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여름, 제 19회《서정시학》 신인상 당선작
나비효과 (외 3편)
홍우식
북아프리카에서 재스민 꽃을 든 사람들이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걸어갈 때
나는 자연의 시집을 읽고 있었다
나는 후득후득
커다란 파초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먼 곳의 총소리처럼 듣고 있다
말이 되지 않고 문자가 되어 묻힌 곳
시집의 행간은
경도와 위도 사이만큼이나 넓다
히말라야 산들 툰드라의 초원 반디아미르 호수도 들어 있고
지구 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막 와디럼도 들어 있다
시 한 줄 읽고 나면
나비 한 마리씩 날아오른다
나는 지구본을 돌리며 나비가 날아갈 초원을 찾고 있다
철조망 너머 저쪽에도 자스민 꽃이 피어 있을까
지구본 위에 붉은 줄을 그어
나비가 날아갈 길을 만든다
시집 한 장 넘길 때마다 일어나는 작은 바람
그 바람이 동쪽으로 가 동쪽으로 가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와 남서풍이 되었다
지금 막 재스민 꽃잎을 열고 있다
천상분열열차지도
쌍둥이자리나 처녀자리 혹은 물병자리가
잘 보이는 곳에 천막을 친다
말뚝을 박는다는 것은
지상의 별자릴 만드는 것이다
천막은 벽이 없어 바람이 드나들기 좋고
하늘을 쳐다본다는 것은
별의 힘을 빌리고 싶어서다
점성술사처럼 별의 운행을 읽고 싶어서다
북두칠성 견우별 직녀별 좀생이별들을 찾아
은하계를 맴돌다가
천상의 지도를 꺼내놓고
내가 가보고 싶은 별들을 찾아보았다
별빛구름을 따라가다 보니
돌고, 돌아
저승까지 동행하는 북두칠성 자루가
남쪽을 가리킨다
먼 바다에는 밤 고래들이 울고 있다
이 계절엔 남서풍이 드나들기 좋게
사방이 확 트인 천막을 치자
마른 풀이 있는 곳에
쌍둥이자리 처녀자리 물병자리가 잘 보이는 곳에
나무를 기계라고 부른다
나는 나무를 기계라고 부른다
나무를 기계라고 부르다 보면
나무가 많은 공원은 공장지대가 되고
벌 나비 접대하느라 고달픈 봄날을 보내던 나는
텃밭에 심은 몇 그루 사과나무 때문에
영세 기업의 사장이 되었다
굴뚝도 없고 소음도 없는 공장들
새들이 사는 곳을 공장지대라 불러도 되나
나무를 기계라고 쓰면
상추나 쑥갓은 수제품이라 읽어야 하나
세상이 삭막해질 것 같은 미래
명패는 호두기계 자두기계 사과기계 복숭아기계라고 써 붙여놓고
호두나무 자두나무 사과나무 복숭아나무라고
읽게 한다
과거의 사람들에게는
공장은 과수원이라 쓰게 한다
멀지 않은 미래
미래의 사람들이
빵을 기계에서 열매처럼 따먹고 있을 때는
과거의 사람들은 날개 없는 새를 타고
저 우주로 떠나고 있을 것이다
그때, 날아가고 있는 기계를 새라고 읽어도 되나
이 책은 밑줄이 절반이다
며칠 전 동묘 앞에 갔다가 헌책 한권을 사왔다
머리말부터 만만치 않았다
페이지마다 방점과 밑줄이 그어져 있어
도돌이표가 붙은 악보 같이 자꾸 앞 문장으로 되돌아가게 했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실 한 타래 들고 다녀야 하고
국어사전 영어사전 옥편도 준비해두어야 했다
한 페이지를 읽기 위해서는
천천히 풍경을 음미하며 밀고 가는
달팽이가 되어야 했다
여백이 있는 곳에는
“나르시스 새 그립다 孤獨 안녕 沈黙 4278 淑”
이런 낙서들이 다음 페이지를 궁금하게 하고
잠깐씩 나를 쉬어가게 했다
이 책의 연보를 읽을 때는
별자리들이 몇 번 바뀔 것이고
꽃을 피우고 있는 저 살구나무는 알몸이 될 것이다
————
*홍우식 /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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