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의 현장_ 최형심 '거미의 날개' / 우진용
거미의 날개 / 최형심
날개옷은 뱃속에 있다. 투명한 그의 날개. 아무도 그가 공중에 떠있는 일을 비상이라 부르지 않는다. 새 날개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그의 비행은 썩어버린 기둥사이에 몸을 거는 것.
지난 밤 달은 잔뜩 알을 슬었다. 밤새 묵직해진 날개. 아침이 돋고 부화를 시작하는 이슬알. 그가 공중에 매단 날개에서 하루가 부화한다.
꽁무니로 낳는 날개옷. 오늘도 처마 끝에 날개 한 벌을 내다건다. 올 하나를 풀자 바람이 끈적한 날개의 앞섶을 만지고 간 후, 햇살로 뼈대를 세우고 서풍을 팽팽히 당긴다. 개망초의 목을 잡고 시계방향으로 몸을 푼다. 그가 길들인 허공이 날개 한 올을 기와에 얹어준다. 그럴 때면 풍경소리가, 출렁, 튕겨나간다.
얇게 저며진 까치울음이 날개옷 사이를 빠져나가는 사이, 배를 날개에 바짝 붙이고 하늬바람에서 샛바람으로 갈아탄다. 손바닥만 한 그의 비행, 지루한 한낮의 풍경 한 장.
들쥐가 쪼르르 달려가고, 앞질러가는 도둑고양이. 우거진 잡풀사이 허름한 발자국이 길 한 올을 끌며 땅거미를 몰고 온다. 켜켜이 접혔던 정적을 헤집고 기울어진 문이 삐걱, 한때 그 집의 주인이었던 사내가 빈집을 들어선다. 순간, 집 한 채가 긴장한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2008년 7-8월호
이 시를 ‘지루한 한낮의 풍경 한 장’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썩어버린 기둥, 개망초, 까치울음, 들쥐가 달려가고 도둑고양이가 있는 ‘우거진 잡풀’의 정적. 달과 이슬알, 서풍과 풍경소리 등 자연의 요소가 배경으로 깔린 빈집의 묘사로만 본다면 실상 좀 밋밋하다. 시의 소재로 빈집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바랜 흑백사진처럼 고적한 시간의 퇴적층이 시적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는 빈집 이전의 전시간적인 요소가 거의 없다. 빈집 이후의 현시적인 풍경뿐이다. 그러나 거미를 사람으로 환치시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누구에게나 뱃속에 감추고 싶은 날개옷이 있다. 날개는 그가 살아가는 무기이자 꿈이다. 그는 날개로 일상을 살아가는 동시에 그만의 우주를 주유한다. 그러나 ‘공중에 떠 있는 일을 비상이라 부르지 않’는 것처럼 그의 꿈은 일상에 불과하다. ‘그의 비행은 썩어버린 기둥 사이에 몸을 거는 것’일 뿐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꿈은 얼마나 일상화되어버렸는가? 그의 ‘날개에서 하루가 부화’하듯 일상의 아침을 맞는다. ‘처마 끝에 날개 한 벌’을 내걸고 다른 줄은 ‘기와에 얹고’ ‘개망초 목을 잡’으며 늘상 반복되는 하루를 시작한다. ‘까치울음’ 때문에 ‘배를 날개에 바짝 붙이고 하늬바람에서 샛바람으로 갈아’타는 위기도 겪으며 하루가 지나면 이제 ‘허름한 발자국이’ ‘땅거미를 몰고’ 저녁이 오는 것이다. 이 시는 ‘주인이었던 사내가 빈집에 들어’서면서 ‘집 한 채가 긴장’하는 순간에 집중되어 있다. 비록 일상의 세계이지만 거미에게는 전 우주였던 빈집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것은 ‘손바닥만한 그의 비행’일뿐인 사소한 일상의 드러남일 수도 있고 우리가 믿고 있는 세계가 쉽게 깨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위기의식일 수도 있다. 시는 결국 환유를 통하여 인간에게로 돌아온다. 우주의 삼라만상이 다 동원되더라도 그것은 인간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이 시는 사내가 들어서면서 집 한 채가 긴장하는 순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실상 이 시의 시작은 여기부터다. 그 여백은 독자의 몫으로 남겠지만 한편으로는 거미라는 현시적인 존재와 전시간적인 집주인의 등장에 대한 간극이 넓어 자칫 에피소드에 머물 수도 있다는 점이 아쉽다.
― 우진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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