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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정거장에서의 충고 / 기형도

by 솔 체 2014. 9. 26.

정거장에서의 충고 / 기형도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를 굴러다닌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그곳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 것이다
구름은 나부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혀는 흉기처럼 단단하다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들어선 안 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어떤 구름이 비가 되는지 알게 되리
그렇다면 나는 저녁의 정거장을 마음속에 옮겨놓는다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그의 시집『입 속의 검은 잎』의 해설에서 김현은 기형도의 시세계를 <영원히 닫힌 빈방의 체험>으로 명명했다. 가난한 유년의 기억과 실연의 부조리한 체험들을 기이하면서도 따뜻하고 처절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으로 펼쳐 보이며, "타인들과의 소통이 불가능해진 채 자신 속에서 암종처럼 자라나는 죽음을 바라보는 갇힌 개별자의 비극"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원래 무덤을 뜻하는 그로타에서 연유한 그로테스크란 말 그대로 무덤 속의 시체처럼 시와 삶에서 동시에, 그것도 스물 아홉이란 나이에 암전(暗電)돼 버린 그. 그는 지금 어디에서 생사를 거듭하고 있는가.

「정거장에서의 충고」는 기형도 시인의 그런 비극적 세계관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적 화자는 어쩌다가 집을 떠나와 정거장에서 서성거리나 이미 집으로 돌아갈 길이 이 지상에는 존재치 않고 추억은 황량한 상태에 놓여 있다. 그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몰려와 멎고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1행에서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라고 쓰고 있다. 정말 희망의 길을 찾고자 해서 그렇게 다짐했던가. 하지만 시는 중반 너머 종반이 다 되도록 어떤 희망의 조짐도 표현하지 않는다. 되레 사람들은 참으로 느린 속도로 죽어갔고, 많은 나뭇잎들은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으며, 그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그 길을 묻던 혀는 흉기처럼 단단해진 상태다. 끝내는 지금까지 나의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쓰는 것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한마디로 모든 길들은 흘러오고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니, 이제 더 이상 불안 따위에 시달릴 것이 없는 일이다. 그러니 어쩌면 그게 마지막 희망인지도 모른다.

결국 이 시는 인간의 실존적 불안에 시달려온 시적 화자가 그간 구원의 많은 길을 찾아 헤매었으나 황량한 추억과 고향상실감만을 안은 채 마음의 한 정거장에 당도하여 죽음 쪽으로 발길을 옮기려는 상태를 서술한 시다. 그러기에 마른나무에서 연거푸 떨어지는 물방울은 목숨을 다한 나무에서 이탈한 수액으로 시신에서 흘러내리는 죽은 피를 닮았고, 종반부 화자가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들어선 안 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이라고 타이르는 물방울도 기력이 다하여 움직이기를 그친 비가 되는 것이다. 아울러 노트는 시의 처음부터 천천히 덮이는데, 사실 이 노트는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란 표현으로 미루어 보아 인간의 불안과 권태와 죽음을 캐고자 했고,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는지"란 표현으로 보아 나뭇잎과 우주와 자연의 비밀을 캐려 했으며, 나아가선 삶의 참된 길을 찾고자 늘 의심을 품던 노트였으나 끝내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채 닫힌다. 그러니 희망, 물방울, 노트, 추억, 개, 길 등은 이제 죽음의 희망을 노래하려는 시적 화자의 심리를 추적케 하는 화려한 수사에 불과했던 것이다.

기형도는, 위 시에서 나타난 대로 비록 죽음 쪽으로 암전이 되어 버렸지만, 80년대의 민족· 민주· 민중이라는 거대담론의 광장 속에서도 새로운 감수성의 언어를 통하여 광장이라는 외부적 실존보다 그 속에서의 내면의 불안이나 허무, 그리고 죽음의식을 치열하게 묘파해 냈다. 그의 그런 독특한 개성은 아직도 시단에서 그 위의를 톡톡히 떨치며 많은 젊은 시학도들의 추종을 받고 있다 * [고재종 서평]

 

기형도(奇亨度  1960. 2.16 ~ 1989. 3. 7)



  시인, 기자

1960. 2.16
     (음력)

경기도 옹진군 연평도 출생. 부친 기우민, 모친 장옥순의 3남 4녀중 막내로 당시 부친은 황해도 벽성군 가우면 국봉리에서 피난 온 후 교사를 거쳐 공무원(면서기)으로 재직함

1965(5세)  




민주당원으로 활동하며 영종도 간척 사업에 몰두하던 부친이 정부보조금 단절과 여러 압력으로 실패하고 유랑하다 경기도 시흥군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에 정착하여, 이사하게 됨. 급속한 산업화에 밀린 철거민, 수해 이재민이 정착촌을 이루었던 소하리는 아직까지 도시 배후의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1985년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인 "안개"의 배경이 된다.  걸음마를 하기 전에 노래를 배우고 여섯 살 무렵에는 신문에 나온 한자를 읽어 주위에서 '신동' 소리를 듣기도 함.

1967(7세)
시흥국민학교에 입학. 부친이 농사를 지으며 마을 개발에 관여하여 생활이 다소 유복해 짐.

1969(9세)




부친이 뇌졸중으로 쓰러짐(91. 8. 19.사망). 이후 가계가 기울고 모친이 생활을 꾸려 감. 그의 시 [위험한 家系(가계) 1969]'그해 늦봄 아버지는 유리병 속에서 알약이 쏟아지듯 힘없이 쓰러지셨다', [엄마걱정] '열무 삼십단을 이고/시장에 간 우리 엄마/안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엄마 안 오시네' 등은 이 무렵의 체험을 시화한 것.

1973(13)

시흥국민학교 졸업. 성적은 우수하였고 노래와 그림에 재주를 보임. 특히 만화를 잘 그려 수십 권의 만화책을 만들어 동네 사람들이 빌려가기도 함.

1975(15세)




고등학교 2학년인 셋째 누이가 불의의 사고(가해자가 같은 교회 교인으로 이후 교회를 안나감)로 사망. 이 사건은 그의 감성에 깊은 상흔을 남겼으며 이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 함. [나리 나리 개나리]는 그 때를 회상하며 쓴 시. '어느 날의 잔잔한 어둠이/이파리 하나 피우지 못한 너의 생애를/소리없이 꺾어갔던 그 투명한/기억을 향하여 봄이 왔다'

1976(16세)

신림중학교 수석 졸업(1회) 및 중앙고등학교 입학. 교내 중창단 '목동'에서 바리톤으로 활동. 백일장, 시화전에서 두각을 나타냄.

1979(19세)

중앙고등학교 수석 졸업. 연세대학교 정법대 정법계열 입학 및 교내 문학동아리 '연세문학회'에 입회 후 본격적인 문학수업 시작.

1980(20세)


교내 신문인 [연세춘춘]에서 제정, 시상하는 '박영준문학상'에 소설 [영하의 바람]으로 가작 입선. 교지 [연세]지에서 제정, 시상하는 백양문학상 시 부문에 [가을에1 ]로 가작 입선.

1981(21세)  

7월 방위병으로 안양 근교에서 복무하며 안양의 문학동인인 '수리'에 참여. 동인지에 [沙江里(사강리) ]등 발표하고 시작에 몰두. 대부분의 초기작이 이때 씌여짐.

1982(22세)  


6월전역, 복학후 [겨울 版畵(판화)] [포도밭 묘지] [폭풍의 언덕]등 다수의 작품을 쓰며, 교내 신문인 [연세춘추]에서 제정, 시상하는 '윤동주 문학상'에 시 [植木祭(식목제)]로 당선. 신춘문예에 응모하기 시작함.

1984(24세)
10월 중앙일보사 입사.

1985(25세)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안개]가 당선됨. 이후 문예지에 [專門家(전문가)],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늙은 사람],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 [白夜(백야)], [밤 눈], [오래된 書籍(서적)], [어느 푸른 저녁] 등의 시를 발표. 2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수습을 거쳐 중앙일보 정치부에 배속 됨.

1986(26세)


문화부로 자리를 옮김. [위험한 家系(가계) 1969], [鳥致院(조치원)], [집시의 詩集(시집)], [바람은 그대 쪽으로], [포도밭 묘지 1/ 2], [숲으로 된 성벽] 등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표하며 문인 및 출판관련 인사들과 활발히 교유함. <시운동>동인.

1987(27세)

여름휴가로 유럽여행. [나리 나리 개나리][植木祭(식목제)][오후 4시의 희망][여행자][장미빛 인생] 발표.

1988(28세)



편집부로 자리를 옮김. 여름 휴가 때 대구, 전남 등지로 여행하며 여행기[짧은 여행의 기록]과 시 [진눈깨비], [죽은 구름], [추억에 대한 경멸], [흔해빠진 독서], [노인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물 속의 사막], [바람의 집-겨울版畵(판화) 1], [삼촌의 죽음-겨울版畵(판화) 4], [너무 큰 등반이의자-겨울版畵 7], [정거장에서의 충고], [가는 비 온다], [기억할 만한 지나침] 등을 발표.

1989(2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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