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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시를 쓰기 위한 몇 가지 준비

by 솔 체 2014. 9. 29.

시를 쓰기 위한 몇 가지 준비



젊은 날에는 누구나 한번쯤은 글을 쓰고 싶어합니다 먼 훗날 이름도 모르는 독자들이 자기 작품을 읽고 눈부시게 푸르른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자신을 기억해준다면 얼마나 멋질까 하는 생각에서입니다. 그러니까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영원히 살고싶다는 욕망 때문에 그런 꿈을 꿉니다.

그러나, 그런 꿈을 이루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대개 몇 핀쯤 쓰다가 이내 포기하고, 시인이나 작가가 되어도 자기 혼자 좋아서 쓸 뿐, 독자들로부터 별다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한 채 이 세상을 떠나기가 일쑤입니다.

우리들의 빛나는 꿈이 덧없이 스러지는 것은 글쓰기에 대한 몇 가지 그릇된 생각과 그로 인해 잘못된 습관을 기르는 데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글을 쓰려는 사람은, 그리고 문학사 속에 길이 살아남고 싶은 사람은 작품을 쓰기 전에 대한 자기 관점들을 검토해봐야 합니다. 이 장에서는 글을 쓸 때 누구나 잘못 생각하기 쉬운 문제 몇 가지를 골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우선 글쓰기가 취미나 재능의 문제가 아니다

이와 같이 시쓰기를 쉅게 포기하는 것은, 시인이 되는 것도 좋지만 자기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다거나, 그런 재능이 부족하다고 속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시쓰기를 취미의 차원으로 받아들이는 데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를 쓰고 싶어하는 욕망은 일종의 취미가 아닙니다.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 가운데 하나일 뿐만 아니라, 반드시 길러야 할 기초 능력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이를 외면하면 자아의 능력을 최대한도로 개발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신적 안정과 성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글쓰기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에 뿌리를 밖고 있습니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영원히 살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사르트르(J. P. Sartre)의 분류에 따라 자아를 <홀로 있는 나(en-soi)>와 <타인과 관계를 맺은 나(pour-soi)>로 나눌 경우, 자아의 가치는 <타인과의 관계를 맺은 나>에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생명은 유한합니다.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해도 현실적으로 그럴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굳이 방법을 찾는다면, 정치나 경제처럼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분야의 지도자가 되거나, 신문 방송 같은 매체를 통하여 자기를 들어내는 글을 쓰는 방법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정치나 경제 분야의 지도자가 되는 것은 다분히 자아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사이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자기 의도대로 이뤄질 확률이 적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이런 요소들은 바뀌기 때문에 잊혀지기 마련입니다.
반면에 글쓰기는 홀로 실행할 수 있기 때문에 대중 앞에 서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과 의도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그리 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빛나는 꿈을 지닌 젊은이들이나, 그를 실현하려다가 어느덧 노년으로 접어든 사람들이 글을 쓰고 싶어하는 것도 이 런 이유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 글쓰기가 인간의 기본적 능력 가운데 하나이며, 반드시 길러야 기초능력이라는 것은 우리의 정신 활동을 살펴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지적 활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보(情報)를 수용(受用)하는 활동이고, 다른 하나는 자아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한 표현(表現) 활동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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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수용 활동은 주로 언어를 통해 <듣기>와 <읽기>로 이뤄집니다. 그리고, 언어를 통한 표현 활동은 <말하기>와 <글쓰기>에 의해 이뤄집니다.

그런데, 수용은 표현을 위한 준비 작업입니다. 그리고 같은 표현이라고 해도 <글쓰기>가 <말하기>보다 고차적 기능에 속합니다. 말하기는 화자(話者)와 청자(聽者)가 대면하여 언어를 통해 주고받지만, 몸짓이나 표정 같은 연행적(演行的) 요소들의 도움을 받는 반면에, 글쓰기는 문자라는 추상적인 기호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웅변가나 달변가처럼 말할 수는 없어도 논리적으로 타인을 잘 설득할 수 있고, 인간과 인간 관계를 다루는 <인문>·<사회>·<예능> 계열 학문에도 상당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아니, 시쓰기는 인간에 관한, 또는 인간과 인간 관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문학과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는 수학(數學) 과학(科學) 논리학(論理學) 같은 분야에서도 영향을 미칩니다. 인간의 정신활동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직관(直觀)과 상상력(想像力)이고, 인문과학(人文科學)이냐 자연과학(自然科學)이냐 하는 차이는 상상력을 어떻게 발휘하고 입증하느냐는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예컨대, 뉴톤이 발견했다는 "만유인력(萬有引力)"의 이론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흔히 뉴우톤이 가을날 사과밭 사이로 난 길을 걷다가 잘 익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발견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을 곧바로 수학으로 풀어 그 이론을 입증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가 곧바로 복잡한 계산에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은 꼭지가 없는 데도 왜 떨어지지 않는데, 그보다 낮은 곳에 꼭지에 매달린 사과는 왜 떨어지는가 생각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도 모르게 <달=사과>라는 동정화(同定化), 즉 시적 상상력을 발휘한 다음 계산에 들어갔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가 상상한 것을 언어로 입증하려는 사람들은 시인이고, 숫자나 공식으로 입증하려는 사람들은 과학자이며, 효율적인 제도를 입증하려는 사람들은 사회과학자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글쓰기가 인간이 갖춰야 할 기초 능력 가운데 하나임을 입증하는 제도로는 과거(科擧)를 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근대까지 시문(詩文)에 능한 사람을 뽑아 관리로 임명해왔습니다. 그것은 문학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인문사회는 물론 자연 과학적 능력 역시 탁월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글쓰기를 포기하는 것은 특수한 취미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갖춰야 할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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