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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 명시들

입산(入山) /고은

by 솔 체 2019. 7. 16.

입산(入山)

고은




아승기겁(阿僧祇劫) 지나고 아승기겁이 남았구나
어찌 오늘이 오늘 하나뿐이냐
내가 쑥대머리로 산에 들어가나니
어느 누구 두고 온 쓸개를 시퍼렇게 달래겠느냐
마음은 인기척도 없이 크다
겨울밤 산에 들어가나니
유라시아 상공에서
유라시아만한 마음으로
멀리 멀리 사람들의 이름처럼 파도소리도 들리는구나
만상을 헛되다 말하지 말라
참답다 참답다
누가 어린 아이의 울음을 영롱하게 깔아 달빛을 받느냐
내 몸에서 아승기겁의 잠 깨워
잠든 물 한 굽이도 헛되지 않다
내가 쑥대머리 귀신형용으로 산에 들어가나니
한 가지 한 가지 나무가지에 걸린
이 세상의 빈 것들을 쳐다보며
들어가면 못 나오는 산에 들어가나니
지는 달아
나를 맞이하는 건 사나운 파르티잔 너뿐이구나 달아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내 진진찰찰(塵塵刹刹)의 어둠과 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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