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 감상 / 장석남, 김수이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1985>
기다리는 일이란 대체로 진을 빼는 일이다. 어찌 보면 그것은 고급한 형벌 같다. 그래선지 세상의 모든 경전은 참고 기다리라고 가르친다. 우리같이 여염한 인간이 경전을 싫어하는 것은 바로 그런 가르침 때문이다. 어떻게 그 형벌을 이겨내는고.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 참으로 쓰디쓴 말이다.
이 시는 기다림이란 형벌 받는 자의 내면의 눈금이다. 심전도 검사 때의 그 그래프 같지 않은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힐"때까지의 눈금의 급격한 상승, 그 클라이맥스에서 삼세번 아슬아슬하게, 불안하게, 순간적으로 '너'라며 이어지다가 급격히 눈금은 추락한다. 사랑을 앓는 자의 혈압. 그것을 추동하는 약속 시간과 맥박의 전개가 이 시의 매혹이자 기존의 '연애시'와 다른 '모던'함이다. '아주 먼 데'있는 사랑하는 이를 이렇게 기다리는 일을 우리는 고통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이 시는 사랑의 시이면서 동시에 고통의 초상화다.
황지우(56)의 본명은 황재우다. 오타(誤打)가 나는 바람에 본명보다 훨씬 빼어난(?) 필명이 되었다. 어쩌면 그의 시업은 당대를 향해서 끊임없이 오타를 날리는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의 오타의 문법은 공공의 통증을 유발하는 일종의 타작(打作)과 같은 것이었다. "내 마음의 마각(馬脚)이/ 뚜벅뚜벅 너의 가슴을/ 짓밟고 갔구나./ 사랑해!/ 라고 말하면서/ 나는 너를 다 갉아먹어 버렸어./ 내심(內心)의 뼈만 남은 앙상한 과실(果實)/ 묘판(苗板)에다가 너의 생을 다시 이장(移葬)하련다. 사랑해!" (〈나는 너다·333〉) 사랑은 때로 마각과 같은 것이다. 나의 사랑도 너에게, 너의 사랑도 나에게 솜사탕이 아닌 마각이라고 제시할 때 우리는 비로소 관성이 아닌, '사랑해!'라는 말의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어느 날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를 외우고 다니는 주인공을 보았다. 그는 시인이었다. "여보, 지금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서/ 죽어가는 게의 꿈벅거리는 눈을 보고 올래?"(〈나는 너다·109〉) 그것이 황지우의 시였음을 안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저게 무슨 말일까? 시를 공부하는 나도 의미가 떠오르지 않아 속으로 민망한 가운데 그러나 이런 것이 왔다. '죽어가는 게의 꿈벅거리는 눈'! 그것은 무엇인가. 하물며 그것을 혼자는 볼 수 없어 '여보'를 찾다니. 그 가없는 여림은 사랑이 마각임을 아는 자의 여림이 아닌가.
―장석남 (시인,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
================================================================================================================
이 기다림은 애절하고 날카롭다. 문을 향한 시선은 금방이라도 폭발하거나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너였다가/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다시 문이 닫히’는 일이 ‘쿵쿵’ ‘가슴 애리’게 반복되는 한 그렇다. 그러나 기다림은 이 숨 막히는 무정한 반복을 견딘다. 기다림이란 ‘오지 않는 너’를 대신해 ‘너’의 ‘직전’까지 ‘나’의 사랑의 마음과 자세와 언어들을 가져가는 일이며, 가망 없는 순간에 ‘마침내 너에게 가’는 갸륵한 일이다.
그렇다면 ‘너를 기다리는 동안’은 시가 더없이 간절하게 쓰이고 읽히는, 순연한 시의 시간이다. 시는 ‘내’가 ‘너’의 ‘직전’에 있음을 일깨우며, ‘너’의 ‘직전’에서 가장 눈부시게 번성한다. 황지우의 말처럼 ‘녹 같은 기다림’의 시대였던 1980년대가 ‘시의 시대’였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 시의 시작 메모에 황지우는 이렇게 써 놓았다. “민주, 자유, 평화, 숨결 더운 사랑. 이 늙은 낱말들 앞에 기다리기만 하는 삶은 초조하다.” ‘마침내 너에게 가’는 능동성의 숨은 힘은 실은 ‘초조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비단 그 시대뿐일까. 기다림의 많은 대상은, 그에 대한 간절함과 초조함은 다른 형태로 여전히 현존한다. 파격적인 실험과 해체의 전략으로 잘 알려진 황지우는 이 시에서는 유독 별다른 전략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기는 기다림 앞에 어떤 전략이 소용이 있을까. “너를 기다리는 동안 마침내 너에게 가”는 것 이상의 전략을 고안해내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나 자신을 오롯이 던지는, 이렇듯 의연하고 아름다운 전략 외에는.
―김수이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문학 참고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송찬호의 '찔레꽃' 감상 / 김선우 (0) | 2014.12.02 |
|---|---|
| 서정주의 '연(蓮)꽃 만나러 가는 바람같이' 감상 / 장석남 (0) | 2014.12.01 |
| 이성복의 '서시' 감상 / 장석남 (0) | 2014.11.30 |
| 성미정의 '사랑은 야채 같은 것' 감상 / 김선우 (0) | 2014.11.30 |
| 머리도 심장도 아니다 바로 온몸이다 / 안도현 (0) | 2014.11.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