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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강인한의 「발다로의 연인들」평설 / 전동진

by 솔 체 2015. 2. 24.

강인한의 「발다로의 연인들」평설 / 전동진

 

발다로의 연인들

 

 강인한

 

 

독화살이 심장을 파고들어 마침내 숨을 끊은

콸콸 더운 피를 끄집어낸 곳, 여기쯤인가 부러진 뼈 한 도막

몇 날 몇 밤의 증오를 순순히 받아들인 곳

피는 굳고, 벌들이 찾던 꽃향기는 언제 희미해진 것일까

 

부릅뜬 눈으로 빨아들인 마지막 빛은

사랑하는 이여 당신의 눈, 햇빛보다 부신 웃음이었다

껴안은 팔에서 부서져 내리는 허무한 흙덩이

잘 가라, 우리들 포옹 아래로 흘러가는 시간이여

눈보다 희고 부드러운 시간들이여

 

꿀처럼 달고 보드라운 당신의 입술은

아름다운 노래를 버리고 어디로 갔나 만토바의 하늘을 스치는

한 덩이 구름, 한 줄기 놀빛으로 산을 넘어

서늘한 밤의 대기가 되고

내 온몸을 거울처럼 담아 빛나던 당신의 눈은

벌써 여름밤 별자리로 찾아가 맑게 빛나고 있거니

 

부패라는 것, 오 망각이란

가시 많은 사람살이에 얼마나 고마운 벗일 것인지

오랜 망설임 끝에 다가가서

한 점 한 점 불타는 기쁨으로 땀흘리던 육체는

기꺼이 벌레의 밥이 되고 다시 흩어져 희미한 슬픔으로

흐르다 올리브나무 수액이 되고, 더러는 바람에

무심한 바람에 팔랑이는 올리브나무 잎새가 되었다

 

잠도 천 년, 다시 또 몇 천 년이 꿈결 같았다

무서운 살육의 전설도 기억에서 지워지고

수많은 파란이 지나가고 난 뒤

문득 깨어난 아침이 웬일인가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침묵으로 말하노니

손대지 마라, 우리들 기나긴 사랑의 포옹을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곳, 빗발치는 편견을 법으로 세우는 곳이라면

우리 이대로 다시 몇 천 년이라도 견디고 견딜 것이니. 

 

                                                                          ――『유심』,3~4월호

 

 

그사내, 사랑에 안겨 1만 년을 잠들어 있는 동안

 

전동진

 

 

   2007년 2월 TV뉴스는 꼭 껴안은 채 유골이 된 남녀 한 쌍을 발굴하는 현장을 보여주었다. 유골이 발견된 장소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였던 이탈리아 북부의 만토바였다. 이곳은 ‘꿀처럼 달고 보드라운 당신의 입술’과 ‘당신의 눈’이 ‘서늘한 밤의 대기가 되고’, ‘여름밤 별자리’가 된 곳이기도 하다. 이 뉴스의 헤드라인은 “죽어서도 사랑해”였다. 얼굴을 바짝 대고 서로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는 듯한 유골의 형태도 그렇거니와 이곳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였다는 것도 적잖이 작용을 했을 것이다.

   마치 잠시 멈춘 지양의 상태(pause,止)를 지속하고 있는 것 같은 ‘바로의 여인’의 모습은 죽음의 동시성을 떠오르게 만든다. 그러나 동시에 이루어진 죽음이라는 것이 있을까. ‘독화살이 심장을 파고들어 마침내 숨’이 끊긴 사내의 죽음을 여인은 슬퍼했을까! 죽은 여인의 복수를 위해 나섰다 사내는 화살을 맞고 죽으면서 돌아왔을까! 죽어서 돌아왔을까! 그들의 어떤 사연과는 무관하게 추측만이 난무한다. 이 난무 속에서 이 둘의 유골은 하나의 기호가 된다.

 

   우후죽순, 기표와 기의들이 사실史實적 측면에서, 사실事實적 측면에서, 미적 진실의 측면에서 솟아오를 만했다. 그러나 이 기호는 현상적 충격만큼 다채로운 담론의 경연장이 되지 못했다. 이것은 서사적 측면에서는 이야기가 없었고, 미적 진실의 측면에서는 화가 지슬라브 벡진스키Zdzislw Beksinski의 작품이 먼저 있었기 때문은 아닌가 짐작해 본다.

   더러 ‘불멸의 사랑’이라는 이름을 달고 ‘폼페이’에서 발굴되었다고 알려진 ‘폼페이의 연인’은 벡진스키의 작품이라는 것을 얼마 전에야 알았다. 화산 폭발과 함께 사면초가, 죽음에 닥뜨렸을 때, 이 연인은 격렬한 몸의 향연으로 죽음마저 초월하고 싶었던 것이로구나 하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전율이 일었다. 일순 덮쳐온 화산재가 마치 잘 개진 석고처럼 이들을 감싸고 이들의 육신이 먼지로 주저앉고도 오랜 세월이 흘렀다. 이 텅 빈 허공을 채워 넣자 두 남녀의 사랑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는 이야기에 혹하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이 느낌을 살려 한 편의 시를 썼던 기억이 있다. 사진을 첨부해야 하는 터라 쉽게 발표 지면을 얻지 못했던 것이 지금 생각하면 참말 다행이지 싶다.

 

   ‘발다로의 연인’과 소위 ‘폼페이의 연인’으로 알려진 벡진스키의 작품을 한 화면에 놓고 보시라. 역시나 그리움이나 사랑 같은 것에는 깡마른 오기 같더라도 살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시는 “독화살이 심장을 파고들어 마침내 숨을 끊은/ 콸콸 더운 피를 끄집어 낸 곳, 여기쯤인가 부러진 뼈 한 도막”이라고 시작하고 있다. 대략 6000년 전에 죽은 사내가 그때를 반추하고 있다. 사건의 당사자인 사내의 입을 통해서도 죽음에 대한 어떤 그럴싸한 사연을 들을 수는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는 ‘증오’ 속에서 죽었고, 그곳은 ‘꽃향기’가 가득 찼던 곳이라는 것쯤이다. 이러한 정황들은 특정한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키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발굴된 한 쌍의 연인을 두고 재구성된 모든 서사적 담론들에 대해서는 딱히 토를 달 것도, 크게 동의를 표할 것도 없다. 물론 이런 점이 더욱 더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여지가 된다는 측면에서 이후의 서사적 작업들이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다.

   시선을 강인한의 시「발다로의 연인들」로 옮기면 남는 것은 시대적 측면이다. 이 시의 울림은 사내의 ‘침묵의 언어’에서 비롯된다.

 

 

        잠도 천 년, 다시 또 몇 천 년이 꿈결 같았다

        무서운 살육의 전설도 기억에서 지워지고

        수많은 파란이 지나가고 난 뒤

        문득 깨어난 아침이 웬일인가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발다로의 연인’에 대한 시는 한두 편이 아니다. 이들 시편들은 정서적 감동 혹은 충격 속에서 창작된 것이 대부분이다. 창작 시기도 2007년 한 해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이태가 지나서 강인한 시인은 새삼스레 이 연인들을 앞세우고 있다. 더 적확하게 말하면 사내의 이 한 마디,

 

 

        문득 깨어난 아침이 웬일인가 조금도 낯설지 않다

 

 

는 말을 앞세우고 있는 것이다. 작금에 벌어지는 정치적 행태를 보면 가관이 아닐 수 없다. 비판과 야유가 있는 곳에는 여지없이 ‘정치적 탄압’이라고 해도 무방할 ‘협박과 보복’이 ‘법의 이름’으로 국가권력에 의해서 자행되고 있지 않는가. 21세기를 10분의 1이나 살아낸 지금, 시대의 엄청난 변화 속도는 70년대나 80년대를 ‘선사시대’처럼 느껴지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조금도 낯설지가 않다’.

   시인은 ‘침묵의 언어’로 말한다. 두 가지 이유에서 일 것이다. 하나는 지금의 현실은 도무지 말이 통할 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좀 더 본원적인 이유는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모리스 블랑쇼 식으로 말하면 ‘밝힐 수 없는 공동체’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빗발치는 편견을 법으로 세우는 곳’을 지나 화자가 ‘이대로 다시 천 년이라도 견디고 견’디어 끝끝내 다시 살아나고 싶은 세상은 어떤 곳일까. 누구도 알 수는 없지만 그러한 공동체의 실현에 대한 확신을 시인은 가지고 있다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것 같다. 아주, 아주 멀기도 하겠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에서 삶을 밀고나가는 힘을 얻는, 현존재의 거치인 현재의 지평을 확장하는 시인이라면 리얼리스트인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특별한 리얼리스트인 것은 더 특별한 시적 현재 때문이다. 이 시의 시적 현재를 구성하는 근원인상은 사내가 ‘문득 깨어난 아침’이다. 이 근원인상은 서정시가 쓰진 이래 가장 긴 시간을 수렴하며 혹은 시간을 수렴하며 최대의 시적 현재를 구성한다. 과거로는 사내가 독화살을 맞았을 6000년, 미래로는 ‘빗발치는 편견을 법으로 세우는 시간’을 다 보내고 다시 깨어날 ‘다시 몇 천 년’후까지이다.

   대략 1만 년의 시간을 우리는 이 시 한 편을 통해 몸소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길어야 1백 년을 사는 우리의 삶을 여기에 견줄 때 반성하고 변화를 꾀하지 않을 주체가 어디 있겠는가. 이 시가 독자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이것이다.

 

 

――――――

전동진 / 문학평론가. 2003년 《시와 정신》신인상 수상. 전남대 국어국문과 및 동 대학원 박사. 저서로 『서정의 윤리』『서정시의 시간성과 시간의 서정성』등. 현재 계간 《문학들》편집장. 전남대학교 강사.

 

                                                                                                                                      ―《현대시》2009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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