떠올리고, 범영(泛影)에서 뜬 그림자를 환기하는 것은 의미를 단순화 하는 어희(語戱)적 기미마저 있다.

시인이 말하려 한 것은 무엇인가? 달밤 안개에 잠겨 물소리와 솔바람 소리뿐인 불국사의 정밀하고 정갈한 심상이다. 그것뿐인가? 그것뿐이다. 그것들이 독자들의 정서를 어떤 방식으로 정화시키는 지는 그 다음 문제다. 시인은 다만 보여주기만 한다.

여타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같은 정서 표달 방식은 한결 같다. 이는 위에서 본 한시의 경우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특별히 목월의 여러 초기시 중에서도 대표시로 일컬어지는 작품들이 한결같이 한시의 구성법이나 말하기 방식을 따르고 있다는 점은 특별히 주목을 요한다. 이는 어려서 선친에게서 한시를 배웠던 그의 체험과도 무관치 않다. 목월 이전에 한국 현대시는 결코 이런 체험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지용이 있었지만, 목월은 지용의 방법을 더 철저하게 밀어붙여 실험성을 강화했다.







Ⅲ. 지용과 목월




지용의 한시에 대한 경도는 그의 글뿐 아니라 여러 앞선 검토를 통해서도 확인된다.3) 지용은 해방 직후 해방기념 조선문학가대회 때 자식을 대신 보내 왕유의 한시 한 수를 낭송하게 했다 한다. 선문답 같은 이 장면은 지용의 내면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의미심장하다. 친필로 남은 《시경》 시의 번역이나 〈녹음애송시〉 같은 글들은 지용의 한시에 대한 경도를 잘 보여준다. 그는 한시를 즐겨 읽었고, 한시의 의경과 구성방식을 체감하고 있었다. 이를 적극 활용한 고감도의 시세계는 당시 시단에 새로운 충격을 주었다.

먼저 그의 이른바 산수시 가운데 대표작으로 꼽는 〈비〉란 작품을 읽어 보자.




돌에

그늘이 차고,




따로 몰리는

소소리 바람.




앞 섰거니 하야

꼬리 치날리여 세우고,




죵죵 다리 깟칠한

山새 걸음거리.




여울 지여

수척한 흰 물살,




갈갈히

손가락 펴고,




멎은듯

새삼 돋는 비ㅅ낯




붉은 닢 닢

소란히 밟고 간다.




16행 8연이다. 앞서 본 〈불국사〉와 같다. 두 개 연을 한 단위로 묶으면 기승전결의 잘 짜인 구조다. 기(起)에서는 물 가 바위에 찬 그늘이 들더니 숲 저편에서 소소리 바람이 일어나는 광경을 묘사했다. 소나기가 곧 쏟아질 조짐이다.

이렇게 일으킨 시상이 곧바로 승(承)으로 넘어간다. 시인이 물가에서 포착한 새는 아마도 할미새였겠다.4) 할미새가 갑자기 비를 몰고 오는 소소리 바람이 앞서 가자 이에 뒤늦을세라 꼬리를 치날려 세우고 깟칠한 긴 다리로 종종걸음을 놓는다.

전(轉)에서는 손가락을 갈갈이 편 듯한 물살을 그렸다. ‘여울 지여 수척한 흰 물살’은 여울을 만나 다급하게 흰 물살을 일으키며 흘러가는 빠른 물줄기다. ‘갈갈히 손가락 펴고’는 흡사 갈퀴를 세워 할퀴는듯한 거센 흐름을 나타낸다.5) 갑작스런 비로 물이 불어나 물살이 거세진 것이다. 소낙비가 바람의 방향을 타고 몰려온다. 새의 불안한 종종걸음은 그 전조였던 셈. 지용은 〈폭포〉에서도 “흰 발톱 갈갈이 앙징스레도 할퀸다”고 했는데, 이 또한 폭포로 떨어지기 직전에 빨려들 듯 급히 내려가는 거센 물살의 표현이고 보면 위 구절은 대단히 역동적이다.

결(結)이 절묘하다. ‘멎은 듯 새삼 돋는 빗낯’은 한동안 쏟아지던 소나기가 뚝 그쳤나 싶더니만, 다시 후드득 빗방울이 들이치는 것이다. ‘붉은 닢 닢 소란히 밟고 간다’에서는 산 저편에서 소소리 바람이 몰고 온 비가 온 숲의 나뭇잎을 후득이며 반대편으로 몰려 가는 것을 묘사했다.6)

전편에 걸쳐 주관 정서의 틈입이 전혀 없다. 한편의 영상을 보는 느낌이다. 시인은 원경을 더듬던 카메라의 초점을 할미새의 근경으로 당겼다가 다시 수면 위로 이동한 후, 다시 원경으로 사라지는 순서로 가을(붉은 잎) 소낙비 내린 물가 풍경을 포착해냈다.

위 시는 한시로 치면 7언절구에 해당한다. 시의 통사 구조를 바꿔 한시 방식으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소소리 바람 몰려 돌 그늘 서늘한데

죵죵 다리 꼬리 세운 깟칠한 산새 걸음.

여울 진 흰 물살은 갈갈히 손을 펴고

붉은 잎 밟고 가는 새삼 돋는 빗낯일세.




그대로 멋드러진 한 수의 한시다. 1,2연을 억탁으로 맞춘다면 ‘소소양풍석음한(蕭蕭凉風石陰寒)’쯤 될테고, 7,8연은 ‘난답적엽신우각(亂踏赤葉新雨脚)’ 쯤 될 수 있을까? 서경에 충실하면서도 비가 쏟아지기 직전의 불안한 고요를 거쳐 후드득 돋는 빗발에 갑작스레 불어난 여울물의 흐름까지를 절묘하게 포착해냈다. 주관적 감정의 함몰 없이 서정을 빚어내는 한시적 수법을 유감없이 활용한 수작이다.

그는 〈녹음애송시(綠陰愛誦詩)〉에서 시경과 범성대, 왕안석, 사마광의 한시를 애송시로 들고, 끝에 가서 다시 한시 한 수를 들었다. 그 시는 이렇다.




석류꽃 잎에 어울려 봉오리 지고 보니 榴花映葉未全開

느티나무 그늘 침침하니 비올듯도 하이. 槐影沈沈雨勢來

집 적고 휘진 곳이라 오는 이도 없고야 小院地偏人不到

삿삿히 밟은 새 발자욱 이끼마다 놓였고녀. 滿庭鳥跡印蒼苔




번역도 그의 솜씨다. 위 〈비〉의 의경과 어지간히 닮아 있다. 비가 오려는지 느티나무 그늘이 차다. 사실 1구는 “잎에 비친 석류꽃 아직 벌지 않았는데”의 뜻이다. ‘봉오리 지고 보니’는 오역이다. 석류꽃은 저 비를 맞고야 봉우리를 활짝 피어낼 태세다. 2구는 “느티나무 그림자 침침하게 빗 기운 몰려오네”의 뜻이다. 느티나무 무성한 잎새 위로 후득이는 빗방울에 빗기운이 자못 더 거세차다. 〈비〉에서 소소리 바람에 서늘한 돌길과 붉은 잎을 밟고 가는 빗낯을 연상시킨다. 또 4구의 뜨락 이끼에 도장 찍는 새 발자욱은 깟칠한 산새의 종종 걸음과 포개진다. 금세라도 느티나무 그늘의 석류잎을 소란스레 밟고 지나는 빗방울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이렇듯 두 작품 사이에는 매우 깊은 친연성이 있다. 지용의 〈비〉가 보여주는 의경미는 그가 애송했던 한시의 그것과 몹시 방불하다. 그것은 주관적 감정을 개입시킴 없이 객관 경물의 묘사만으로 전달되는 방식이다.

정지용의 시에는 한시의 구문과 어법이 또렷히 살아 있다. 9연으로 된 〈비로봉(毘盧峯) 2〉도 끝 연 ‘바람에 아시우다’를 위에 붙이고 보면 7언절구의 구문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옥류동(玉流洞)〉은 7언율시의 호흡으로 읽힌다. 〈인동차(忍冬茶)〉도 비록 5연이되, 시상이 놓인 자리는 의연 7언절구의 호흡이다.

정지용의 시가 한시로 치면 7언시의 호흡을 지녔다면, 목월시는 5언시, 그것도 5언절구의 간결한 호흡으로 바뀐다. 목월의 〈청노루〉를 읽어보자.




머언 산 청운사(靑雲寺)

낡은 기와집




산(山)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ㅅ잎 피어가는 열두 구비를




청(靑)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7.5조의 기본 리듬 위에 약간의 변화를 주어 4,5연은 서술구조로만 보면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으로 한 연 처리했어야 옳다. 하지만 ‘도는/ 구름’을 별연으로 독립시켜 ‘구름’이 주는 아련한 느낌을 더욱 강화시켰다. 운자를 무시하고 글자로 맞춘다면 ‘古瓦靑雲寺, 雪消紫霞山. 嫩綠十二曲, 靑獐睛裏雲’ 쯤으로 정리될 내용이다. 앞서 정지용의 〈비〉가 두 연을 합쳐서 한 구절을 만든데 반해, 〈청노루〉는 한연이 한 구로 되는 대신 7언이 아닌 5언으로 줄어들었다. 말을 그만큼 아낀 것인데, 시상을 따라가면 의미는 더 단순화 되어 있다.

청운사엔 낡은 기와가 얹혔다, 자하산에 봄눈이 녹는다. 열두 구비마다 느릅나무 속잎이 피어난다. 청노루 맑은 눈에 구름이 어린다. 이렇게 네 개의 문장이 인과 관계 없이 병치된다. 자하산 청운사는 상상 속의 공간이다. 1연의 청운사는 아래쪽 연과 어떻게 연결되는 지 모호하다. 청운사에서 자하산 열두 구비를 바라보는 청노루의 눈에 구름이 돈다는 것인가, 자하산 속 청운사에 봄이 왔는데 청노루의 눈에 구름이 돈다는 것인가? ‘열두 구비를’로 끝나는 3연 때문에 전후 통사 구조는 더 교란된다. ‘열두 구비를’ 다음에 ‘바라보는’ 정도의 동사가 들어가면 연결이 매끄럽겠지만 말이다. 연결이 매끄럽지 않기는 2,3연도 마찬가지다.

시인은 중심 이미지 하나씩을 툭툭 던져놓기만 한다. 청운사의 고색창연한 기와 지붕, 눈 녹은 자하산 원경, 느릅나무 속잎 피는 열 두 구비, 청노루 눈에 어린 구름. 앞서 정지용의 〈비〉가 하나의 서사 체계를 갖는 것과 판연히 다르다. 언어의 서술 성분이 생략되는 데서 발생한 모호성 때문이다. 명사구로 툭툭 끊어지는 구절들은 애초에 어떤 판단을 요구하는 서술을 지향하지 않는다. 이미지 상태의 조각들을 펼쳐보임으로써 모호한 분위기를 연출할 뿐이다. 청운사의 푸른 이끼 낀 기와, 자하산의 연초록 열두 굽이, 청노루의 푸른 눈에 도는 구름은 모두 ‘푸른’ 이미지들로 점철되어 있다. 그래서 어떻다가 아니라 그렇다를 지향한다. 다시 말해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이 어떻다는 것이 아니라, 청노루 맑은 눈에 구름이 돈다고만 말한다. 그렇게 해서 생긴 널찍한 여백을 채우는 것은 !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정지용 시가 보여주는 산수시, 사물시의 세계는 주관 정서의 틈입을 허용 않는 객관화를 통해 말한다. 앞서 본 한시의 불착일자(不著一字) 진득풍류(盡得風流)의 경계를 추구한다. 목월은 지용의 실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미지의 파편만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단순화 시킴으로써 실험을 한층 극단으로 몰고 갔다.







Ⅳ. 지훈과 목월




잘 알려진대로 조지훈의 〈완화삼〉은 ‘목월에게’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 시를 받고 목월은 〈나그네〉로 화답했다. ‘-술익는 강 마을의 저녁 노을이여-지훈’이란 부제가 붙었다. 두 작품의 기본 이미지는 한 뿌리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 결과는 판이했다. 이제 이 두 작품의 대비를 통해 목월시의 특색을 따져 보겠다.

먼저 조지훈의 〈완화삼(玩花衫)〉을 읽는다.




차운 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2행 5연의 구성이다. 1942년 두 사람은 경주역에서 처음 해후했다. 이후 지훈은 목월의 안내로 보름 간 경주 이곳저곳을 돌아보았다. 그 답례로 〈완화삼〉을 지어 목월에게 주었고, 목월은 여기에 화답하여 〈나그네〉를 지었다.

‘완화삼(玩花衫)’은 시 내용을 보면 ‘꽃잎 묻은 소매[花衫]를 완상한다’는 뜻이다. 혹 ‘꽃 구경하는[玩花] 적삼[衫]’으로 풀어 ‘꽃구경하는 나그네’로 풀 수도 있겠는데, 전자가 맞다. 시 속에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에서 따왔다. 첫 연인 “차운 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는 당나라 두목(杜牧)의 〈산행(山行)〉 1구, ‘차운 산 기운 돌길 위로 멀리 오르는데[遠上寒山石徑斜]’를 단번에 떠올린다. ‘차운’과 ‘바위’, ‘멀어’ 등에 시인의 격동된 감정을 담았고, 구슬피 우는 산새로 이 감정을 다독거렸다. ‘칠백리 물길’은 아마도 낙동강 7백리를 염두에 둔 듯하다. 꽃잎 젖은 긴 소매로 그 길을 걷는 나그네의 눈에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 비친다. 내일 아침이면 지고 말 꽃을 안타까워하며 나그네는 달빛 아래 흔들리면서도 그 밤길을 계속 걷는다. ! ;

시의 감정은 다소 과잉되어 감춤 없이 드러났다. ‘차운’, ‘구슬피’, ‘울음 운다’, ‘다정하고 한 많음’, ‘병인 양하여’, ‘고요히’, ‘흔들리고’ 등등 감정어가 그대로 노출되었다. ‘저녁 노을이여’, ‘꽃은 지리라’, ‘흔들리며 가노니’의 개방형, 영탄형의 발화는 시상을 응축시키거나 수렴하는 대신 확산되어 흩어진다. 앞서 본 정지용의 〈비〉가 보여준 객관화의 수법과는 거리가 멀고, 목월의 〈청노루〉와도 사뭇 다르다.

다시 목월의 화답시 〈나그네〉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




역시 2행 5연의 구문이다. 지훈의 〈완화삼〉이 특별한 리듬 규칙을 찾기 어려운데 반해, 목월의 〈나그네〉는 7.5조의 기본 리듬에 충실한 편이다. 지훈은 한행에서 7,5조를 다 소화하거나, 때로 3,4,3,4로 밀고 나가기까지 했지만 목월은 2행으로 7,5조를 녹이며 똑똑 끊어지는 명사구로 맺었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리’ :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의 대비만으로도 대상에 접근하는 두 시인의 태도는 확연히 구분된다.

명사로 맺은 매 연의 종결과, 7.5조의 규칙적인 가락이 살려내는 리듬은 농축된 시상으로 맺힌다. 목월은 ‘외줄기’로 ‘외로움’을 ‘저녁 놀’로 ‘그리움’을 말한다.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양 하여’라고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타는’ 것은 시인의 마음이 아니라 ‘저녁 놀’이다. 외로운 것은 나그네가 아니라 ‘남도 삼백리’ 길이다.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로 젖어들지 않는다. 길이 ‘칠백 리’에서 ‘삼백 리’로 줄었는데도, 끌리는 여운의 길이는 몇 배 더 길다.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은 배경으로만 깔리는데,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는 그 영탄적 발성으로 ‘나그네의 젖은 소매’마저 물들인다.7)

결국 지훈의 〈완화삼〉이 영탄적 개방적 시상을 펼쳐 보였다면, 목월의 〈나그네〉는 응축적 수렴적 시상을 구성했다. 지훈은 목월의 〈나그네〉를 받고 “압운이 없는 현대시에도 이처럼 절실한 심운(心韻)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시”였다는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8) 압운 운운한 것으로 보아 지훈 또한 목월시가 보여준 한시적 의경과의 친연성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Ⅴ. 목월과 미당




서정주와 박목월은 현대시의 전혀 다른 대척점에 서 있는 시인이다. 하지만 서정주의 〈영산홍〉은 여러 면에서 박목월의 〈윤사월〉과 닮았다.9) 〈영산홍〉은 1966년 11월, 《문학》 7호에 수록된 작품이니, 해방 전에 지은 〈윤사월〉과는 발표 시점에서 20년 이상의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비슷한 상황 설정과 동일한 가락, 확연히 구분되는 정서면에서 흥미로운 비교 대상이다. 이 작품은 목월적 의경이 다음 시기로 가면 어떤 경로의 변용이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실험인 셈이다.

먼저 목월의 〈윤사월〉이다.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고 있다.




정돈된 7,5조 4연으로 된 기승전결 구조다. 앞서 본 다른 시와 마찬가지로 시인은 시적 문맥 속에 개입함 없이 장면만 포착한다. 송홧가루가 날리는 외딴 봉우리에 꾀꼬리 우는 윤사월이다. 윤사월은 봄으로는 너무 늦었고, 여름이기는 어정쩡한 시기다. 양력으로 쳐서 5월말 6월 초쯤에 해당한다.

시인은 원경에서 점차 렌즈를 당겨 근경으로 좁힌다. ‘외딴’ 봉우리에는 산지기의 ‘외딴’ 집이 있다. 그 집에는 눈 먼 처녀가 문설주에 귀를 대고 무슨 소리인가를 엿듣고 있다. 하지만 정작 처녀가 엿듣는 소리가 꾀꼬리 울음 소리인지,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인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두 차례의 ‘외딴’이란 표현과 ‘눈 먼’이란 단어가 고적감을 상승시킨다. 하지만 시인은 눈 먼 처녀의 심리상태를 설명하는 대신 객관 진술을 통해 보여줄 뿐이다. 목월시는 시인 자신이 늘 국외자로 화면 밖에 존재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완화삼〉의 나그네는 지훈 자신이지만, 〈나그네〉의 나그네는 목월 자신이 아니다. 객관화된 제 3자다. 〈청노루〉에서도 시인은 화면 밖의 존재다. 시적 문맥 속에 끼어들지 않는다.

‘외딴 집’은 세상과의 접촉이 차단된 고립된 공간이요, ‘눈먼 처녀’는 세계와의 교통이 단절된 외로운 존재다. 시인은 윤사월의 긴긴 하루 해를 하염없는 꾀꼬리 울음 소리로 늘여 놓았다. 앞서 〈청노루〉에서 온통 청색 이미지를 포개 놓았다면, 여기서는 ‘송화 가루’와 ‘꾀꼬리’, 그리고 눈먼 처녀의 낯빛까지 노란색 이미지를 겹쳐 놓은 점이 눈에 띤다. 시인이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송화가루 노랗게 날리는 윤사월 긴긴 하루해의 무료함과 무언가 변화를 갈망하는 눈먼 처녀의 안타까움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일어난다. 그것은 설명적 언어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는 미묘한 떨림의 세계다.

한편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오리’는 정지용의 〈폭포〉에서 “심심 산천에 고사릿밥/ 모조리 졸리운 날// 송화ㅅ가루/ 노랗게 날리네.”의 영향도 보인다.

이제 미당의 〈영산홍〉을 살펴 보자.




영산홍 꽃잎에는

산이 어리고




산자락에 낮잠 든

슬픈 소실댁(小室宅)




소실댁 툇마루에

놓인 놋요강




산 너머 바다는

보름살이 때




소금발이 쓰려서

우는 갈매기




미당의 시는 2행 5연이다. 정연한 7,5조의 리듬을 타는 것은 같다. 두 작품이 같은 점은 이 뿐만이 아니다. 이번에도 산속 집에 혼자 있는 젊은 여인이 등장한다. ‘눈먼 처녀’가 ‘슬픈 소실댁’으로, ‘외딴 봉우리’가 ‘산자락’으로 바뀌었을 뿐, 시간이나 공간의 설정은 놀라우리만치 흡사하다. 마치 미당이 작심하고 목월의 시를 자기 스타일로 변용하려 한 느낌마저 든다.

1연에서 영산홍 꽃잎에 산이 어린다고 한 것은 말장난이다. 영산홍(映山紅)의 한자를 풀어 산이 어린다고 했다. 산을 붉게 물들일 만큼 붉은 것은 영산홍 꽃잎이면서 젊음의 정염을 주체하지 못하는 ‘슬픈 소실댁’이다. 그러니까 1연에서 남는 것은 영산홍 밖에는 없다.

1연에서 슬쩍 눙친 시인은 2연에서 곧장 낮잠 든 소실댁으로 앵글을 옮긴다. 그러니까 1연은 시제(詩題)와의 관련성을 환기하면서 소실댁과 영산홍을 등치(等値) 시키는 묘한 효과를 가져온다. 영산홍은 마치 조선시대 기생의 이름처럼 들린다. 1.2연이 합쳐져야 비로소 기(起)가 된다.

3연은 승(承)이다. 카메라는 소실댁 툇마루에 놓인 놋요강을 훑는다. 툇마루에 놓인 놋요강은 참으로 절묘한 포착이다. 남정네가 그녀를 찾았더라면 의당 안방에 놓여 있어야 할 놋요강이 한참 쓸모를 잃어 툇마루로 나앉았으니, 그녀의 현재 처지를 암시하는 등가적 심상이다. 말하자면 그녀는 지금 ‘툇’짜를 맞아 놋요강처럼 ‘녹’슬고 있는 것이다.

4연은 시상을 확 틀어서 보름살이 때를 만난 산너머 바다로 옮긴다. 전(轉)에 해당한다. 보름살이 때는 만조(滿潮)를 나타내고, 이것은 그녀의 성적 욕망이 최고조로 고조된 시점의 암시다. 주체할 길 없는 정염의 불을 끄지 못하고, 그녀는 요강도 툇마루에 내놓은 채 그저 낮잠을 청하는 일 밖에는 달리 할 일이 없는 것이다.

5연에서 화면은 소금발이 쓰리다고 끼룩끼룩 우는 갈매기를 따라 맴돈다. 정작 울고 싶은 것은 소실댁인데, 막상 우는 것은 갈매기다. 주관과 객관이 삼투되는 놀라운 전이(轉移)와 이입(移入)이 일어난다.

두 작품 모두 산속 외딴 집이 있고, 문설주에 기대선 눈먼 처녀 또는 툇마루서 낮잠 든 슬픈 소실댁이 있다. 계절은 모두 봄에서 여름으로 옮겨가는 때다. 꾀꼬리나 갈매기가 우는 것도 같다. 정적 속에 소리의 움직임이 있다. 하지만 정서를 표달하는 방법에서 두 시의 차이는 엄연하다. 목월이 ‘눈먼’이라고 할 때, 미당은 ‘슬픈’이라고 감정을 드러낸다. 목월의 꾀고리는 그저 우는데, 미당의 갈매기는 쓰리다고 운다. 해 긴 윤사월에는 감정이 들어있지 않은데, 보름살이 때에는 고조된 욕망이 내재되어 있다. 미당의 정서 표달 방법은 앞서 지훈의 경우와는 또 다르다. 지훈이 직설법이라면 미당은 이미지의 병치, 주체와 객체의 삼투로 행간이 깊다. 목월은 늘 저만치 거리를 둔 채 사물 속으로 뛰어들지 않는다. 이 차이가 이른바 생명파와 자연파의 차이요 거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 ;







Ⅴ. 맺음말




이상 지용과 목월, 지훈과 목월, 목월과 미당 등의 대비를 통해 목월 초기시가 갖는 한시적 정서 표달 방식을 살폈다. 모두 기승전결의 한시적 결구로 되어 있고, 주관 정서를 직접적으로 전달하지 않으며,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는 무아지경의 시경(詩境)을 추구하는 점이 공통점이다.

무아지경의 시경을 추구한 점에서 지용과 목월은 상통하는 점이 있지만, 지용이 7언시의 가락이라면, 목월은 왕유풍 5언절구의 절제를 택해, 지용의 실험을 극단까지 몰고 갔다. 지훈은 전통적 가락에 능했다. 하지만 주관 정서에 함몰되어 시적 긴장을 흔히 잃었다. 목월은 대상과의 거리 두기를 초기시의 시적 모토로 삼았다. 미당은 농축된 정서를 이미지의 절묘한 병치로 표달하여 객관 속에 주관의 색채를 물들인다. 하지만 목월은 주관을 배제하여 객관만을 강화한다.

이렇듯 시풍이 다르고도 같은 세 사람의 대비를 통해, 우리는 목월시가 현대시사에서 차지하는 특별한 지점을 이해하게 된다. 서구적 개념으로 객관적 상관물의 방법, 한시로는 산단운련(山斷雲連),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수법이 최초로 완벽하게 구현되는 현장을 우리는 목월의 초기시이자 그의 대표작들에게서 일관되게 확인한다. 막상 따져보면 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읽고 나면 너무나 많은 느낌이 독자에게 건너 가 있다. 이 절제와 함축은 한국 현대시가 도달한 하나의 정점임에 틀림없다.

참고문헌




박명옥. 〈정지용의 〈장수산 1〉과 한시의 비교 연구〉.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2005.6, 203-226면.

장경렬. 〈이미지즘의 원리와 「시화일여(詩畵一如)」의 시론〉. 《작가세계》. 1999년 가을호

정민. 〈의경론으로 읽는 현대시 두 수〉. 《한국언어문화》. 한국언어문화학회, 2000, 제 18집, 457-476면.

정민. 〈관물정신의 미학의의〉. 《한국학논집》. 한양대 한국학연구소, 1995, 225-247면.

정민. 〈한시와 현대시 4제〉. 《현대시학》, 2002년.

최동호. 〈산수시의 세계와 은일의 정신〉. 《1930년대 민족문학의 인식》. 한길사, 1990, 123-156면.

최동호. 〈정지용의 산수시와 정경(情景)의 시학〉. 《작가세계》. 2000년 가을호.





국문요약




박목월 초기시의 의경(분위기 정도의 의미로 번역할 것)은 한시의 표현 방식과 놀라우리만치 유사하다. 시인은 말하지 않고 보여주는 방식으로 의미를 전달한다. 7.5조의 리듬을 타고 기승전결의 구성으로 이루어진 목월의 초기시는 당나라 왕유의 5언절구시를 연상시킨다. 수식어를 배제한 명사형의 서술과, 구성의 간결성, 그리고 주관이 끼어들 틈 없는 객관화는 목월 초기시가 보여주는 중요한 의미 특성이다.

본고는 의경론의 관점에서 똑같이 기승전결의 한시적 구성으로 이루어진 정지용과 조지훈, 그리고 서정주의 작품을 박목월의 작품과 대비적으로 읽었다. 이를 통해, 박목월이 정지용 보다는 이미지의 객관화를 더 극단화 시켜, 주관의 침윤이 비교적 강하게 드러나는 조지훈과 서정주 와도 선명하게 구분되는 시세계를 이룩했음을 밝혔다.

박목월 초기시는 한국 현대시가 이전까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하나의 정점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한시적 감성이 짙게 깔려 있었다. 본고에서는 이를 통해 지금까지 이를 모더니티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려한 문제점을 짚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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