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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인 문 학 상

2011년 상반기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신인상 당선작_유희선

by 솔 체 2015. 5. 6.

2011년 상반기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신인상 당선작_유희선

 

하수구 (외 2편)

 

   유희선

 

 

 

그들은 천천히 늙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황홀의 극단에서

맥없이

꺾여버린 은막의 스타,

 

고장 난 청소기처럼

서둘러 생을 마감하고,

오후 세 시,

비좁은 엘리베이터는 기우뚱하게

9층에 멈춰 있다.

목줄이 묶인 애완견이

애처롭게 방화문을 긁는다.

 

라디오 소리가 종일 흘러나오는 경비실 창으로

몇 가닥 흘러내린 능소화 넝쿨,

막 냄비밥을 먹은 경비 아저씨

한 손에 파리채를 든 채

하수구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하나님의 김밥

 

 

 

   하남로터리 하남오피스텔에는 천사들이 살고 있다. 놀라시지 마라, 이 오피스텔 1층에 24시 김밥천국이 있다. 남편도 아내도 아이들도 없는 지상의 천국에서 홀로 먹고 홀로 잠드는 천사들. 오래 전 지상으로 추방된 날개 없는 천사들의 원룸. 그들은 천국이 그리워 오직 천국의 밥만 먹는다. 아, 천사들의 식당이 있는 하나님의 오피스텔. 그들은 밤낮없이 하나님이 말아 놓은 김밥을 먹는다. 어제도 오늘도 먹는다. 순한 양이 되어 거룩하게 먹는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천국의 밥을 먹으며 황량한 도시의 황무지를 헤쳐 간다. 아직도 가슴에 꺼지지 않은 신의 불꽃을 품고 있는지 불 꺼진 도시는 김밥천국으로 환하다. 하늘로 가는 길이 환하다.

 

 

 

11월

 

 

 

숲으로 가는 길

늙은 사내가 벤치에 앉아 있다.

그는 모자를 벗어

무릎에 놓았다가

천천히 들어 올려

다시 쓰고 있다.

숲으로 가는 길에는

아홉 개의 벤치가 있다.

그 벤치에 아홉 명의 사내가 앉아 있다.

그들은 저마다

모자를 벗었다가

다시 쓴다.

모양이 잡히지 않는 듯

텅 빈 모자 속에

남은 시간을 꾹꾹 눌러 담아

슬로우-모션으로 다시 쓴다.

떡갈나무 숲속으로

아주 느리게 다가오는 시간,

아버지 펄프공장이 보이고

늙은 사내들의 모자가

종잇장처럼 얇아지고 있다.

투명한 햇빛을 받으며

천천히 아주 느리게

떡갈나무 잎이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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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희선 / 서울 출생. 상명여대 미술교육과 졸업. 이화여대 대학원 서양미술학과 수학. 2001년 경남 마산 MBC 〈경남여성백일장〉장원. 주소 : 경남 창원시 성산구 반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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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후감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세 분(유희선, 정명기, 채수영)과 공동주간 및 편집위원들께서 추천하신 한 분, 그러니까 모두 네 분들의 작품을 놓고 논의하였다. 심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이분들 중에서 유희선 씨의 작품에 주목하였다. 우리가 보기에 이분의 작품이 다른 분들의 작품보다 나아보였다. 아쉽게도 다른 분들의 작품은 본지나 우리 시단이 요구하는 평균적 수준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나머지 한 분의 이름은 여기에 밝히지 않기로 하였다.

 

   유희선 씨를 추천한다. 유희선 씨는 전형적으로 묘사를 하는 시인이다. 응모작 거의 대부분이 묘사로 가득하다. 시에 있어 묘사는 결국 언어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이러한 기법은 오래된 것이어서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흔히 “시는 말없는 그림이며, 그림은 말없는 시”라고 전해져 온다. 이미지로 가득한 텍스트, 즉 회화성에 기반을 둔 창작법은 우리 시단에도 나름 깊은 뿌리와 계보를 갖고 있다. 백석을 필두로 노향림, 송재학, 김기택, 이윤학 시인 등이 여기에 속한다. 유희선 씨의 작품 역시 이러한 묘사기법에 충실하다. 문제는 묘사시가 갖고 있는 치명적인 단점들을 극복하는 방법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묘사를 하는 시인들은 좀처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진술 자체를 촌스럽거나 실패한 시쓰기로 여기기 때문이다. 때문에 백석의 시에는 은유가 없다. 그러나 이것은 오래 전의 이야기이다. 훌륭한 시인들은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묘사해냄으로써 묘사시의 완성도를 끌어올린다. 유희선 씨 작품 중 앞에 놓인 「하수구」에서 “그들은 천천히 늙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시적 진술이 이 시를 구체적으로 완성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묘사는 디오니소스적인 음악의 세계가 아니라 아폴론적인 조형의 세계이기 때문에 치명적으로 시에 리듬을 감소시킨다. 백석은 열거법을 통해 묘사시에 운율을 집어넣음으로써 이를 극복하였다. 유희선 씨 또한 어떤 식으로 시에 운율을 넣을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시에서 묘사를 한다는 것은 시 안에 시적 화자가 없다는 뜻이다. 시적 화자가 없다는 것은 시에 진술이 없다는 것이고, 진술이 없다는 것은 시에 자신의 주장이나 철학이 없다는 것이고, 무엇보다 노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릇 훌륭한 시인은 묘사를 통해 진술을 하고, 진술을 통해 묘사를 한다. 진술의 시인인 미당은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는 시적 진술을 통해 무등산을 훌륭하게 묘사해 낸다. 시는 결국 진술과 묘사라는 두 기둥에 기대어 서 있는 것이다. 당선을 축하드리며, 더욱 정진하시기를 부탁드린다.

 

본지에 응모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다음 기회에 다시 뵙기를 기대해 본다.

 

 

                                                                           심사위원 : 원구식(글), 이재훈, 채선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2011년 3-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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