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의 '한번쯤은 죽음을' 평설 / 조 정
한번쯤은 죽음을
조 은
열어놓은 창으로 새들이 들어왔다
연인처럼 은밀히 방으로 들어왔다
창틀에서 말라가는 새똥을
치운 적은 있어도
방에서 새가 눈에 띈 건 처음이다
나는 해치지도 방해하지도 않을 터이지만
새들은 먼지를 달구며
불덩이처럼 방 안을 날아다닌다
나는 문손잡이를 잡고 숨죽이고 서서
저 지옥의 순간에서 단번에 삶으로 솟구칠
비상의 순간을 보고 싶을 뿐이다
새들은 이 벽 저 벽 가서 박으며
존재를 돋보이게 하던 날개를
함부로 꺾으며 퍼덕거린다
마치 내가 관 뚜껑을 손에 들고
닫으려는 것처럼!
살려는 욕망으로만 날갯짓을 한다면
새들은 절대로
출구를 찾지 못하리라
한번쯤은 죽음도 생각한다면……
―《문예중앙》2002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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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 그 도처 / 조 정 (시인)
새벽 도매시장에 앉아 있으면 공중을 나는 새처럼 사람들이 내 앞을 날아다닌다. 그 중 몇은 내가 파는 물건을 살피기 위해 내 창틀에 멈추거나 값을 묻고는 돌아선다. 나는 그들이 내 창으로 들어와서 그들의 몸을 숨기고 움켜 쥐어줄 한 장의 셔츠, 한 장의 방, 한 장의 무덤을 사가기를 기다린다.
시인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것인가. 그가 사는 방은 ‘새들’이 들어와 퍼덕거려도 쉽게 상처받지 않을 정도로 큰가. 시행(詩行)을 따라 걷다말고 멈추어선다. 모종의 진공 상태가 꼬리뼈를 쥐었다 놓았기 때문이다. 새가 방에 날아들어온 일은 나도 몇번 겪어 보았지만 그때마다 “연인처럼 은밀히 방으로 들어왔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여유롭지는 못했다. 그런데 조은 시인은 ‘새들’이 들어와 불붙듯 호닥거렸을 상황을 오래 전에 꾸었던 꿈처럼 느릿하게 말하고 있다.
조금 불편하게 친절하다. 아닌가? 그의 가슴속까지 들어와버린 새들을 꺼내어놓는 데 시간이 좀 걸렸음직도 하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나는 그가 주목하는 것이 길을 놓쳐버린 새들이 아니라 새들의 눈동자를 파고들어온 물컹하고 어두운 저편 세계임을 점자처럼 짚는다. 오랫동안 죽음을 새김질해온 그에게서 몽환의 먼지 냄새가 난다. 말라붙은 새똥의 흔적을 지닌 늙은 창틀의 체취인 성도 싶다.
방에 새들이 날아들어도 호들갑을 떨지 않는(단지 눈에 띄었다니……) 그의 고즈넉함에 끌려 나도 연인처럼 은밀하게 「한번쯤은 죽음을」 이라고 명패 붙인 그의 방, 그의 봉분 안으로 들어간다. 방에 갇혀버린 지옥의 새를 꺼내기 위해 시인이 그리는 좌표에 발을 얹는다. 나는 새가 아니니 어찌 새의 공포를 다 알 수 있을까만 혹 사람의 마음은 조금 읽을 수 있을까 하여 시인의 곁에 다가선다.
창으로 들어왔으나 창으로 나가지 못하는 새를 위해 문손잡이를 붙들고 선 그가 보고 싶은 것은 “저 지옥의 순간에서 단번에 삶으로 솟구칠/비상의 순간”이다. 죽음에서 삶으로 솟구치는 비상의 순간이라면 나도 보고 싶다. 그러나 환하게 열린 문을 피해 “새들은 이 벽 저 벽에 가서 박으며/존재를 돋보이게 하던 날개를/함부로 꺾으며” 퍼덕거릴 뿐이다.
사뭇 전지적 시선으로 새의 우둔을 지켜보는 우리도 그 새와 같아서 황망한 날갯짓을 한 적이 얼마였던가. 누가 문을 열어주어도 문이 보이지 않고 빗자루를 들고 몰아주어도 더욱 혼란할 뿐이었던, 아, 나는 오히려 새의 마음을 읽게 된다. 앞서 생명을 받았던 자들이 떨구고 간 먼지가 세상에 깊고, 갇힌 새의 몸부림을 따라 그것들은 깨어나 춤춘다. 살아 있는 자들과 살아 있었던 자들의 연대는 고통이라는 화살표를 따라 흔연히 어우러진다. 공평도 하여라. 그들도 죽고 영원처럼 문을 열고 선 시인도 죽고 새도 죽고 일상의 수의를 파는 나도 죽는다. 생명을 받은 자는 필히 죽는다는 사무침이 가슴에 뚝 떨어진다.
한 존재가 갇혔던 생으로부터 풀려나 죽음으로 돌아가는 일을 두려워할 때 신(神)도 시인처럼 느낌표(!)를 찍으며 안타까워할까. 내 질문과 관계없이 시인은 “살려는 욕망으로만 날갯짓을 한다면/새들은 절대로/출구를 찾지 못하리라”는 경구를 절대 권력자처럼 쏘아붙인다. 새가 부리를 놀려 울듯이 무심하라는 구절을(장자 「天地」) 떠올린다. 신비일 따름이다. 새 부리가 자연히 움직여 천지와 합쳐지듯 사람도 무심해지면 먼지 틈으로 길이 보이리라는 식의 언명이 진리인지 관념을 만족시키는 추론인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내 생을 향해 죽을힘을 다해서 날갯짓을 해본 적도 있고, 에라 모르겠다며 번데기처럼 웅크리고 버틴 적도 있지만 생이 그 출구를 따로 보여준 적이 없었고 그 무게가 감소된 적도 없었던 탓이리라.
조은 시인의 ‘자기 회복과 자기 수정’이 상당한 여유로움에 이른 것 같다. 그 밀도를 따지기 전에 일단 소탈한 여백이 느껴져서 좋다. 그러나 이 시의 결구에 이르러 나는 당황한다. “한번쯤은 죽음도 생각한다면…”이라고 마무리짓는 시인의 말은 폭이 너무 크다. 한번쯤 죽음을 생각한다면, 창 밖의 허공이나 창 안의 허공이나 벽에 갇혀 있기는 매일반이라는 깨달음을 넘어 출구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인가. 휑하니 비어 있어서 벽이 있다고 할 것조차 없는 生을 밀치고 나갈 방도가 보인다는 말인가. 말미에 이르러 자못 불친절해진 시인이 쥐어주는 뫼비우스의 띠를 받아들고 걸음을 멈춘다. 새 머리를 이고 사는 나는 원점.
시장에는 물건들이 쌓여있다. 사람마다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살아간다면 시장은 그토록 융성할 수 없을 것이다. 잉여의 물품들이 잉여의 욕망을 기다리는 시장에서는 교환이 곧 출구다. 살려는 욕망으로 시장은 날갯짓을 하고 불덩이처럼 몸 부풀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곳에서 죽음은 생각되기 전에 이미 죽어있다. 그 또한 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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