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만한 개성의 세계들 / 이은봉
―허만하, 『바다의 성분』, 솔.
―강인한, 『입술』, 시학.
―문무학, 『낱말』, 동학사.
―신덕룡, 『아주 잠깐』, 서정시학.
지성으로 정제해낸 풍경들 : 허만하
시인 허만하가 처음 문단에 나온 것은 1957년의 일이다. 따라서 40년을 넘게 시를 써온 것이 그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간행된 『바다의 성분』(솔, 2009)은 그의 다섯 번째 시집이다. 첫 시집 『海藻』가 간행된 것은 1969년의 일이고,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등 나머지의 시집이 간행된 것은 1999년 이후의 일이다. 부산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있다가 1997년에 정년퇴임을 했으니 나머지 네 권의 시집은 모두 정년퇴임 이후에 간행된 셈이다.
그동안 내가 읽어온 그의 시집도 이들 네 권의 시집이 전부이다. 이들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그의 시의 특징은 풍경의 선택과, 선택된 풍경 속에 담겨 있는 의미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때의 풍경이 단순한 경치를 뜻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그에게 경치는 거의 대부분 풍경의 질료로나 존재할 따름이다.
따라서 그의 시에 함유되어 있는 풍경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라 그의 의지나 세계관에 의해 재창조되어 있는 심미적 형상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그가 자신의 시를 통해 이러한 뜻에서의 풍경을 만드는 것은 그것을 통해 무언가 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의 할 말은 인생에 대한 각성된 진리나 지혜일 수도 있지만 우발적인 심미적 정서일 수도 있다. 그의 시에 선택되어 있는 풍경이 그에 담겨 있는 의미(의지)보다 그다지 전경화되어 있지 않는 것도 정작은 이에서 연유한다. 그렇다. 때로는 선택된 풍경이 전경화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선택된 풍경 속에 담겨 있는 의미(의지)가 전경화되기도 하는 것이 그의 시이다.
다음은 상대적으로 선택된 풍경 속에 담겨 있는 의미(의지)보다 선택된 풍경 그 자체가 전경화되어 있는 시의 예이다.
마지막 철새 사라진
썰렁한 하늘에서
무게도 없이 발치에 떨어진
기러기 울음소리
사람 발자국 모르는
태고의 시베리아
자작나무숲을 건너던
눈바람소리
자욱한 눈보라를
피로의 극한까지
날개 젓던 한 마리 기러기
생명이 한 번도 그곳에 이른 적 없는
인식의 바깥
아득한 구름 위에서
구성지게 한 번 울렸던
최초의 기러기 울음소리
땅에 떨어지기 직전
기러기가 보았던 것이
먼 노을 저쪽인지
어둠의 이쪽인지
아득한 높이에서
마른번개처럼 번득였던
최초의 기러기 울음소리
―「주남저수지의 어느 날」 전문
엄밀하게 말하면 이 시도 선택된 풍경 그 자체가 전경화되어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객관적이고 표면적인 현상 자체를 투사해 순간적으로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본질을 포착해내는 시는 아니기 때문이다. 3연의 “생명이 한 번도 그곳에 이른 적 없는/인식의 바깥” 등의 구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미 시인 허만하의 주관적 의식이 일정하게 개입되어 있는 것이 이 시라는 뜻이다.
따져보면 주관적인 본질과 객관적인 현상이 엄밀하게 나누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객관적인 것은 주관적인 것의 산물이고, 모든 주관적인 것은 객관적인 것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상징주의 시인들이 자신의 시에 구체적인 지혜나 진리보다 리듬과 이미지 위주의 몽롱하고 혼몽한 분위기를 전경화시키고 있는 것도 얼마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의 시의 풍경에 주관적인 의식이 거듭 작용하는 것은 지식인으로서의 그의 특성, 곧 그의 지성이 거듭 작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시에서 지성은 때로 지식의 차원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의사로서, 자연과학도로서 쌓아온 교양이 불현듯 그의 시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경우가 없지 않다는 것이다. 관찰되거나 창조된 풍경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거나 투사하기보다는 풍경으로부터 획득한 정서나 의식을 진술하거나 고백하는 것이 그의 시가 지니고 있는 언술특징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풍경으로부터 얻은 의식을 진술하거나 고백하는 언술특징이 다 나쁜 시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들 시의 경우에는 구체적인 대상을 갖지 않는 만큼 형상의 완미성을 획득하기가 다소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다소 낭만적 정서가 남아 있는 다음의 시는 일정한 미학적 성취가 드러나 있어 더욱 주목이 되기도 한다. 이 시의 경우 상대적으로 시인의 주관적인 참여와 해석이 덜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고개를 조금 숙인 채 그는
날카로운 눈매로
땅바닥을 쳐다보고 있다
살쾡이가 산토끼 노려보듯
땅이 바람이 될 때까지
하늘은 별밤이다
낙엽처럼 땅바닥에 깔려 있는
가로등 불빛
고개를 조금 숙인 채
땅이 바람이 될 때까지
그는 잎 진 한그루 나무다
―「겨울 밤 한 나그네가」 전문
모두 11행에 불과한 이 시에 함유되어 있는 풍경은 매우 사실적이다. 적어도 9행까지는 주관적 화자의 특별한 개입 없이 “겨울 밤 한 나그네”라는 인물형상과, 그 인물형상이 처한 상황이 비교적 객관적으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10행이 이르면 나그네라는 인물형상과, 그가 처해 있는 상황이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땅이 바람이 될 때까지/그는 잎 진 한그루 나무다” 등의 구절에 함유되어 있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상대적으로 시인의 주관적인 참여나 해석이 덜한 것이 위의 시라고 했지만 이 구절에 따르면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은 듯싶다. 도저한 과장이 하나의 은유로 자리해 있는 것이 이 구절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구절의 내용은 의식 있는 시인의 주관적 개입이 없이는 표현이 불가능하다. 말하자면 시인 허만하 자신의 의식이 참여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표현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때의 의식에는 당연히 그의 세계관이나 이념이 포함되어 있다. 선택된 풍경에서 자신의 의식을 발견하거나, 자신의 의식으로 선택한 풍경을 투사하는 것이 시인 허만하라는 것이다.
어떤 경우이든 그가 이 땅의 풍경을 찾아 나서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때로는 그것이 한갓 경치로 존재하거나 경치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 뻔하다. 하지만 때가 되면 충분히 유의미한 풍경으로 성숙할 수도 있는 것이 이들 경치이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보면 시인 허만하는 풍경 속에 자리해 있는 진실 혹은 진리를 찾아 나서는 시인, 흔히 말하는 기행시인이라고 해도 좋다.
세련된 현실비판 혹은 섬세한 연민 : 강인한
시인 강인한은 첫 시집『異常氣候』(1966)을 간행한 후인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자신의 위치를 좀 더 확고히 한다. 이 무렵의 그의 시에서 확인할 수 있는 특징은 당대의 현실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정신이다. 이는 『異常氣候』에 실려 있는 좋은 시 「異常氣候」 및 「1965」 등은 물론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시 「大運動會의 萬歲소리」에서도 익히 알 수 있는 그의 시의 매우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의 초기시 「異常氣候」, 「1965」, 「大運動會의 萬歲소리」등에는 강제로 베트남에 파병되는 젊은이들의 울분이 고스란히 내화되어 있어 크게 관심을 끈 바 있다.
이러한 비판정신은 두 번째 시집 『불꽃』(1974)은 물론 그 이후에 간행된 시집 『전라도 시인』(1982),『우리나라 날씨』(1986),『칼레의 시민들』(1992),『황홀한 물살』(1999), 『푸른 심연』(2005)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그의 시의 중요한 특징이다. 물론 이들 시집에 드러나 있는 그의 시의 비판정신은 기본적으로 반독재민주화라는 당대의 시민정신에 기초하고 있다. 광주항쟁의 피를 덮고 등장한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을 향해 그가 끊임없이 시의 비수를 들이댔던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접근할 때 좀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그의 시와 함께 하고 있는 이러한 비판정신은 참여정신의 구체적인 현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문학의 현실참여를 강조한 것은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이지만 사르트르도 시의 현실참여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부정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시인 강인한의 경우에는 시의 현실참여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듯싶다. 끊임없이 우리사회의 다양한 현실에 세련되고 단련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것이 그의 시이기 때문이다.
돈을 치른 개장수들이
목줄을 대문 밖에서 끌어 올리자
발버둥치다가
긴 혀를 입에 물고 죽어버린 개처럼,
결사 반대를 외치며 머리띠를 두르고
일사불란하게 주먹을 치올리는 젊은이들,
저 멀리서 리어카를 끌고
호루라기에 쫓기는 노인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다
노인은 파업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
언제 올가미에 목을 걸까
생각 중일뿐.
―「파업」 전문
이 시에서는 세 개의 대상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세 개의 장면이 겹쳐지고 있다. “긴 혀를 입에 물고 죽어버린 개”와“일사불란하게 주먹을 치올리는 젊은이들”과“언제 올가미에 목을 걸까/생각 중”인 노인이 만드는 장면들이 그것이다. 이들 존재는 호루라기로 상징되는 어떤 힘과 관련해 양면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어 더욱 관심을 끈다. 하나는 죽음과 함께 하는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싸움과 함께 하는 태도이다. 물론 화자로서 시인의 마음이 상대적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은 싸움과 함께 하는 태도가 아니라 죽음과 함께 하는 태도이다.
이 시에서 죽음과 만나는 개와 노인은 비유의 보조관념과 원관념으로 존재하며 상호 비교ㆍ대조되고 있다. 이 시에서 “긴 혀를 입에 물고 죽어버린 개처럼”의 원관념이 실제로는 노인이라는 얘기이다. “저 멀리서 리어카를 끌고/호루라기에 쫓기는”노인은 노점상이거나 일용직 근로자라고 해야 옳다. 하지만 “노인은 파업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 하지만 노인은 지금 “언제 올가미에 목을 걸까/생각 중일뿐”이다. 따라서 이 시에서 시인이 자신의 연민을 직접 부여하는 대상은 노인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리어카를 끌고/호루라기에 쫓기는” 노인에 대한 시인 나름의 연민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라는 뜻이다.
물론 그의 시에서 연민의 대상이 매번 이처럼 구체적인 인물형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상징적인 이미지의 형태로 간접화되어 있는 연민의 대상도 적잖기 때문이다. 이때의 연민의 대상도 위의 시와 같이 소외되고 버려진 존재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말이다. 그의 시에는 일종의 객관상관물로 이미지화되어 있는 연민의 대상도 상당하다는 것이다.
먹물이 번지는 하늘에서
하늘에서 검은 쇠못이
화살처럼 쏟아진다
은빛 강철의 손들이
무수한 손들이 아우성치며
땅바닥을 기어다닌다
찢겨져 바닥에서 몸부림치는
나뭇가지
검은 바람이 달라붙어서
거칠게 이파리를 뜯어먹는다
소리가 소리를 지우는
거대한 침묵 속에.
―「폭우」 전문
이 시에는 폭우의 이미지와 이파리의 이미지가 상호 대립되어 있다. 우선 폭우의 이미지는 “검은 쇠못”, “강철의 손들”, “검은 바람” 등의 이미지로 변주되는 가운데 억압자, 핍박자의 내포를 갖는다. 시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 존재, 즉 억압자, 핍박자는 당연히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들 존재를 수식하는 “검은”, “강철의”등의 말이 자못 부정적인 내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 이 시에는 무엇보다 이들 존재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이 담겨 있다. 물론 이때의 비판정신은 그의 참여정신에서 비롯된다.
이 시에서 이들 존재에 의해 억압받고 핍박받는 대상은 이파리의 이미지로 구체화되어 있다. 따라서 시인이 정작 연민을 갖는 것은 억압받고 핍박받는 대상인 이파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검은 바람”에 의해 거칠게 뜯어 먹히는 이파리, “찢겨져 바닥에서 몸부림치는”이파리가 여기서 상징하는 것을 알기는 어렵지 않다. 나날의 삶에서 착취를 당하는 모든 존재를 뜻하는 것이 바로 예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에서 연민은 비판정신과 서로 짝을 이루고 있어 한층 주목이 된다. 연민은 본래 변형된 사랑이다. 사랑이 측은지심의 모습으로 변형될 때 붙이는 이름이 연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연민을 포함한 사랑은 시의 화자가 대상에 대해 갖는 기본적인 정서 및 심리라고 해야 옳다. 따라서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사랑의 대상과, 그에 따른 정서 및 심리는 바뀔 수밖에 없다. 시인에 의해 그려지는 객관적인 풍경이 연민의 대상이 되거나, 진술의 주체로 드러나는 시인이 연민의 대상이 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시집에서 전자의 예로는 「밤의 메트로」,「사당역 레일아트」 등을 들 수 있고, 후자의 예로는 「한 방울의 물」,「입맞춤, 혹은 상처」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시에 이르면 그의 시의 중요한 특징인 현실참여와 함께 하는 비판정신은 곧바로 의미를 잃는다. 비판정신과 짝을 이루고 있는 연민이 이미 시 본연의 차원으로 전화(轉化)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시 본연의 차원으로 전화해 있다는 것은 예의 연민이 시에 포착되는 존재들 사이의 근원적인 친화, 그리고 그것들이 화자(시인)와 이루는 근원적인 친화의 질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 문무학, 신덕룡 시집에 대한 글은 생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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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봉(시인, 광주대 문창과 교수)
—《시와 시학》2009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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