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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시 새 경지 연 정지용의 ‘향수’가 모작이라고?

by 솔 체 2015. 5. 26.

한국 현대시 새 경지 연 정지용의 ‘향수’가 모작이라고?

 

세계일보 | 입력 2010.05.14 22:13 | 수정 2010.05.14 23:05

 

"다채로운 기층 언어 감칠맛 나는 리듬 모국어에 대한 최고의 헌사"
원로 평론가 유종호씨 조목조목 반박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경지를 연 정지용(1902∼1950) 시인의 대표시 '향수'를 모르는 이는 드물 것이다.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치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로 이어지는, 가요로도 만들어져 널리 알려진 명편이다.





◇문학평론가 유종호씨는 "중학 시절 내게 있어 정지용은 시인 중의 시인이었고 나는 그를 통해 우리말 어휘에 관심을 갖고 개개 낱말을 세세히 음미하는 버릇을 길렀다"면서 "명품을 찾아내는 것과 함께 명품을 지키는 것도 비평의 소임"이라고 밝혔다.

이 시에 대해 원로 문학평론가 유종호씨는 "1920년대 중반 우리 시의 상황 전반을 고려할 때 '향수'는 기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 매혹적인 뛰어난 작품"이라면서 "전례 없이 적정하고 다채로운 기층 어휘의 구사와 조직, 유장하면서 감칠맛 나는 리듬감, 쉽게 잊히지 않는 갖가지 정경, 복합적인 구도, 간절하면서도 애상적인 속기(俗氣)에서 자유로운 '향수'는 시인이 고향과 조국과 모국어에 바친 최고 헌사(獻詞)의 하나일 것"이라고 상찬했다. 이는 유종호씨가 지난달 말에 출간된 '현대문학' 5월호에 기고한 에세이 '사철 발 벗은 아내가 -'향수'는 모작인가?'에서 강조한 내용인데, 이처럼 원로 평론가가 새삼스럽게 '향수'에 대해 다시 언급하게 된 배경이 그리 간단치 않다.

근년 들어 인터넷 포털에 '향수'가 미국 시인 트럼블 스티크니(Joseph Trumbull Stickney·1874∼1904)의 '추억(Mnemosyne)'를 모방했거나 번안했다는 글이 나돌던 터에 중진 평론가까지 나서서 "모작이라는 점을 전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보이자 유종호씨가 모방의 혐의를 제시한 대목에 대해 조목조목 명백하게 반박하게 된 것이다. 그는 이 사단이 1997년 '충남문학'에 실린 '모방과 창조'라는 논문에서 시작된 것으로 파악하고, 이 글의 논거를 논리적으로 해체했다.

첫째, 소재의 동일성을 말하지만 집이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감정은 극히 비근하고 보편적인 것이고 둘째, 반복구가 같다지만 "the country I remember"와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가 내용상으로 같다고 말하는 것은 시의 특성에 대한 고려가 없는 소재주의적인 발상이며 셋째, '향수'의 시행 총수는 25행이고 '추억'의 시행 총수가 24행이니 과연 엇비슷하지만 '향수'와 같은 해인 1927년에 발표된 정지용의 '옛이야기 구절'의 총 행수도 24행이니 길이나 시행 수가 엇비슷하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일축했다. 이밖에도 외국에나 있을 법한 젖소 '얼룩배기 황소'에 대한 의문에 대해서도 재래종 '칡소'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줄 뿐 아니라 '추억'의 한국 번역판이 오히려 정지용의 시어로부터 영향을 받아 지나친 의역을 감수하고 '향수'의 시어들을 동원한, 그리하여 "엽전 시인 정지용이 죽은 스티크니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죽은 고전학자 스티크니가 동방의 청년 정지용을 모방한" 셈이라고 역공했다.





정지용 시인

정지용이 스티크니의 '추억'을 읽었을 가능성을 굳이 배제할 필요는 없지만 "'향수'는 제 땅에 제 발로 우뚝 서 있는 우리 근대시의 수작이며 설령 선행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환골탈태한 당당한 우리의 고전"이라고 유종호씨는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향수'는 1923년에 썼지만 '추억'은 1929년에서야 '미국시선집'에 수록된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면서 "아무리 일본이 재정적으로 윤택했어도 외국 군소시인의 모든 시집을 도서관에 비치했을지 의문"이라고 '문학외적인 호기심'을 보였다.

그는 "명품을 찾아내는 것과 함께 명품을 지키는 것도 비평의 소임"이라며 "많지 않은 우리의 정전을 지켜야겠다는 뜻도 있지만 편향된 논평과 평가가 기초적 독해를 선행하는, 극복돼야 할 우리 쪽 오랜 관행에 대한 반성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심정도 없지 않다"고 이 글을 쓰게 된 분명한 취지를 밝혔다. 학자들마다 떠드는 기준에 따르면 '실낙원'은 줄잡아 2000명의 선행 문인들에게 빚졌다고 하는데 "영향 연구나 탐색자의 부질없는 호사벽에서 나온 공허한 소동은 범세계적인 현상인 것 같다"는 원로 평론가의 지적이 크게 들린다.

[세계일보]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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