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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강인한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단평 / 최 준

by 솔 체 2015. 3. 17.

강인한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단평 / 최 준

 

풀밭 위의 점심 식사

 

   강 인 한

 

 

 

여러분의 자랑스런 후일담이 되어드리려고

벌거벗고 앉아 있어요,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의 고양이가 되어

땅 속으로 땅 속으로 두더지가 한사코 땅을 파듯

저 멀리 흐르는 강물 소리엔

꿈의 운하를 파는 삽질 소리가 암암리에 섞여 있지요

내 곁에 한쪽 다리를 뻗고 느긋한 파트너는

토요일까지 죄를 짓고

주일날이면 교회에 가서 사함을 받지요, 그리고

풀잎에 맺힌 아침 이슬처럼 깨끗해지지요

나는 무릎 위에 손을 올리고

물려받을 주식에 대한 생각들을 인화하기 위해서

내 얼굴의 턱을 괴고 있어요

거리에서 떼쓰다가 불타 죽은

못된 불량배들에 대한 헛소문은 믿지 마세요

감춰진 샅 사이로 향긋한 바람이 들락거리는 숲속

이 그늘이 참 좋아요

굴참나무 속에 섞인 한 그루 자작나무처럼

알몸으로 앉아 있어요, 강가에서 뒷물을 마친 친구가

건너편 남자의 짝이 되기 위해 돌아오고 있네요

방부제가 섞인 이 식빵과

농약이 스며 색깔 고운 과일들, 주기도문과 함께

벌거벗은 내 몸을 함께 들어보셔요

죽어도 우리들은 썩지 않을 거예요

썩지 않는 우리들의 사랑 먹고 마시어요

이 신선한 공기는 십년 만이지요 안 그런가요

 

그런데, 우리들의 풍경 밖에서

우리를 엿보는 당신은 누구인가요

내 허벅지 사이로 기어 들어와

배꼽 아래까지 깊숙이 치밀어 올리는 뜨거운 시선

도대체 도대체 보이지 않는 당신은 누구지요?

 

 

                                                                                                —〈미네르바〉2009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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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디미르 드보사르스키의 그림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떠올리며 시를 읽는다. 이 시의 화자인 여인은 그림 속에 등장하는 벌거벗은 여자. 파트너로 지칭되는 일련의 남자들(그림 속 인물들은 인상파 화가들)과 함께 부끄러움 없이 알몸으로 풀밭 위에 앉아 있는 여인은 배경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과 동물들 사이에서 여성적인 요염함보다는 오히려 자연적이고 환상적이며 원시적인 느낌을 준다. 여인뿐만이 아니라, 여인을 포함하고 있는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그러하다. 

 

   시인은 이 여인 속으로 들어가, 여인이 되어, 자신을 훔쳐보고 있는 그림 밖의 관람객에게 이야기한다. 그림 속의 여인은 엄연히 한 개체로서의 형상을 지니고 있지만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시 속에서 이야기하는 주체(화자)로 바뀐다. 이 여인은 관람객에게 자신에 대해 설명하고 파트너인 남자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여인의 말 속에 여인의 파트너가 다니는 ‘교회’와 물려받을 ‘주식’이 등장하고 ‘방부제가 섞인 식빵’과 ‘농약이 스며 색깔 고운 과일들’이 등장하면 이 자연 속의 원시적인 풍경은 현대 사회의 실제 삶으로 장소를 옮겨간다.

 

   여인과, 여인의 파트너가 된 남자와 또 다른 한 쌍 즉, ‘강가에서 뒷물을 마친 친구가/ 건너편 남자의 짝이 되기 위해 돌아오고 있’다고 말하는 대목에 이르면 여인의 ‘점심 식사’는 매우 불온해진다. 여인의 육체는 성적(性的)인 것으로 바뀌고, 이들 남녀들은 매우 부적절한 관계를 지닌 일련의 사회적 일탈 행위를 하고 있는 존재들이 된다. 십년 만에 호흡하는 ‘신선한 공기’는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이탈하고 나서야 비로소 느끼게 되는, 우리 삶의 일상적인 영역 너머에 있다.

 

   그리고 이 여인은 자신의 벌거벗은 육체를 욕망의 눈빛으로 감상하고 있는 그림 밖의 관람객에게 느닷없이 ‘그런데, 우리들의 풍경 밖에서/ 우리를 엿보는 당신은 누구인가요/ 내 허벅지 사이로 기어 들어와/ 배꼽 아래까지 깊숙이 치밀어 올리는 뜨거운 시선/ 도대체 도대체 보이지 않는 당신은 누구지요?’라고 묻는다. 낯선 관람객에게 묻는 이 여인의 질문은 ‘당신도 불온한 우리와 하나 다를 바 없는 위선적인 욕망을 지닌 존재’라는 단정을 깔고 있다.

 

   여인의 말은, 그러나, 다행하게도 시인의 말이 아니다. 시인은 여인의 내부에서 끝끝내 나오지 않고 있다. 마네와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을 패러디한 블라디미르 드보사르스키의 그림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감상하면서 이 시를 다시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생각 많고 그래서 자신의 감춰진 샅마저도 당신들이 다 알고 있는 거 아니냐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는 이 알몸의 여인은 그림 속에서 보란 듯이 당당하다. 짐승들과, 짐승인 사내들과, 삶의 현실로 바뀐 온갖 나무와 풀들과 더불어.

 

 

                                                                                                                             —《미네르바》2009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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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준 / 1963년 강원 정선 출생. 1990년 《문학사상》신인상으로 등단. 1995년 〈중앙일보〉신춘문예 시조 당선. 시집 『개』『나 없는 세상에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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