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전 봉 건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강에서 / 전 봉 건
바람 불면
임진강으로 가서
못 건너는 강 건너
북쪽땅 산자락
내 집을 보았습니다
발돋움하고 보았습니다
그러기를 30년
이제는 나이 들어 흐린 눈
바람 불면 임진강으로 가서
못 건너는 강 건너 북쪽땅 산자락
내 집으로 부는 바람의
허연 뒷덜미나 보고 앉았습니다
시퍼렇게 살갗 튼 발뒤꿈치나 보고 앉았습니다.
사월(四月) /전봉건
무언지…… 눈이 부신 듯
수줍어만하는 듯
자꾸 마음이 안 놓이는 듯
바쁘고 그저 바쁜 듯
마치…… 새 옷을
입으려고
다 벗은 색씨의
샛맑안 살결인양!
서정(抒情)/전봉건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무에 걸린 바람도 비에 젖어
갈기갈기 찢기고 있었다.
내 팔에 매달린 너.
비는 밤이 오면
그 골목에도 내리고
비에 젖어 부푸는 어둠 속에서
네 두 손이 내
얼굴을 감싸고 물었다.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가장 뜨거운 목소리로.
( 평북 출생. 1950년 <문예>로 등단. 주지적 서정시를 많이 썼으며, 월간 시잡지 <현대시학>을 타계할 때까지 운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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