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어제는 비
문학 참고서재

<시인론>강인한 시집 『입술』 -말의 징검다리, 혹은 장기판/육근웅

by 솔 체 2015. 4. 18.

<시인론>강인한 시집 『입술』 -말의 징검다리, 혹은 장기판/육근웅

 

 

하느님의 장기판 

 

 

  강인한은 ‘목숨을 걸고 문학 수업을 닦는 것이 결국 자기 구원의 길’ 2)로 여기며, ‘깨어있는 시민 의식(이가림)으로 시를 써 온 시인이다. 신석정을 스승으로 모시고, 김수영의 추천으로 시인의 길을 걷게 된 그의 경력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강인한은 맑은 정신을 바탕으로 현실을 예리하게 진단해 내는 시편들을 보여주고 있다.

 

  풍자와 반어를 바탕으로 현실을 비판하는 강인한은 에리히 프롬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사랑으로 이루어진 건전한 사회를 꿈꾼다. 꿈꾼다는 것은 곧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가 바라보는 현실은 비극적이고 부정적인 ‘글러먹은’ ‘우리나라’로 규정된다. 즉 강인한이 살아온 시대는 고통과 억압과 살육으로 점철된 불행한 시대였다. 이런 그의 인식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 「불길 속의 마농-1972년 비망록」이다.

 

   어지러워요 저 불길
   당신의 사랑은 너무너무 높아서 어지러워요
   저 불길을 누가 좀 잡아줘요
   어려요 저는 어리고 당신은 높으신 분
   말 많은 당신을 누가 사랑해요
   사랑해요
   잊어버리세요 저것들
   거렁뱅이들의 소동쯤 당신의 거대한 배짱으로
   밀어버려요 불도저로 밀어버려요
   까짓 양복점 직공의 항변쯤 눈감으면 그만
   벗어 놓은 제 브래지어로 차라리
   눈을 가리세요
   보지 마세요 듣지도 마세요
   무시해버려요 말짱 미친놈들만 박테리아처럼
   박테리아처럼 우글거리는 이 도시의 공기는
   담배보다 해롭고
   구할이 외상이에요
   (중략)

   어디서 오셨나요 당신의 유니폼이 겁나지만
   뭘 드시겠어요 총을 들고 버티겠어요
   저는 당신의 포로 그래요 마농예요
   주간지에서 절 보셨다구요 아이 기뻐요
   밤이 되면 전활 걸어주세요
   저기 오빠가 달려와요
   절 죽이러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어요
   어지러워요 막 타네요 저 불길
   농축된 당신의 욕망이 프로판가스처럼
   치솟아 오르면서 타네요
   세계에서 제일 쓸쓸하고 화려한
   돈 돈 돈자천하지대본이 타네요
   어지러워요 어지러워요 저 불길
   붙잡아주세요 아무도 없나요

                                                    -「불길 속의 마농 - 1972년의 비망록」전문3)

 

 

  시인 스스로 ‘총체적인 군사독재의 부패상을, 그 비슷한 시기들의 사건들을 모아 모자이크하여 풍자한 시입니다. 현실 풍자의 종합 세트’라고 밝힌 이 시는 ‘삼선 개혁 직후 느닷없이 ’10월 유신‘이라는 게 선포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눈덩이처럼 외채가 불어나고 금리가 대폭 인하된 가운데, 근로 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는 평화시장의 봉재 공원 전태일이 분신 자살하였습니다. 사회적으로는 무장 군인의 다방 인질 소동, 대연각 호텔의 대화재 사건 등도 있었으나 고위층의 정부 정인숙 피살 사건은 세인의 많은 관심을 끌었던 사건’들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정인숙이라는 화자의 입을 통하여 1972년 사건들을 알레고리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런 태도는 광주민주항쟁운동으로 이어지면서 ‘시대의 고발자’로서의 화자를 낳게 된다.

 

 

   새벽이었다.

   (중략)

   투항하라, 투항하라, 투항하라,

   눈이 시린 하늘 하느님보다 높이 뜬

   군용 비행기에서

   아카시아 꽃잎 같은 전단이 떨어져내려

   피레네의 성을 빠져나간 이웃은

    이 새벽 저 소리를 들었을까.

 

   쥐새끼처럼 처참하게

   옆구리에서 창자가 삐져나와 죽어버린

   젊은이의 얼굴은

   온통 페인트로 회칠돼 있었다고

   말해주던 친구도

   그 새벽에 울고 있었던 것을.

 

   라디오에선 '콰이강의 행진'도 경쾌한

   오월의 새벽.

   (중략)

 

   이윽고 문 밖 어디쯤에서

   피보다 검붉은 총성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국민학교 담벼락에

   붉고도 붉게 장미꽃이 피어난 것을

   며칠이 지난 뒤

   살아 남은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무심히 지나쳐 갔다.

                                                                                    -「카인의 새벽」

 

 

  ‘피보다 검붉은 총성’에 의하여 ‘쥐새끼처럼 처참하게/옆구리에서 창자가 삐져나와 죽어버린/ 젊은이’ 들과 비겁하게 ‘살아남은 우리들’을 첨예하게 대립시키고 있는 「카인의 새벽」은 오욕의 역사를 고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반어적으로 ‘카인’의 방조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일깨워준다.

 

 

   누가 우리들의 머릿속에서

   광주를 빼내어 달아나고 있다

   누가 우리들의 머릿속에서

   광주의 오월을 빼내어 달아나고 있다

   인간이기를 거부한 자들에게

   죽음으로 항거한 피투성이 금남로를

   누가 우리들의 머릿속에서 빼내어

   달아나고 있다

   (중략)

   배반의 세월 속에 십 년이 지나고

   우리들의 머릿속에는

   일확천금의 지푸라기로 가득 차서

   그것 보라구, 킬킬킬 웃어대는 소리가

   우리들 바보의 머릿속 어디선가 들려온다.

                                                                                                   -「배반의 세월 속에」

 

 

  시집 『칼레의 시민들』후기에서 강인한은 ‘1980년 오월의 광주. 그때를 광주에서 겪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칼레의 시민들‘이 당한 비통한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나갔다. 죽은 자는 땅 속에 묻히고, 살아남은 자는 빚진 것을 부끄러워하고 슬퍼하고 방황하기도 하고, 더러는 그 이름으로 평안한 직장과 명예를 사기도 했다. 아예 장사꾼으로 나선 이도 있었다.’ 라는 착잡한 심정을 드러낸다. 이 시에 드러나는 화자의 자조적인 목소리는 시인의 영혼의 호소이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고백이어야 마땅한 것이리라.

 

  총칼에 의한 죽음의 공포에 직면하여 취할 수 있는 소시민들의 초상을 그려내는 강인한에게 칼레의 시민들이 보여주었던 ‘노블레스 오블리주’ 는 차라리 꿈이었을 것이다.

 

 

   전라도의 오월 하늘입니다
   마약처럼 우울합니다
   어디선가 아스라이
   울음 소리 떼지어 들려옵니다
   한 사람의 눈물이 칼에 찔리고
   두 사람의 눈물이 구둣발에 뭉개지고
   열 사람, 백 사람의 눈물이
   박살난 채 내던져지는
   이것은 꿈입니다
   벙어리들이 울고 있습니다
   멍든 심장에 쇳덩이를 무겁게 매달고
   수천 수만의 벙어리들이 모여
   한 덩어리로 울고 있습니다
   벗기어진 알몸인 채
   두 손이 묶여 있습니다 
   어디론가 아스라이
   강철의 불길 속으로 끄을려가는 
   피투성이 울음 소리, 울음 소리
   아닙니다
   이것은 꿈입니다
   밤이면 밤마다 꽁무니에 불을 단
   총알이 날고
   유리창 밖에 죽음이 서성이는
   오월의 전라도 광주
   아카시아 향기가 저주처럼 풍기는
   철길엔 열차가 끊어지고
   시외 전화도 끊겼습니다 아아, 형님
   보고 싶은 누님
   여기는 지도에 없는 섬입니다
   허공에 떠 있는 섬입니다
   내려갈 길은 보이지 않고 올라오는 길도
   지워져버린 
   오월은 아직 이승의 계절입니까 
   말 못하는 벙어리들 피 묻은 울음 소리를
   당신들은 들을 수가 없습니다
   별보다 먼 나라에
   그리운 당신들의 안부가 있습니다
   까마득한 하늘에서는 알 수 없는 삐라가
   칼춤 추며 까물까물 내려오는데
   쇠사슬에 묶인 칼레의 시민들은
   오늘 다시 이 땅에 청동의 발걸음을 내어딛는데
   햇볕만이 침묵으로 타는 학교 둘레
   돌담에 기대어
   장미는 핏방울로 툭툭 피어나도 좋습니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것은 꿈입니다 아득한
   석기 시대 야만의 꿈입니다.
                                                                                 -「이것은 꿈입니다 - 칼레의 시민들」

 

 

  1980년 5월의 광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 시의 ‘꿈’은 다의적으로 읽힌다. 일차적으로 꿈은 허망함을 환기시킨다. 과학과 정보가 발달한 20세기의 막판에서 ‘석기시대’에나 일어났을 법한 야만적인 살육이 일어날 수 있다는 허망함이 그것이다. ‘꿈’은 또한 부정적 현실을 회피하고자 하는 화자의 태도를 반영한다. 즉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적인 사태로부터 심리적인 위안을 얻기 위하여 그 사태를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것은 꿈이다.’ 라고 부정의 방어기제를 통하여 덜어내듯이 이 시의 화자는 모든 것을 꿈으로 돌리고 싶었을 것이다.

 

  ‘칼레의 시민들’은 로뎅의 청동조각품으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명사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칼레의 수많은 시민들을 살리기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내어 놓겠다고 나선 칼레의 지도층의 숭고한 도덕적 의무를 기리는 말이기도 하다. 살아있는 자로서의 시인이 ‘한 줌의 비겁’을 안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시인 자신을 포함한 지도층이 칼레의 시민과 같은 용기를 보여주지 못하였다는 자괴감에 다름이 아니다. 따라서 ‘꿈’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꿈에서나 가능한 것으로 만든 광주와 시대의 부재를 함의하기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착취와 기만, 부패와 부조리의 역사를 헤쳐가야 하는 민중들의 수난은 저항하는 자들에 대한 탄압을 넘어선 기만과 억압에 의한 침묵이 강요된 가사상태의 삶으로 이어져야했다. 이처럼 자유를 강탈당한 시대에서 삶의 뚜렷한 지표를 세우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하여 투쟁한다는 것은 실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으며, 그것은 시인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었다.

 

 

   나하고는 상관도 없는 일이지만

   무크지를 낸 사람들이 잡혀가고

   나하고는 상관도 없는 일이지만

   출판사 하나 덜컥 문짝에 자물쇠가 채워졌다.

 

   출판 등록 취소의

   취소 탄원서에 나도 머리를 디밀어

   거들어 주면서도

   틀린 것이다 틀린 것이다 틀린 것이다.

 

   웬일일까

   전주의 어느 술집에서

   땅콩을 씹던 시인 鄭洋의 말이 생각난다.

   세상에 醉生夢死 이상 좋은 게

   어디 있겠어 (진리다)

   그 말이 보름달로 떠오른다.

                                                                         -「요즈음의 진리」

 

 

  1980년 10월에 발표된 「요즈음의 진리」는 지배자의 통제정책에 의하여 와해된 공동체의 일원이 내뱉는 자조적인 탄식을 ‘나하고는 상관도 없는 일이지만’ 이나 ‘틀린 것이다’ 라는 좌절감으로 드러낸다. 억압정책의 일환으로 곧잘 등장하는 결속의 와해 전략에 의한 희생자로 보이는 방관자로서의 화자는 탄원서에 서명을 하는 행동이 부질없는 몸부림임을 ‘틀린 것이다’라고 자조적으로 노래한다. 출구가 없는 감옥과 같은 상황에서 부르짖는 ‘취생몽사’만이 진리로 확정될 때, 두 시인은 즉자적 소시민 이상일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강인한의 풍자의식에 비추어보면 반어적으로 깨어있어야 함을 부르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의 시는 이러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작품이다.

 

 

   뇌 없는 아기가

   태어난다

   태어나기도 전에

   뱃속에서 녹아버린다

   아이스크림처럼.

 

   이 여름에

   사상이 없이 태어날 수도 있는

   하늘의 축복이여.

   (중략)

 

   이 여름의 무식한

   바람을 엑스레이로 찍어보면

   정치적이다

   아니다, 뇌가 없다

   씨 없는 수박처럼.

                                                                                           -「뇌 없는 여름」부분

 

 

  무뇌아를 두고 ‘사상이 없이 태어날 수도 있는/하늘의 축복’이라고 노래하는 강인한의 시작태도는 반어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남북이 대치된 상황에서 민족의 동질성은 도외시된 상황 속에서 사상적 대립이 곧 이적성으로 재단되는 정치적 풍경을 무뇌성으로 비유한다. 「요즈음의 진리」가 두 시인만의 진리관을 넘어서는 것임은 80년대를 조금이라도 성찰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두 말할 필요도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착취와 억압, 저장과 교환의 불건전한 성격을 넘어선 사랑으로 이루어진 사회를 건전한 사회로 본다. 건전한 사회는 관심과 이해와 존중과 책임을 바탕으로 한 사랑의 사회에 다름 아니다. 강인한 또한 불건전한 사회 속에서 건전한 사회를 꿈꾼다. 「사랑의 간격」이 목련과 모과나무의 차별성을 넘어선 관심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듯이 「능소화를 피운 담쟁이」는 상호 존중의 공동체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그려낸다.

 

 

   능소화는 담쟁이 허리를 껴안고 기어올라

   한 덩어리 파아란 불길이 되어 그들은 타올랐다

   사나운 비바람이 담쟁이를 흔들자

   능소화도 담쟁이도 함께 흔들렸다

   담쟁이는 제 가슴에 붉고 커다란 꽃송이들이 자랑스러웠다

 

   지열이 아지랑이로 피어오르는 여름날

   목을 꺾고 꽃이 떨어졌다

   안아주고 몸을 빌려준 마음을 알았으므로

   능소화는 한두 송이 꽃이 져도, 꽃이 져도 좋았다.

                                                                                           -「능소화를 피운 담쟁이」부분

 

 

  능소화가 담쟁이 허리를 껴안고 사나운 비바람에 흔들리며 기어올라 피워낸 꽃을 담쟁이가 제 꽃인 양 자랑스러워하는 풍경을 통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개별성을 넘어선 사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능소화를 지도층으로 읽고, 담쟁이를 민중의 알레고리로 읽어도 좋을 이 시는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어우러짐이 결핍된 사회를 넌지시 꼬집는다 해야 할 것이다.

 

 「성자」는 헌신적 사랑의 극한을 오목눈이를 통해 노래한다.

 

 

   뻐꾸기가 몰래 떨구고 간

   하늘빛 둥근 알

   눈도 못 뜬 고 벌거숭이가

   등으로 등으로 오목눈이 알들을 밀어내네

   밀어내서 둥지 밖으로 떨어뜨리네

 

   가엾어라

   제 새끼들을 죽인 뻐꾸기 새끼인데

   오목눈이 먹이를 물어다 먹이네

   그나마 목숨은 한 가지라고

   제 몸집보다 훌쩍 큰 남의 자식을

   오목눈이 지성으로 먹여 살리네

                                                                                            -「성자(聖者)」부분

 

 

  시인은 사물에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는 존재이다. 탁란조(托卵鳥)인 뻐꾸기 새끼가 자신이 힘들여 낳아놓은 알을 굴러 떨어뜨리는데도 원수와 같은 뻐꾸기 새끼를 제 새끼 키우듯 정성껏 돌보는 오목눈이를 시인은 ‘聖者’로 고쳐 부른다. 일상적인 이해로는 뻐꾸기는 얌체족이며, 오목눈이는 제 새끼도 못 알아보는 멍청한 새가 되어야 할 것임에도 그를 굳이 ‘성자’라고 부르는 것이 지나치다면 지나칠 것일 수 있으리라. 이런 경우에 처하게 된다면 보통사람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고 할 수 있으리라. 어찌 사람으로서 제 본분도 망각하느냐는 핀잔을 견디어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다시 곱씹어 보면 정체성이 차이를 낳고, 차이가 파벌을 낳고, 파벌이 갈등과 분쟁을 낳고, 분쟁이 탄압과 살육을 낳게 되는 원인이 되는 것이 인간의 역사였다는 것을 부정할 이는 없을 것이다. 아직도 지구상에서 지속되는 종교분쟁이나 민족분쟁이 그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오목눈이가 전혀 다른 종인 뻐꾸기 새끼를 ‘목숨은 한가지’로 여기면서 지성으로 먹여 살리는 모습은 어느 민족보다도 더 성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강인한은 이 시를 통하여 인간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오목눈이를 통하여 드러내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망각이란/ 가시 많은 사람살이에 얼마나 고마운 벗’(「발다로의 연인들」)인가를 자문하는 강인한은 오목눈이의 착각을 두고 그것이 망각을 넘어선 용서이며, 이런 용서에 이를 때에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가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을 품는다.

 

  강인한은 말들의 ‘영혼’을 다룸으로써 말을 비유적 용법으로 사용한다.

  강인한의 말은 세상에 의해 창조된다.

  강인한의 말은 도덕적 측면이 강조되는, 빛나는 영혼을 길어 올린다. ‘가엾은 하느님’은 연민을 낳고 , 연민은 이 시대의 ‘성자’를 찾아 ‘알 수 없는 말’의 숲을 헤맨다. 하느님이 내민 장기판은 텅 비어있을 것이다. 비어 있는 장기판이 말의 심연을 건너갈 징검다리로 놓이는 날이 오면, 우리의 시단은 한층 빛나고 즐거운 놀이에 심취하게 될 것이다.

 

 

 

 

2) 강인한, 「거울 속의 몇 가지 풍경」,『시를 찾는 그대에게』,시와사람사, 67쪽.

3) 강인한, 『어린 신에게』,문학동네, 1998,82-85쪽.

                                                                                                                   -<시와문화> 2009 겨울호

 

--------------------------------

육근웅 : 한양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문학박사. 1973년 월간 시전문지 《풀과별》로 등단. 시집 『주여 아직도』연구서로『서정주 시 연구』가 있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