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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인 문 학 상

제9회 《詩로 여는 세상》신인상 당선작

by 솔 체 2014. 11. 6.

제9회 《詩로 여는 세상》신인상 당선작

황정숙 / 鄭水鏡 / 서 화



열매에도 붉은 상처가 있었네 (외 2편) / 황정숙



벚나무 푸른 잎새 사이로
듬성듬성 매달린 붉은 버찌
꽃잎이 아문 자국이라네

넘어져 깨진 무릎
근질거림을 참지 못해 잡아뜯은 딱지처럼
그 속에도 붉은 자국은 있었네
얼얼하게 잊고 지내다가도
문득, 어머니 죽음이 생각나듯
자지러지게 다가오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에
그 아픔이 꽃잎처럼 후두둑 떨어진다네

가슴 속에
상처 하나씩 숨기고 산다는 것
새살이 딱지를 밀어낸 흔적
꽃 진 자리 보아 알 수 있겠네

그 자리에 다시 푸른 잎 돋고
잘 영근 주머니 속에서
붉은 입술들이 물고있는 까만 씨앗들
열매 속 깊이 잘 익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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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방 / 황정숙



완두콩을 까다가
껍질의 울퉁불퉁한 지문을 본다
이력이 담긴 손금처럼 길쭉한 주머니
햇빛을 향한 콩 꼬투리는 단단하고 열매는 실하다

엄지손톱 꾹 열쇠 돌리듯 푸른 방을 연다
나란히 탯줄에 달린 여린 눈망울들
갑작스런 햇살에 화들짝 놀란다

도화지에 물감 발라 두 겹으로 접었다
펼쳐보면 똑같은 모양이 하나 더 있다
콩 꼬투리 반으로 열면
두 몸이 한 몸을 이룬 부부 같다
연둣빛 날개를 가진 나비 한 마리
금방이라도 무우밭으로 날아갈 듯
손끝만 닿아도 푸른 물 만져질 듯

느닷없이 내게 들어와
마음의 기둥과 기둥을 세워
내 안에 또 하나의 방이 된 그를 위해
압력솥에 밥을 짓는다
밥 끓는 소리가 들린다
콩이 솥뚜껑을 밀어내며 뽀얗게 오르는 밥 냄새

그새 탯줄을 끊고 맨발로 달려온 어린것들이
둥근 밥그릇에 알몸으로 올라 눈을 맞춘다
밥상에 둘러앉은 콩깍지 속 우리 방이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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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 / 황정숙



초여름 숲에서 만난
낡은 너와집 한 채
오동나무 둥치에 달라붙은
빈집, 매미가 빠져나간 투명한 방

차마 나가지 못한 울음의 자리
손가락 끝에서 부서질 듯 바스락거린다
은둔했던 나무껍질에서 나와
오동나무 귀 아프도록
들려주려 했던 말은 무엇일까
옷 한 벌 걸어두고 어디 갔을까

알맹이 빠진 껍데기
바람에 흔들리는 조등처럼 걸려있다
뱃심 하나로 살던 이 가벼운 몸
손저울로 가늠해 보는데
빈 방은 아직도 새벽 이슬을 기억한다

그 해 여름,
오동나무 관에 달라붙어 울던 그녀처럼
어디선가 산깽깽이매미 산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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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숙 / 1962년 경기도 강화 출생. 제7회 시흥문학상 입상. '시마을'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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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옆에 서있는 돌 (외 2편) / 鄭水鏡



풋내가 사방으로 번지는 봄 끝물
철쭉꽃 배시시 붉은
입술 벌어지는 소리에
감감하던 화강암
온몸을 열어 귀기울인다

초식공룡의 발소리 잠재운 불 속
암반이었던 바닷속 어느 모퉁이
옛 기억이 불씨로 박혀 있다

자꾸만 뜨거워지는 열기
벗어나려 할수록 허물어지던 날
몸을 털어 불길 밀어내면서
더 굳어지던 몸피

뼛속 깊이 숨겨 두었던
검은 파도소리 토해낸다, 한 번 데인
마음은 더 이상 금가지 않는다고
누가 그러던가
붉은 꽃 필수록 바닷속 일렁거리는 기억
핏빛 불꽃으로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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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 鄭水鏡



가구 배치 바꾸느라 장롱을 옮겼다
한쪽 발 꽉 물고 놓지 않는 십 원짜리 동전
장판에 새긴 제 기억

물고 있던 이빨 헐거워질 때마다
발꿈치 치켜들고 버텨온 시간
장롱의 무게보다 불빛 없는 방안
캄캄한 무게가 더 무거웠다

밤마다 틈이 벌어지는 소리 들렸다
속 헤집고 그림자만 있는 아이들이 들어가고
침대 중앙으로 흐르는 냉기
점점 그 영역을 넓혀갔다

산부인과 출입문 여닫는 횟수만큼
벌어진 틈 메워졌다
삐걱거릴 기미 보이면 발꿈치 더 높이 들었다
마지막 여덟 번째 처방전으로
이식된 뿌리
발 뻗느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장롱을 떠받치는 동전의 힘줄 단단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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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꾹질 / 鄭水鏡



어머니가 택배로 뽕잎을 보내주셨다
말린 뽕잎 물에 불려 알싸한 기억 우려낸다

가시랭이 일어 피 묻은 손가락으로 몇 번씩
묶어 보낸 얼룩진 뽕잎 봉지
누에고치 실 풀듯 푼다
뽕잎에서 사각사각 빗소리 들린다

나와 다섯째는 뽕잎이 모자라
어머니를 갉아먹고 섶으로 오르던
먹성 좋은 누에였다 뽕잎에 묻어온
허기진 시간들 지우던 어머니
의 뭉개진 지문이 명치에 걸린다

파랗게 놀란 횡격막 경련을 일으킨다
딸꾹, 어머니
깎지 않아도 짧기만 한 손톱의 내력 딸꾹
밥줄 가는 곳마다 사방
딸꾹 딸꾹, 가래톳 같은 멍울이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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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水鏡(본명 정영숙) / 1960년 경북 문경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국문학과 졸업. '비유와 상징'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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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비누 (외 2편) / 서 화



거울 앞에 놓인 오이비누
거울 속 제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져 있는
비누의 속내를 따라가 본다

어떤 얼룩도 그에게 닿으면 스르르 풀어져
손길 스칠 적마다 오이향 풍기며
형체도 없이 녹아내리는데

모든 기억은 거품일 뿐이라고
날마다 제 몸을 줄여가는 여자
지워질 때마다 제 이름을 확인하려고
생각 더욱 깊어지는 여자
가끔은 일탈을 꿈꾸며
낯선 손등을 따라 나서지만
두고 온 몸을 잊지 못해 서둘러 돌아서는
마른 오이꽃 같은 여자

마지막 한 점의 근심까지도 제 몫으로 품은 채
형체도 없이 사라지려고
수돗물 틀 때마다 오이향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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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에서 / 서 화



부석사 안양루 돌계단에 쭈그려 앉은 노파
플라스틱 바구니를 지키고 있다
맨 처음 초록이었을 바구니 속 강정 몇 개를 끼니와 바꾸려고
노파는 아까부터 웃는 연습 중이다
간간이 다녀가는 바람이 유일한 참배객인 수상쩍은 한나절
안양루 지붕 위에 뒹굴던 햇살이 흥정을 한다
만져보고 눌러보고
강정은 이내 눅눅해진다
바삭거림이 사라진 강정은 아무도 사가지 않는다
뒤적이던 햇살도 슬며시 물러나고
하품을 깨물며 졸기 시작하는 노파
손가락 드나들기 좋을 만큼 듬성한 머리숱과
주르륵 눈물 흘려도 알아보기 힘들만큼 골진 얼굴에
만개한 저승꽃

저렇게 천천히 부석사 뜬 돌을 닮아 보려고
노파는 강정을 핑계로 졸고 있는 것이다
천천히 천천히 떠오르는 연습 중인 노파
점자를 읽듯 강정 바구니를 더듬으며 저린 다리를 편다

어디서 음복을 끝내고 왔는지
벌건 얼굴로 강정을 집어드는 노을 한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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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세차장 / 서 화



해저동굴처럼 캄캄한 자동세차장으로 들어간다

커다란 상어 한 마리 지느러미를 흔들며 기다리고 있다
화려한 꽃밭으로 위장한 상어의 입 속
무수한 촉수들이 흔들린다
나는 통째로 삼켜진다
한 끼 식사를 위하여 뿌려지는 물줄기
알맞게 반죽한 나를 맛보는 상어의 감촉에
온몸에 오스스 소름 돋는다
무수한 꽃들이 피어난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진한 사랑에 까무룩 정신을 놓는다
차가운 입술이 천천히 살결을 더듬는다
격렬한 사랑으로 찢어진 지느러미를 흔들며
빠르게 뱃속의 물체를 뿜어내는 상어,
심하게 기침을 하며 물러난다

소나기 멈추고 무지개 섰다
사랑을 버린 길이 넓고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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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화(본명 이순자) / 1960년 영월 출생. 상지영서대 문예창작과 졸업. 시동인 '가릉빈가', '시치미' 회원. (사) 한국편지가족 강원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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