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외 4편)
류 흔
부당하다.
부당부당, 부당한 시동 뒤에 달린 배기관의
떨림은 부당하였다.
그러나 출발은 온당했으며
질주는 당당하였다.
oh! 오토, 오토바이여
달려라!
백 마력으로, 백오십 마력으로, 최대의 마력으로
마력이 넘쳐 매력으로
다다다당, 달려나가라.
길을 달리다가 길을 만나면
길을 잡아채서 뒤로 던지라.
나뒹군 길들이 툭툭 먼지를 털며 일어선다.
(백미러로 다 보인다)
더 당기니 가로수가 쓰러진다.
쓰러진 가로수를 일으켜 세우면 세로수가 되나?
뭐든 다, 다다다당, 다 감당할 테니 내게로 오라.
(내게로 온 것은 뒤에도 있다)
등에 얼굴을 묻은 채
허리를 으스러뜨리는 애인이여,
긴 머리칼을 휘날리느라 안전모도 쓰지 않았구나.
이대로 영원히 달렸으면 좋겠어요, 뭐 이런 종류의 대사는
영화처럼 석양 속으로 사라진다.
뽈뽈뽈뽈,
생각만으로도 흐뭇한 나는
스쿠터를 타고.
비
몇 날 며칠을 비는 밖에 서 있었고
나는 거실에 앉아 있습니다.
내가 커피를 마시면 비는 향기라도 맡을 요량인지
흠흠 창문으로 코를 들이댑니다.
비와 나 사이에 침묵이 흐릅니다.
그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벽을 헐어내고 유리창을 달았습니다만
온몸을 으깨어 주룩주룩 흘러내릴 뿐
나는 그것이 그가 침묵하는 한 방법이지
그의 눈물이라거나 감정일 거라는
지극히 감상적인 표현을 삼가겠습니다.
어쩌면, 비와 나 사이에는
좁혀지지 않는 협곡이 흐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테면, 수학 시험지 위에서 빗발치던
사선의 붉은 색연필이든가
오래전 헤어진 빗속의 여자 같은 추억 말입니다.
어떤 세월을 들이밀어도 비는 목격자인 거지요.
비는 은유를 모르며 비유의 천재이지요.
내가 뭘 채우려 애쓴다면
비는 비우라 말할 겁니다.
어느 날은 후둑후둑 느닷없이 뛰어온 비가
어? 하는 사이에 온몸을 핥고 지나갔지요.
나는 따뜻한 샤워를 하며 그의 침을 닦아내야 했는데
비의 서늘한 혓바닥은 잊을 수 없어요.
많은 날이 필요치 않았지요.
그와 나 사이에서
사이가 떨어져 나가기까지는,
많은 세월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벗기기까지는
서로가 서로에게 젖기까지는.
꽃의 배후 2
감정의 융기를 부조(浮彫)하고 있는 손바닥,
지문들이 넝쿨로 뒤엉켜 머리카락을 감싸고 있다. 쥐어
뜯는다는 거, 정지 화면; 이것은 그림이다.
고뇌의 형상을 표현한 미술작품,
〈순환의 바람으로부터〉정물로 굳은 꽃까지
순간이란 영원이란, 돌아가는 통 속에 구겨넣은 기억이라고나 할까?
이 붉고 푸른 원색을 살해하는 무채색이란
오랜 하늘을 일거에 완성하는 스테인리스 재질의 나이프에 있다.
빛나는 스냅, 낭창낭창한 허리, 누르며 발라가는 도포(塗布), 테레핀의 열악한 냄새들
냄새는 오후를 지향해야 하는지
유순한 굶주림이 흐르는 눈물 쪽으로 스르르 저물어가는
일종의, 시각(視覺)에도 기척이 있다는 생각이다.
먼 옛날에도 오전은 있었고
지난 세월, 무사히 보냈던 계절이 있었다.
지칭하지 않은 세월이 흘러갔으며
부르지 못한 이름이 있었다.
뛰어오다 걸려 넘어진 풍경이 있으며
한 눈 지그시 감은 채 일으켜주던 구도(構圖)가 있었다.
파랑과 붉음이 뒤섞이던 날,
물든 보라의 손바닥이 지워지지 않던 어느 날
무어라 정할까, 제목은 도저히 생각나지 않던
불룩한 날이 하루는 있었을 것이다.
희방폭포
물이 무너졌다, 라고 말하려는데 물은 검은 소(沼)를 이끌고 절벽을 오른다
무지개는 폭포의 이쪽 벼랑에서 저쪽 벼랑으로 일곱 개의 둥근 자일을 던졌다
허공에 걸려든 물보라를 쪼아대며 빛의 부리가 떼로 날아들었다
우거진 연화봉의 가랑이 사이로 내지른 물발이 희방사 기왓장을 날리고 떨어지다, 단애를 슬슬 어루만지는 시간이다
초록 한가운데 주먹만한 하늘이 뻥 뚫렸으니 그 구멍으로 콰콰콰 몰려나가는 함성에 귀를 묻는다
뛰어내리기 직전에 고르는 숨인지 잠시 주춤하는 생각들, 아, 구불구불 흘러 당도한 낭떠러지 위에 가지런히 구두를 벗어놓은 물방울들을
보아라, 염(殮)할 새도 없이 소리와 뼈와 살은 타올라, 향 사르는 흰 보라 연기의 오름을
세렝게티의 추억
그 누구도 목격한 바 없지만, 나는 오래 그녀를 노렸어
그녀가 결정적으로 예쁘다는 말은
내가 그녀를 먹기로 결정했다는 뜻이야
잠복에 능한, 비열하고 느닷없는 공격이 장기인 나는
매일 밤 그녀의 집 앞을 어슬렁거렸지
그날따라 그녀의 목덜미는 희고 가늘어서 쉬 낚아챌 만했고
물어뜯긴 입술에선 비명이 낭자했어
그녀의 가슴살은 물컹해서 순간
내 가슴도 뭉클했고
갈비뼈는 날씬해서 오독오독 씹을 만했지
마지막으로 그녀의 생식기에 이빨을 박아넣었는데
아직 숨이 남아 있던 그녀, 짧고 기분 좋은 신음을 흘리더군
나는 그 신음마저 핥아먹었어
그때, 달이 떠올랐고
반쯤 감긴 그녀의 눈과 마주쳤지
나는 피 묻은 턱을 들어 늠름한 작별 인사를 했어
가까이에 하이에나들 횃불이 점점 밝아옴을 느끼며
두툼한 앞발을 들어 그녀의 눈꺼풀 내려주는 일도
잊지 않았지, 안녕
내 사랑
— 시집 『꽃의 배후』
----------------
류흔 / 1964년 경북 안동 출생.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을 받음. 시집 『꽃의 배후』.
'신 인 문 학 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1세기문학 신인상 당선작_ 김수정 / 팽나무(외 4편) (0) | 2015.05.01 |
|---|---|
| 제17회 《시인세계》신인작품 공모 당선작_ 박은정 (0) | 2015.04.30 |
| 2010년 《작가세계》 신인상 당선작_ 김소형/ 임유리 (0) | 2015.04.28 |
| 2010 문학사상 신인문학상 당선작 - 諺簡文 -외 6편 (0) | 2015.04.27 |
| 2010 겨울《시와세계》신인상_ 이강하 / 숯가마 (외3편) (0) | 2015.04.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