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겨울《시와세계》신인상_ 이강하 / 숯가마 (외3편)
심사위원_ 유안진, 송준영
숯가마 (외 3편)
이강하(李康河)
가을과 겨울 사이를 잠입한 나른한 골목 안
빛나는 화염을 풀어 놓고 있다 누군가
불꽃 갈퀴는 보다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벽을 타고 여자들의 가랑이에선
가마가 달구어지고 있다
구운 달걀들이 통통해지고 있다
규칙은 리듬과 엇박자로 떨어지고 골목의
어깨는 왼쪽으로 휘어지고 이유 없이
발톱을 매만지다 실실 웃기도 한다 달마다
바뀌는 빛의 방향들 땀방울의 화염을
삼키는 골목으로 우리는 사라진다 나는
곧 낯선 여자의 다리에서 탄력적인
달걀 하나를 얻을 것이다 언젠가
열정의 날개로 태어나던 달걀 막다른
골목 끝이 갈라진다 세상의
반을 돌아온 가마의 둥근 등에 누워
바퀴를 굴리는 흙벽의 그림자를 바라본다
불덩이를 품은 기억은 양지로 내내
훤하다 우리는 가마 안에서
그렇게 달아오르고 있다 어제와 오늘이
파도도서관과 양파링
아삭바삭 나를 먹네. 애초부터 모서리가 없는 기둥은 저만치 선 연인들에겐 푸른 등대일 뿐이네. 열람할 수 없는 파도 뒷문으로 오징어 배처럼 흔들리는 수평선이 구겨진 나를 철썩철썩 펴내고 있네. 첩첩 깔리는 안개의 숲이네. 내가 부서지는 아득한 소리. 침묵과 소음을 동시에 헝클어놓고 은하수를 읽던 수많은 바람들, 신나게 달리네. 고요가 철-썩, 서로의 안녕을 물으면 우리의 미래도 수평으로 밀려오네.
바다일까 육지일까 파도가 밤 내 육해도감을 넘겨본다네. 왜 바다 귀신고래들이 양파를 쓸까? 주술을 풀지 못하는 나의 춤, 한 권의 책으로 남고 싶은 너와 나. 벗겨도 보이지 않는 푸른빛 밤바다를 꿈꾸는 여기는 파도도서관이네.
결빙구간
지퍼를 열고 있었다
탈골된 발목
몹쓸 예감이 맞았다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고목나무 밑 까만 음지 같은 날들
물고기야, 어디 있니?
이파리 뒤에 숨었니, 옹이 속에 숨었니
대답해주지 않으면
아무 곳에나 작살을 놓을 거야
문 닫힌 회사 앞 가족들이
찢어져 너덜거리는 포스트잇처럼 떨고
눈발은 겹겹 능선 표지판에 침묵을 건네고
산과 산은 어깨를 기대고 꽁꽁 언 마음을
어디로 흘려보내는 걸까
촉감으로 뭉쳐진 음지의 끝 이전의 자궁에서
눈물 같은 시간을 만난다 따뜻한
햇살이 발목 사이로 모여든다 늑골 사이
구멍이 뚫리는 소리 얼음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갈 것이다
새의 울음 따라 벼랑에 서 있다
그늘의 문장
엎질러진 남자의 끝자락에서 그늘이 펼쳐졌다 주름치마같이 물결 발자국같이 그늘진 쪽으로 휘어져 등줄기가 뻣뻣해진다 호흡과 호흡 사이 가느다란 떨림줄 같은 것들이 목 뒤로 흐르는 핏방울들이 하늘과 땅의 경계를 가르면서 나를 밀고 당긴다 그늘이 그늘을 뱉어내면서 넌출거리면서 그와 내가 뭉뚱그려지고 흔적 없이 사라지고
어쩌다 복도 난간에서 번뜩이는 너를 만날 때도 있다 4차원의 세계로 들어가 허리를 빙글빙글 돌리며 핑크색 돌고래가 되거나 플라스틱을 와작와작 씹으면서 밀림 속 나비족이나 될까 지그시 눈을 감으면 펼쳐진 그늘 속으로 내가 빨려든다 허공이 끌려온다 바깥세상을 기웃거리는 그 틈새 코발트빛 토막 하늘이 부서져 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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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하(李康河) / 경남 하동군 화개 출생. 울산시 북구 천곡동 거주. 이메일 uree7766@naver.com
—《시와세계》 2010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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