草食 /조영석
바람이 불고 부스럭거리며 책장이 넘어간다.
몇 시간째 같은 페이지만을 노려보던 눈동자가
터진다. 검은 눈물이 속눈썹을 적신다.
그는 빠르게 진행되는 바람의 독서를 막는다.
손가락 끝으로 겨우 책장 하나를 잡아 누르며
보이지 않는 종이의 피부를 더듬는다.
그곳은 활자들의 숲, 썩은 나무의 뼈가 만져진다.
짐승들의 배설물이 냄새를 피워 올린다.
책장을 찢어 그는 입안에 구겨 넣고 종이의 맛을 본다.
송곳니에 찍힌 씨앗들이 툭툭 터져 나간다.
흐물흐물한 종이를 목젖 너머로 넘기고 나서
그는 이빨 틈 속에 갇힌 활자들의 가시를 솎아낸다.
검은 눈물이 입가로 흘러든다. 재빨리
그는 다음 페이지를 찢어 눈물을 빨아들인 다음
다시 입 속에 넣고 느릿느릿 씹는다.
입술을 오므려 송곳니를 뱉어낸다.
그의 이빨은 초식동물처럼 평평해진다.
다음 페이지를 찢어 사내는 송곳니를 싸서 먹는다.
검은 눈물이 조금씩 마르기 시작한다.
텅 빈 눈동자 속에 활자들이 조금씩 채워진다.
조영석 1996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2004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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