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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인 문 학 상

제2회《문학의 문학》신인상 당선작 _ 김득수

by 솔 체 2014. 11. 21.

제2회《문학의 문학》신인상 당선작 _ 김득수

연착륙 (외 4편)

김득수



상한 사과 한 박스로
한 가을을 먹는다
공부방과 책상이 있던 친구는 사과 썩는 냄새가 좋다며
책상 위에
사과를 옷핀으로 콕, 찔러두곤 했다
먹지는 못하게 했다
상처가 상처에 대고 문질르며
진물르며 내는 소리
가득한 열 두 평 아파트는 큰 사과 박스 모양이다
사과 상처 속에는 애벌레가 산다
상처가 깊을수록 큰놈들이 꿈틀거린다
짜장면 배달 전단지에 올려서 9층에서 내린다
벌레가 없는 빈 집도 있다
이놈들도 이사를 다니는 모양이다
옥탑방으로 이사 가기 전까지 이놈들을 풀잎 위에
연착륙 시키기로 한다
후박나무 열매라도 파고 들어가
토막 난 꿈을 이어가면 눈부신 세상
아름다운 날개를 펼 수 있을 것이다
참새 눈에 띄면
안락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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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움에 대하여



일요일 아침
수족관에 한 마리 남은 도다리처럼 엎드려 설거지를 하는 어머니의 발 뒤꿈치를 본다
호떡 같다
동대문 시장, 애기 업은 아줌마 호떡 리어카
철판 위에 눌리는 호떡 가장자리 같다

등에 형제들 한 놈
한 놈 다섯 놈을 광목 띠로 묶어본다
머리에 방물 보따리와
보따리 위에 돈 대신 받은 쌀을
그 위에 보리쌀을
그 위에
끝전으로 받은 콩 한 됫박을 얹어본다
스스스 치맛자락 스치는 수수밭
어이요―
어이요― 극락강 저편 줄배 사공을 부르는
흰 적삼 소맷자락
광주천 뚝방 달맞이꽃길을 휘적휘적 저어오는 보따리
달빛에 환해진 땟국 마룻장 위에
쿵,
집채만한 짐을 내려놓는다

형제들 한 놈
한 놈 내려놓는다

고봉 쌀밥 일곱 상을 쿵쿵쿵 내려놓는다
실직한 형네 집 합동 제삿날
어머니는 또 한번의 합동을 선언하였다
'니기들 들어라, 작은아부지들도 들으쇼, 인자부터는 아부지 할머니 할아부지 지사도 한 날이다 잉, 긍께 앞으로 우리집 방안지사는 일년에 한 번뿐이 없는 것이요 잉'

몸 가벼워진 어머니
중국산 수의를 장롱에 넣어두고
딸그락
딸그락 설거지를 하는 발뒤꿈치가
눌려버린 호떡 가장자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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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작새



말뚝상사 박주배가 준위가 되었다고 신도안 관사로 불렀다 싱글벙글 하면서도 하사관 집합 하면 장교라고 빠지고, 장교집합 하면 하사관이라고 빠지고 그래서 좋은 거라고 했다 용달 하는 놈 택시 하는 놈 철가방 이십 년에 고물 소나타 초보운전이 마냥 즐거운 놈 노조하다 도다리같이 입 돌아간 놈 서로서로 쳐다보면 끼리끼리 즐겁다

창 밖에 개똥벌레 한 마리
밤새 헤맨다

계룡관 관사에는 새들이 운다

마누라들도 끼리끼리 잠도 없이 즐겁다
시어미 등쌀에 옷 벗고 잘 새도 없이 일만 하다 밭에서 죽은 며느리가 뻐꾹새가 되었다고 옷 벗고 자는 것이 소원이 되어 옷벗구옷벗구 우는 거라고 양화 마누라가 그랬다 며느리가 먹는 누룽지가 아까워 시어미가 자꾸만 솥을 줄여서 굶어 죽은 며느리가 소쩍새가 되었다고 그래서 솥작다솥작다 우는 거라고 아니, 아니라고 솥 탱탱 비었다고 소탱소탱 하고 우는 거라고 그런 해는 흉년이 드는 거라고 주배 마누라가 그랬다 처남네 오리알 배달하는 광영이 마누라가 깔깔대고 웃는다

오뻐꾸오뻐꾸
소탱소탱
소짝따소짝따

앞산 새들이 뒷산 새들의
울음이
울음을 받아서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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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엽수는 활엽수끼리 침엽수는 침엽수끼리 끼리끼리 살아가는 수락산 쌍암사 용두샘 앞에는 키가 하늘을 찌를 것처럼 솟아 있는 나무가 둘 있다 너무 둘이 붙어 있어서 한 뿌리에서 가지를 나누어 자라는 것처럼 보이는데 하나는 상수리나무고 하나는 소나무다 키재기라도 하였는지 쭉쭉 뻗은 게 보기도 좋다 저렇게 높으면 뿌리는 깊어도 얼마나 깊을까 굵은 뿌리 잔뿌리는 얽히며 설키며 뻗어 내렸을 것이고 뿌리 끝 물기 여린 촉수들은 떡갈나무 실뿌리에 소나무 수액도 건네 줘보고 끈적끈적 얼떨결에 지금쯤, 내 것인지 네 것인지 소나무에 상수리 두어 개 매달려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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댕댕이 덩굴



입고 신고 가시라고 아버지 양복 한 벌 신발 한 켤레 한 줄기 연기로 올려 보내드리고 일곱 식구 단칸방이 싫어 단칸방 일곱 식구가 싫어 서울대학교 정문쯤에 텐트를 치고 처음으로 술 마시고 처음으로 담배 피고 밤새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고는 다음날 일도 없이 이슬 젖은 풀꽃을 꺾었는데요 쑥부쟁이 구절초 산국들을 색깔별로 묶었는데요 흘러가는 물에게 던져주고 억새 갈대 엉겅퀴 댕댕이 덩굴 감아서 꽃도 아니고 뭣도 아닌 한 다발을 묶었는데요 낙산골목 어귀 들며 쓰레기통에 집어넣어 버렸습니다 모자도 함께 넣고 뚜껑 닫아버렸습니다
불혹을 넘어 지천명지천명 끄덕끄덕 듣는 귀가 순해지는 고개에서 뒤돌아보니 찔레덤불 엉키다가 개옻나무 뒤틀다가 지가 지 몸을 댕댕댕댕 꼬아버린, 하늘하늘 하늘대는 덩굴손 끝간 길도 길이다 싶고 시들 일 마를 일 꺾일 일 없는 억새 갈대 바람꽃 피는 꽃도 세는 꽃도 피는 꽃이다 싶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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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시류에 물들지 않은 새 어법


시는 시대를 앞서가는가 아니면 뒤를 좇아가는가 하는 물음과 신인의 척도를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기준을 생각하면서 응모 작품을 읽어 나갔다. 신춘문예를 비롯한 등단의 지면이 넓어진 지금, 정지용이 일찍이 기다렸던 호랑이 같은 신인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접어야 했지만 그래도 《문학의 문학》으로서는 첫 번째 뽑는 새 얼굴은 무엇보다도 심사위원의 눈을 뜨이게 하는 시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번쩍 눈에 띄는 시가 있었다.
김득수 씨가 보내온 「연착륙」외의 여러 편의 시들을 읽으며 심상치 않은 기류를 느끼기 시작했다. 첫째, 요즘 신인들이 흘리기 쉬운 시류적 어법에 물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 시의 글감 찾기에서부터 '무엇'과 '어떻게'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시를 쓰고 있다는 것. 셋째, 시가 관념이나 세태의 풀이를 배제하고 자기의 목소리를 내면서 감칠맛 나게 시의 맛을 살려내고 있음이다.
어디 산속 깊이 숨어 있었던 호랑이까지는 몰라도 이제 시단이라는 들판에 발을 내디디면 여우나 토끼 같은 것들 꼬리를 내리고 멀찌감치 도망칠 것이 분명하다. 이만큼 내공을 쌓기까지 공부 또한 깊었을 것이며 글쓰기 또한 오래 나이를 익혔으리라. 김득수 씨의 정진을 빈다.
최종심에서 당선을 두고 다툰 두 사람이 있었다. 「흰 뼈를 조각하다」외의 박현과 「Road Kill」외의 임혜주 씨인데 각각 언어에 대한 감각과 시를 새롭게 쓰기에 골몰해온 점은 보이나 읽는 이에게 던지는 낚시에 걸어야 할 미끼가 없는 것이 흠이었다. 큰 고기가 물을 때 끌어당기는 힘도 크지 않을까? 더욱 크신 싸움이 있으시기를.

심사위원 _ 신경림, 이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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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 소감


멀쩡하던 나라가 하루아침에 경제식민지가 되고, 24 년 다니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부도나고, 의원사직서 이사 자리 코앞에 빨간 도장 하나 찍고, 밤샘공부를 하고 기술사시험을 보는데 시험감독관이 나한테만 답안지를 두 손으로 받았습니다. 머리까지 숙이며 받았습니다.
오는 길에 교보문고에 들러 『소월시문학상작품집』『올해의 좋은시』『시학사전』『시어사전』『동아새국어사전』『사라져가는 우리말사전』『띄어쓰기사전』『우리말상말속담사전』을 사고 마이너스 카드를 내고 돌아오는 길 부아가 오르긴 오르는데 왜 부아가 오르는지 나도 몰라 『우리말상말속담사전』을 들추어 봤더니
'제구실 못하는 × 뒷산에 가서 일어나기'가 툭, 튀어나왔습니다. IMF 경제위기 때니까 10 년 전입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그 때 뒷산에 갔더라면 그나마 얼마나 빨랐던 때인가 생각해 봅니다.
걱정이 있습니다. 언제까지 제가 시를 쓴다는 사실을 숨겨야 하는가, 입니다. 시를 쓴다는 사실(이제부터는 나도 시를 쓴다고 해야 하니까)을 아는 사람은 친구와 가족 그리고 나의 주변을 통틀어서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무실에서 시를 두들기다가도 누가 가까이 오는 기척이 있으면 얼굴을 붉히며 모니터 화면을 돌려버렸으니 대낮에 포르노 보는 사람으로 오해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사실 문제는 내가 왜 시 쓰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하느냐, 인 것이지요.
시를 가르쳐 주신 김재홍 선생님, 고형렬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제가 영향을 받은 선생님들에게 죄송스런 이야기지만, 아직도 시라는 게, 세상에 괜히 시비 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이니 뽑아주신 선생님들께 부끄럽고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 김득수 / 1951년 전남 광주 출생. 명지대 경영학과 졸업. 영국 De Montfort University 석, 박사. 현재 홍익대 광고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겸임교수. DMI(디자인 경영연구소) 대표.

――《문학의 문학》2009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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