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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인 문 학 상

2011년 하반기 <시와반시> 신인작품공모 당선작 _ 최세라

by 솔 체 2015. 5. 30.

2011년 하반기 <시와반시>  신인작품공모 당선작 _ 최세라

 

 

   얼룩말 보도

 

    최세라

 

 

 

   여자와 그 남자는 같은 지붕 아래 있어요 녹색 신호등 안의 남자,

   머리가 깨진 채로 항상 어디론가 발을 떼는 이유는 자주 깜빡이기 때문일까요

   그 윗칸에서 늘 적자 가계부를 쓰는 여자,

 

   한 사람의 신호가 꺼져야 다른 식구의 불이 들어오는 집

 

   알이 몇 개 빠진 남자의 신호에 맞춰

   까만 바탕에 하얀 줄무늬가 있는 보도를 건너서 가요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지나는 동안은

   얼룩말들이 무릎 사이에 젬베를 끼고 두드리는 시간

   남자의 초록불이 깜빡거리기 전에

   서둘러야 해요, 사실 이곳은 세렝게티 초원이고

   가로수 뒤편으로 누런 가죽 맹수가 도사리고 있거든요

 

   붉은 울음으로, 여자의 신호가 켜지고

   오토바이들이 동시에 스프링복처럼 튀어나와요

 

   얼룩말 가죽 아래 실핏줄들이 부여잡은 땅 덩어리는 혹시

   아스팔트 기름이 깊숙이 배어든 검은 대륙이 아닐까요

   한 지붕 아래 보색으로 엇갈리는 신호들은 또

   세렝게티의 순한 짐승들을 덮치는 맹수의 눈빛이 아닐까요

 

   길을 건넌 사람들과 말을 섞으면서도

   내 마음은 아직 얼룩말 보도 위를 서성이고 있어요

 

 

 

 

   내향성 발톱

 

 

 

   휘어진 발톱이 살을 파고든다 발가락이 경고음처럼 부풀어 오른다 베이고도 믿을 수 없다 이렇게 둥근 것이 칼날이었다니 예고 없이 폭발하던 귓불 두툼한 너처럼 한동안 눌린 기세로 제 살을 베어 먹는 통조림 뚜껑처럼

 

   둥글고 매끄러운 절단면은 직선보다 빨리 닿는 것

 

   무리에 반쯤 잠긴 얼굴이 문을 두드린다 누구신가요? 잘못 든 길의 끄트머리에는 늘 너의 집이 있다고 안으로 파고드는 것의 가장자리는 늘 뜨거웠다고

 

   암호처럼 너는 내게 말하고

 

   속으로부터 익어가는 것의 부대낌을 아느냐고 한 번씩 몸을 파고드는 진동모드로 흔들리던 나무에 대해 들어 봤느냐고 내가 나에게 묻는다

 

   창문 너머 종이비행기를 날려 보내던, 네가 생각날 때면 거울을 향해 다트를 던지곤 했다 하지만 한 번도 나의 눈우물 속 여전히 살아있는 너를 맞힌 적은 없어

 

   그 말을 하는 동안 조금씩 탈색되던 입술은 누구의 것일까 끄트머리를 둥글게 깎은 내향성 발톱에 여러 번 찢기고 접힌 살점이 부풀어 오르고 한 발짝 뒤에서 딸기잼처럼 발가락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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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생각이 몸을 입을 때, 그리고 詩

 

 

 

   인파에 섞여 승선을 기다리는 세월이었다. 여행지도 정해졌고 동행할 사람도 구했는데, 좀 있으면 수평선에 뱃머리가 나타날 거라는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봐, 수평선은 하늘과 맞닿은 선분일 뿐 이국의 땅으로 데려다 줄 배를 낳지는 못해.

   환각처럼 배가 들어왔을 때 허둥거린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가상현실 속의 환청처럼 수화기 너머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아무 기둥이나 붙잡고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시인들의 여객선에 올라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시를 쓴다는 것, 그것은 생각이 몸을, 몸이 생각을 입는 아픔일 것이다. 발길에 차이는 돌멩이와 스페어타이어와 빛바랜 영화 포스터가 가슴을 통과하는 동안 그것들을 품고 은밀한 속삭임에 좀 더 귀 기울이고 싶다.

   아무 것도 아닌 것들에 전염되는 것, 내 몸에 증상이 나타나는 것, 젖은 눈으로 응시하는 것, 시쓰기에 앞서 내가 치르는 의식들은 이러한 것들이고 앞으로 이 의식들이 더 깊어지고 진실해지기를 나의 신께 기도드린다.

   서른아홉, 시인으로서 첫발을 떼는 순간이 눈부시다. 육아수첩 속에 우리 남매의 어리광을 기록하셨던, 머리맡에서 자장가와 클레멘타인을 불러 주셨던, 이제는 볼 수 없는 아버지. 그리고 시난고난 세월 속에서 함박웃음을 터뜨리는 작약꽃, 어머니를 생각한다. 딸의 등단을 가장 기뻐하실 것이다.

   먼 여정에 나서는 아내의 곁에서 묵묵히 가방을 들어 주는 남편의 배려와 꼬물이 남매가 고맙다. 이 여정을 끝까지 동행할 귀한 벗, 최서진 시인에게도 특별한 마음을 전한다.

   습작기의 첨예함을 무릅쓰고 온유한 말씀을 전해 주신 여러 선생님들, 문우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되었다. 거칠고 갈 길이 먼 자의 시를 관심있게 보아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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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라 / 국민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서울과학기술대학 평생교육원 수료,

 

 

 

■ 심사소감

 

‘속으로 익어가는 것들의 부대낌’

 

 

   마지막까지 논의하며 저울질했던 작품들이 「탑돌이」(김아롱), 「이상한 나라의 토끼」(이효선), 「모던 타임즈」(김지훈), 「주사위」(하수옥), 「얼룩말 보도」(최세라) 등이었다. 모두 만만찮은 기량과 말 부림 솜씨를 보여 주었다. 주제를 드러내는 집요한 시각의 유지와 이미지 구사의 집중력이 특히 좋았다. 그러나 본심에 올라온 대부분의 작품들이 비슷한 생각과 상상력과 재료들을 적당히 섞어서 버무려 내거나 우려내는, 최근 두드러지는 젊은 세대의 유행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서 작가 개개인의 개성이 드러나지 않은 채 일률적인 어조가 주조를 이루는 게 유감이었다. 아마도 이들 세대의 시 쓰기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이른바 ‘빵틀’이 있어서 유사한 소모품들을 찍어내는 게 유행되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였다.

   그런 가운데 최세라의 「얼룩말 보도」등 수편의 작품이 당선작으로 선택됐다. 김아롱의 작품이 끝까지 미련에 남았는데, 「탑돌이」의 뛰어난 발상과 전개를 다른 작품들이 받쳐주지 않은 게 아쉬웠다.

   최세라가 뽑힌 이유는 간단한다. 다른 응모자들의 작품들에 비해, 다소 직접적인 말을 구사하는 평면성은 있었지만, 앞에서 지적했던 ‘빵틀’에 비교적 얽매이지 않으면서 구체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고 애쓰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언어는 특정한 관념에 물들지 않는 자유로움을 구가하고 있어서 읽기에 - 또는 듣기에 - 편하면서 자신이 처한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만만치 않은 긴장감을 지닌다. 이미지를 얽어 짜는 솜씨는 꿰맨 자국을 남기지 않으려는 집요한 마감처리를 보여 상당한 내공이 느껴진다.

   그의 시는 관계의 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너’와 ‘나’, 또는 ‘가족’이나 집단 속에서의 ‘나’의 위상과 정체성을 파악하려는 아픈 노력을 보여준다. ‘한 지붕 아래 보색으로 엇갈리는 신호들’(「얼룩말 보도」) 속에서 야성의 세계 속의 얼룩말로 자신을 인식하는 모습이 애잔하다. 그리하여 ‘잘못 든 길의 끄트머리에는 늘 너의 집이 있다고 안으로 파고드는 것의 가장자리는 늘 뜨거웠다고’(「내향성 발톱」)라는 자조와 상처의식을 드러낸다. 그러한 자조와 상처의식을 통해 ‘속으로 익어가는 것의 부대낌’이라는 서로 간의 생명감을 획득하려는 의지를 강조한다.

   삶과 현실의 불화를 통한 자아의 정체성 찾기의 진실한 태도는 앞으로 더욱 좋은 시를 쓸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여긴다. 당선을 축하한다. 이후 현실과 삶을 잇는 언어를 더욱 개진시키면서, 열린 언어의 방목이 좀 더 자유롭게 이루어져, 우리 문학의 한 새로운 감성을 펼쳐 보이기를 바란다.

 

_심사위원(본심) : 강현국 문인수 이하석(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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