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상반기 <시를사랑하는사람들> 신인추천작품상 / 이가영
[심사위원 : 신달자, 원구식, 박주택 시인]
수석
―청송 꽃돌
돌덩이 속에도 씨앗이 있었구나,
가을 화석은 국화꽃을 화사하게 피우고 있다
붕붕거리던 햇살 수백 마리 달라붙는 날
국화꽃은 세상 어떤 꽃보다 더 환한 빛을 품는다
가까이 다가가 꽃술 깊숙이 들여다보면
우리 집 피아노 소리와 물소리가 흐르고 있다
손 뻗어 건드리면 딱딱한 울음들이 잡히는 것은
단 한번도 향기를 울컥울컥 토해내지 못한 까닭일 게다
울어 본 적 없는 꽃의 뿌리가 문갑 밑으로
침대 밑으로 제멋대로 뻗으면
침대 위에 꽃잠 자는 아이 발꿈치부터 시작해서
키 큰 장롱까지 이파리 퍼렇게 자라
주먹만한 꽃이 숭어리, 숭어리 필 것이다
아이의 꿈은 조용조용 꽃잎 속으로 숨어 들어가
더 예뻐지려고 꽃물 든 손으로 꽃단장을 할 것이다
그런 날은 아마 대낮같이 환해져서
불을 밝히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런 날이 오면 닫아 버린 향기도
음악처럼 흘러나올 것이고
나는 향기를 먹고 사는 꽃방을 가진
한 그루 나무가 되어 더없이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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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다
대문 앞에 수도꼭지가
두터운 스티로폼 옷을 껴입고 운다
멈추지 못하는 눈물은 말 못할 사랑이리,
발밑에 놓아둔 넓적한 고무대야도
매일 밤 퍽, 하면 따라 운다. 수위를 넘는 눈물이
상처 입은 여인들이 서로 다정히 어루만져주듯
마당은 눈물이 넘칠 때마다
한낮 울며 떠난 사람 생각하듯 궁금해진다
눈물은 푸른 저수지에 핀 흰 찔레꽃
그 흰빛이 많은 집에서
어머니는 서럽지도 않은데 자꾸 눈물을 흘린다
어머니는 그녀가 밤새 흘린 눈물로
국을 끓이고 밥을 지어먹어서 눈물샘이 막혔다고 했다
물과 눈물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고이는 것은 한 방울씩 울게 둬야 돼,
그러지 않으면 가슴이 터져버린다기에
혼자 울게 두고 방으로 들어갔다
눈물을 보고 아무렇지도 않은 사랑이 두려울 때가 있다
사는 게 팍팍하고 목이 멜 때
한 달에 한 번 죽죽 흘러넘치도록
가끔 나도 수도꼭지 돌리고 싶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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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를 삼킨 유리창
팬션 유리창에 새가 부딪쳐 죽었다 오층 건물에 산빛이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다 정오의 햇볕이 이동하면서 산꼭대기까지 반사되는 것을 보고 조류학자들은 유리창이 초록 그물을 짜기 시작하는 것이라 한다 먹이를 찾아 나서는 새가 빠른 속도로 날다 보면 그가 쳐놓은 덫에 여지없이 덜컥 걸려든다 새는 얼핏 비치는 나무의 반영에 속고 허공에 속고, 속고 속고, 그는 속이 비어 있을수록 눈동자가 빛을 내뿜으며 반짝인다 그런 눈빛이라면 전혀 움직임 없는 하시비로코우 새처럼 먹이를 찾아 나서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세상을 굽어보고 있던 유리창은 굳이 새가 오지 않을 때는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구름을 뜯어먹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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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사내
강가에 버드나무는 물고기를 낚는다
바람 불면
낚싯대 드리우고
강을 굽어보고 있다
조용하던 물결이 찰랑거리면
버드나무는 어린 버드나무에게 물고기 낚는 법을 가르친다
물고기는 쌉싸름한 향에 걸려들 것이라고 했던
아버지는
예순 둘에 뇌졸중으로 돌아가셨다
버드나무를 보면 안다
나뭇가지가 한쪽 방향으로 휘청거리면 월척이라는 것
찌릿찌릿한 손맛을 느낄 때는
새들도 버들가지에 앉지 않는다
텅 빈 마음 가득 채우는
어느 날
둑길을 걷는데 아버지가 강가에서
척척 걸리는 물고기를 낚느라 꼼짝 않고 있었다
저문 강에 나가 보면
세상 떠난 이가 남기고 간
낚싯대 드리운 버드나무가 꼭 하나씩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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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달
생강나무 그늘을 보면 매콤한 냄새가 난다 아롱거리는 냄새 맡고 있으면 어느새 생강꽃은 은근한 햇볕에 샛노란 카레 빛깔로 북적북적 끓어오른다.
꽃샘추위 물러가고 배곯은 머리 흰 바람 자박자박 무료급식소 용케 알고 찾아온다 두류공원 시계탑, 그 앞에 나무 사이사이 신문지 깔고 앉은 바람이 생각보다 많다.
서로 모르는 비둘기도 구름도 한 자리에 모이는 날, 입맛 잃은 백양나무 두 그루처럼 나도 북적거리는 그 자리에 힐끔거리며 서 있었다, 세상의 길이 반들반들하다.
부축해 온 바람이 말끔히 비운 접시를 땅에 떨어뜨릴 때 몸보다 마음이 먼저 봄하늘에 오백년 된 쪽배로 떠 있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8년 3-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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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영 / 1962년 대구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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