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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인 문 학 상

제30회 《열린시학》신인작품상 당선작

by 솔 체 2018. 4. 5.

제30회 《열린시학》신인작품상 당선작

 

                                                        

 

헬로우, 크로커다일 외 3편

 


  신운영

 




 


악어의 눈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열대의 늪이 부글거린다

단물이 다 빠진 껌처럼 허옇게 부푼 발이 움찔한다

낯선 길에서 우린 쉽게 지쳐버렸다

어색한 이름이 서로에게 등을 기댄다

어디선가 악어새의 초록 휘파람소리 들려온다

악어의 늪이 고요해지고 있다

악어새가 이백육십 개 악어 이빨을 꼼꼼히 어루만져준다

육식주의자의 어둡고 퀴퀴한 입에서

동굴공포증이 물러나고 있다

악어가 천천히 입을 닫는다

악어 이빨과 발등 사이 오 밀리쯤 불신의 거리에서

꼭꼭 신발끈을 졸라맨다

악어가 악어새를 등에 업고 성큼성큼 길을 나선다

코를 벌름거리며 풀섶을 헤치고 계곡을 건넌다

종일 악어는 열대의 늪을 물었고

악어를 몰며 악어새는 악어의 등을 마구 짓이겼다

 


악어는 한 번 문 여자를 결코 놓지 않는다

핸드백을 흔들며 지나가는 저 여자의 손에서는

열대의 늪이 부글부글 끓는다

 




 


 

종달새 우는 부푼집

 


 

 

뽁뽁이 속에는 종달새

동그랗게 부푼 집에 예쁜 그녀가 살고 있지

나는 초록의 보리밭에 날게 하고 싶어

버드나무 그늘로 들이고 싶어

뽁뽁이 하나 터트리면

뽁, 하고

놀란 눈의 종달새 한 마리 포르르 날아가네

종달새는 가슴으로 콩알을 삼킨 새

 


돌아와 종달새야

호주머니 속으로 숨는 종달새야

종달새 손엔

별자리 찾아 떠도는 슬픈 눈의 소행성들

새알을 쥐고 눈물 흘리지

그만해, 알이 깨질까

종달새 호주머니 속에 손을 넣을 수 없네

내 손은 고드름처럼 굳어 툭툭 부러지고

이름 지운 새는 강물에 익사하네

 


함부로 종달새 호주머니에 손 넣지 말 것

거기엔 위험한 뽁뽁이가 살고 있어

건드리지 마, 뽁뽁이를 지키는 종달새 한 마리

뽁뽁이가 잠들 때 종달새는 돌아오지

나는 구겨진 종달새 울음을 펴서 뽁뽁이를 싸네

겨드랑이에 끼고 백까지 세어볼까

셋에 한 번 깜빡이고

헛기침 두 번

그리고 길게 길게 심호흡.

 




 


 

매[鷹]의 기억

 

 

 







풀밭이 다녀갔다

털썩 내려놓았던 엉덩이 풀물 들어 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넓적한 어금니 되새김질하며

초원을 거닐던 초식 습성을,

숨이 여린 짐승은 밤마다 풀밭에 귀 기울여

곤두선 수만의 시간에 짙은 풀물 들이는 것일까

초원을 가르고 날아 온 매는

부리에 묻은 휘파람을 초원에 닦았다

감춘 발톱에선 갈가리 찢긴 이리의 울부짖음이

한 방울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저물도록 언덕에 앉아

지평선 너머 하늘을 찌르는 침엽수림을 동경한다

그 숲 송곳니 감추고 서성이는 이리떼

붉게 충혈된 눈을 동경한다

신화 속에서

염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초원을 건너 온 바람이

아이 엉덩이 초원의 표지(標識)를 쓰다듬고 있다

초원을 들인 아이 단잠이 들고

푸른 요람 안에선

비와 황토 바람이 떨어진 화살처럼 순해진다

노을의 성찬이 끝난 후,

태양보다 먼저 길을 나선 전사들이

숨을 놓는 구릉을 끌고 온다

목덜미에 늘 상처를 입는 전사는 초원에 칼을 씻고

젖은 풀잎이 비틀거리는 발을 감싼다

발등 흥건한 저녁

점점 묽어지는 초원의 흔적

 

 

층층나무

 

 

몽환 속으로 그림자 하나 꿈틀거렸다

겨드랑이가 간지럽다

언 몸을 추스르자 먼지가 우수수 쏟아졌다

머문다는 것은 끝없이 날개를 기우는 일

보라는 핏빛에 가까워지며 아름다워진다

넘어질 걸 알면서 상상한다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슬펐다

폭죽처럼 달아오르며 유월이 오지만

꽃은 피지 못하고

팝콘처럼 터져버린다

계절은 여지없이 덤이 되고

한 번 펼친 날개는 도로 집어 넣을 수 없었다

또 한 층 층계가 높아져

간지러운 겨드랑이에

방울방울 방울이 내걸린다

이제 곧 날개는 바람의 의자

소낙비의 북이 되고

깃털 젖는 소리가 온 산에 가득하면

보라는 다시 잊혀진 색이 된다

잎이 지는 가지를 따라

녹이 스는 소리

나무 속으로 사라진 방울 소리를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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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운영/ 1960년 충남 공주 출생. '비유와 상징'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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