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수의 「이것이 날개다」감상 / 권혁웅, 신형철
이것이 날개다
문인수
뇌성마비 중증 지체.언어장애인 마흔두살 라정식 씨가 죽었다.
자원봉사자 비장애인 그녀가 병원 영안실로 달려갔다.
조문객이라곤 휠체어를 타고 온 망자의 남녀 친구들 여남은 명뿐이다.
이들의 평균수명은 그 무슨 배려라도 해주는 것인 양 턱없이 짧다.
마침, 같은 처지들끼리 감사의 기도를 끝내고
점심식사중이다.
떠먹여주는 사람 없으니 밥알이며 반찬, 국물이며 건더기가 온데 흩어지고 쏟아져 아수라장, 난장판이다.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정은 씨가 그녀를 보고 한껏 반기며 물었다.
#@%,0%.$&%ㅒ#@!$#*?(선생님, 저 죽을 때도 와주실 거죠?)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왈칵, 울음보를 터트렸다.
$#.&@/.%, *......(정식이 오빤 좋겠다, 죽어서......)
입관돼 누운 정식씨는 뭐랄까, 오랜 세월 그리 심하게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이제 비로소 빠져나왔다, 다 왔다, 싶은 모양이다. 이 고요한 얼굴,
일그러뜨리며 발버둥치며 가까스로 지금 막 펼친 안심, 창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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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하면서도 매혹적인 이 시를 몇 번이나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 그럴 수가 없었다. “정식이 오빤 좋겠다, 죽어서…”, 저 말줄임표는 세상의 모든 말들을 화장터에서 나온 재로, 곧 바람과 물물교환할 뼛가루로 만들어버린다. 그보다 더한 참혹이자 매혹은 정식씨의 탈출기(脫出記). “오랜 세월 그리 심하게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이제 비로소 빠져나왔다”는 거. 마술사들도 수중 탈출 쇼를 벌일 때에는 어깨를 탈골시킨다고 한다. 그래야 쇠사슬에서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식씨는 평생에 걸쳐 이승 탈출 쇼를 벌인 셈. 그는 뼈를 내주고 날개를 얻었다. 이 가혹한 변신담 앞에서 우리는 겨우 바랄 뿐이다. “죽어서…” 뒤에 붙은 저 말줄임표가 “밥알이며 반찬, 국물”이 “온데 흩어지고 쏟아져” 만든 “아수라장, 난장판”의 대신이기를. 칠성판 위의 재가 아니라 야단법석의 식사 자리이기를.
권혁웅 (시인)
“뇌성마비 중증 지체·언어장애인 마흔두살 라정식씨가 죽었다./ 자원봉사자 비장애인 그녀가 병원 영안실로 달려갔다./ 조문객이라곤 휠체어를 타고 온 망자의 남녀 친구들 여남은 명뿐이다./ 이들의 평균수명은 그 무슨 배려라도 해주는 것인 양 턱없이 짧다./ 마침, 같은 처지들끼리 감사의 기도를 끝내고/ 점심식사 중이다./ 떠먹여주는 사람 없으니 밥알이며 반찬, 국물이며 건더기가 온데 흩어지고 쏟아져 아수라장, 난장판이다.” 첫째 연이다. “그 무슨 배려라도 해주는 것인 양”을 제외한다면(이 구절, 참 야속하고 절묘하다) 죄다 덤덤한 진술로만 돼 있다. 시인이 이런 식으로 시치미 떼면 읽는 쪽이 외려 조마조마해진다.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정은씨가 그녀를 보고 한껏 반기며 물었다./ #@%, 0%?$&*%ㅒ#@!$#*? (선생님, 저 죽을 때도 와주실 거죠?)/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왈칵, 울음보를 터뜨렸다./ $#?&@\?%, *… (정식이 오빤 좋겠다, 죽어서…)” 둘째 연이다. 빈소의 아수라장 앞에서 자원봉사자 그녀의 마음이 이미 위태위태한데, 장애인 이정은씨가 힘겹게 말을 밀어내자 그녀는 끝내 운다. “좋겠다, 죽어서…” 아, 뭔가를 무너뜨리는 말이다. 뭔가를 쑤셔박는 말이다. 이 구절에서 아득했다. 너무 슬프면 그냥 화가 난다.
“입관돼 누운 정식씨는 뭐랄까, 오랜 세월 그리 심하게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이제 비로소 빠져나왔다, 다왔다, 싶은 모양이다. 이 고요한 얼굴,/ 일그러뜨리며 발버둥치며 가까스로 지금 막 펼친 안심, 창공이다.” 마지막 연이다. 이제야 시인이 끼어든다. 정식씨는 뇌성마비 장애인이었다.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겨우 말했다. 몸에서 빠져나와 날아오르려 몸부림쳤던 일생이었는가. 그리 되어서 라정식씨의 얼굴은 이제 이토록 고요한가… 시인은 이렇게 이해해버렸고, 읽는 나도 수긍해버렸다. 그래야 망자의 영혼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으니까.
천성이 모질어서인지 본래 이런 소재의 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의 슬픈 삶을 한없이 슬픈 눈으로만 들여다보아서 기어이 영영 슬픈 삶으로 만들어버리는 시들이 거북했다. 사회적 약자를 재현하는 일은 그렇게 어렵다. 시의 의식이 동정의 눈물을 흘릴 때 시의 무의식이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사태를 힘껏 막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는 어떤가. “좋겠다, 죽어서…”라는 아픈 말을 모질게도 옮겨놓았고,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시를 마무리했다. 이 덤덤한 듯 원숙한 기교 아래로 사무치는 진심이 저류한다. 시인이 끝내 절제한 그 문장을 경박한 내가 대신 써야겠다. “세상의 모든 정은씨, 살아서, 꼭 살아서 행복하십시오.”
신형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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