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상반기 열린 시학 신인상 당선작- 곽구영
봉강다방 W.C에서 내 입을 만나다 외 4편
곽구영
종일 눈이 내려서
종일 입을 쉬지 않고 먹다가
봉강다방 W.C에 쪼그리고 앉아서
가져간 신문 다 읽고, 누가 놓고 간
구겨진 신문 쫙쫙 펴서 다 읽다
우연히 내려다 본 저 아래
오, 이런
변기통 고인 물에
내 입이 둥둥 떠 중얼거리고 있다
식탐은 나의 원죄
아침마다 오랜 시간
변소를 차지한 어린 나에게
이눔아 웃입이 편해야
아랫입도 편하 거여
이빨 다 빠져
약과 닮은 입술 하나로
오물오물 야단치시던
할머니의 입이
내 아래로 찾아와 딱 붙었다
하루 종일 오물오물 말하는 입
볼일도 못 보게 하는 입
내 아래의 입
아웃사이더의 햇볕
야자수 푸른 고?이야기를 하면
금방이라도 눈물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베트남 새댁
삼년 다닌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영자 씨, 국밥 그릇마다 수북수북 담기는 저 웃음
언제나 그 옷인 듯 한 옷을 입고
언제나 같은 풍경으로 웃기만 하는 사람 좋은 재삼 씨
조세형이나 신창원이 잡히지 않길 바랐던
그러나 일일 연속극에도 눈물 흘리는 우리 이장님
군에서 축구할 때 투 스타와 악수한 것이 훈장인
조기 축구회 원로 아바이 순댓집 장씨
재래시장 국밥집 낡은 木의자에 나란히 앉아
빗살무늬로 기웃거리는 햇살 한줌 받아
모두 착하게 나눠 먹는다
활기찬 공업도시의 한적한 뒷골목에서
부스럼처럼 닥지닥지 앉은 사람들
모두가 한입이다
그 입속서 펴져 나오는 햇살 또한 한입이다
순남이
순남이란 상리 초등학교 한 반 계집아이 있었다
열두 살이었지만 채송화처럼 키 작은 순남이가
배탈 난 이웃 반 남학생 책 보따리를 대신 둘러메 준 것이
나는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하굣길 냇가에서 순남이의 뺨은 왜 때렸는지
그 이유도 지금까지 알 수가 없다
순남이 코피가 터져 하얀 옥양목 적삼을 적셔
순남이 노을 속에서 서럽게 울던 풍경이
이 봄에 선명하게 인화된다
구구단은 못 외웠지만 언제나 하얗게 웃던 순남이
순남이에게 아무 말 못한 채 멈춰버린
내 열 두 살의 봄
즐거운 오줌
산촌 상가喪家 가는 길 오랜 버스길에 오줌 급하다. 정류장에 내려 무작정 찾아 간 산골 작은 초등학교. 화장실이 어딘지 묻는데 솔씨 같은 일학년 아이 몇이 우루루루 달려와 소인국에 잡혀 온 걸리버처럼 나를 끌고 간다. 엉겁결에 구두까지 신은 채 끌려가 오줌을 눈다. 그 때 까르르 까르르르 폭죽처럼 터지는 아이들 웃음소리. 화장실 창문 죄다 열려 있는데 창마다 아이들이 한 여름 매미처럼 붙어 요란하게 웃는다. 도시 손님 오줌 누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며 웃는다. 똑같이 생긴 마트로쉬카Matryoshka* 같은 아이들. 웃음소리 속에서 똑같은 아이들이 나오고 아이들 속에서 똑 같은 웃음이 나온다. 맑은 폭포처럼 쏟아지고 쏟아지는 산골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서서 오줌을 눈다. 햇살 속에서 오줌 누는 일이 이처럼 즐겁다니. 내 오줌 속에서 유년의 어린 내가 끊임없이 튀어와 달려간다.
*러시아의 전통 목각 인형으로 인형 속에 인형이 계속 들어 있는, 多産과 풍요를 기원하는 퓜缺?인형.
염소 똥처럼 빛나는
―사량도에서
그 섬 어디든 배를 내려 돈지 쪽으로 가다보면
길은 뱀처럼 꾸불꾸불 기어간다, 어이 어이 부르면
그 길 위에 검은 염소들 윤기 있는 문장으로 이어진다
매해해 매해해 빛나는 햇살에 뿔을 들이 받는 염소들
눈망울이 진주처럼 눈부시다
섬의 길은 바다에서 하늘로 이어지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맨드라미 씨처럼 작은 詩들이
꿈틀꿈틀 살아있는 말씀의 행을 만들며 간다
굽이굽이 염소 똥처럼 빛나는 마침표를 찍으며
■당선소감
‘히폴리테’가 되어 둔중하나 매서운 화살을 쏘아대고 싶다
초등학교 오학년이던 것 같았다. 郡內 백일장에서 ‘어머니’란 시로 얼떨결에 최우수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지금 그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머니 손은 갈퀴 손’이란 글귀가 여태껏 내 머리에 남아 있다. 農事를 聾事처럼 하며 사는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을 갈고리 손으로 비유했던 것 같다.
중・고등학교 때, 학생잡지에도 몇 번 이름 올려 보고 각종 백일장과 문예공모에도 쏘다녀 보았다.
해운대 백사장의 늦가을 밤, 유치환선생과 이영도선생을 함께 모시고 밤새 술 마시며 재롱(?)부리던 기억도 난다. 대학시절엔 어느 시 전문지에 시를 하나 올렸으나 채찍뿐인 비평에 많은 자책을 하며 부끄러워했다. 그런 시건방졌던 내가 싫어서 글이란 것에서 20여 년을 떠나 있었다.
나이 오십이 되는 어느 날, 문득 글을 쓰고 싶었다. 하루 두어 갑 피우던 담배를 갑자기 몸이 받아들이지 않게 되던 그 무렵이었다.
그러나 마음만 앞섰지 얕고 엷은 글은 줄이 짧은 급조한 두레박이어서 깊고 그윽한 샘을 퍼 올리기는 도무지 역부족이었다.
던져두었던 책이며 책방을 돌며 구한 詩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 가고 있다. 맑고 슬픈, 아름다운 서정의 시들에 눈물 흘리고 있다. 그간 가지 않던 늪으로나 보지 않던 나무들을 만나러 바람처럼 쏘다니고 있다.
언젠가는 한쪽 가슴을 도려낸 ‘히폴리테’가 되어 둔중하나 매서운 화살을 쏘아대고 싶다.
나의 詩를 위해 나의 몸은 별꼴이 되더라도 아주 값진 테라코타가 되고 싶다.
졸시를 뽑아주신 심사위원께 큰 감사를 드린다.
곽구영
경남 고성 출생. 동아대학교 졸.
■심사평
현실을 읽어내는 안목, 존재론적 성찰, 투철한 시의 힘
이상기온 탓인가, 겨울이 춥지 않은 탓인가, 대선이 끝난 뒤의 신인상 투고작에서 절실함을 크게 읽지 못한다. 무릇 신인의 작품은 겨울의 추위 같아야하고, 그 겨울을 이기는 봄의 예감 같아야 한다. 이것은 투고자의 잘못이 아니다. 지금의 한국문학의 문제다. 시가 넘치고 시집이 넘치고 시인이 넘친다. 그러나 독자는 없다. 시의 길을 치열하게 개척하는 다음 세대가 없다. 투고작을 읽으며 심사하는 사람의 丁門에 일침을 놓는 뜨거움을 기대했지만 그렇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벗겨진 구두」 등을 투고한 한경용씨는 시의 그릇을 빚었으나 정신을 담지 못했다. 여기서 정신이란 개성이다. 개성은 그 사람의 향기다. 한씨의 작품은 어려운 듯 하나 쉽고, 쉬운 듯 하나 어렵다. 「고흐와 사이프러스․1」 등을 투고한 정미정씨는 상상력이 발랄하다. 그러나 그 발랄함을 감동으로 이끌어가는 세공이 부족하다. 그래서 아쉽다. 다음 기회에 웅숭깊어진 정씨의 작품을 다시 만나고 싶다.
이런 가운데도 우리는 진실 되게 시의 길을 걷고 있는 좀 우직한 경우를 만날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에 시조 당선작으로 확정한 강현수는 「연해주」 외 작품에서 신인으로서는 보기 힘든 역사에 대한 인식을 서정적인 화폭으로 재구성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제주의 자연을 사랑하면서도 현실을 읽어내는 안목 또한 날카롭다. “만성의 적자 가계부, 봉침을 꽂고 싶다.”에서 보듯(「꿀을 따며」中) 생활인으로서의 아픔을 잘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패기와 사랑을 한국의 시조를 위해 유감없이 발휘해줄 것을 부탁한다.
이점화 씨의 작품은 구도자로서의 존재론적 성찰이 특히 심사자 모두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가 추구하는 세계는 “산승과 솔새는/닿지 않는 하늘로/붉은 빛을 나”르는 공간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무미의 공간에 “석불도 기어이 앓고 마는 갈색 빛”을 읽어내는 섬세한 감식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탁월한 선시의 一喝을 기대해 봄직하다.
또한 「봉강다방 W.C에서 내입을 만나다」 등을 투고한 곽구영씨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그의 시는 일상에서 시의 풍경을 읽어낸다. 오랫동안 시를 써온 시의 힘이 투철하고도 세밀하여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운 신뢰를 갖게 한다. 보다 큰 보폭을 보완해나간다면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시인이 되리라 판단된다. 신인상 당선은 완성이 아니라 출발이다. 세 분 다 더욱 정진을 부탁한다.
― 심사자 : 이상국, 정일근, 황인원, 이지엽
'신 인 문 학 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08년 제23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정끝별 시인의 <크나큰 잠> 외 14편 선정 (0) | 2014.11.02 |
|---|---|
| <현대시학> 제17회 신인작품공모 당선작 _ 김연아 (0) | 2014.11.01 |
| <현대시> 2008년 상반기 신인추천작품상 당선 _ 최형심, 조혜은 (0) | 2014.11.01 |
| 2008년 상반기 <시를사랑하는사람들> 신인추천작품상 / 이가영 (0) | 2014.10.31 |
| 2005년 《작가세계》신인상 / 천서봉 (0) | 2014.10.3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