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여름《미네르바》신인상 당선작_ 김경성 / 정재춘
심사위원 : 본심_ 강희근, 이명재, 김인육
예심_ 김정임, 이채민, 김세영
등뼈를 어루만지며 (외 2편)
김경성
종달리 해변 둥그렇게 휜 바다의 등 위에 올라앉아
내 등뼈를 어루만졌다
목뼈에서부터 등뼈를 타고 내려와 꼬리가 있던 곳까지 천천히 만졌다
오롯이 솟아있던 어린 등뼈 오간 데 없다
살집 속에 숨어버린 등뼈는 손가락으로 여러 번 어루만져야 드러났다
닿을 듯 닿지 않는
내 몸에서 가장 먼, 그대 여린 숨결 같은 불을
밝히는 등
등을 타고 흐르는
손이 닿으면 금세 젖는
나보다 그대의 눈에 더 잘 보이는
나란히 누우면 물 흘러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닿을 수 없는 강,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종달리 해변처럼 둥그렇게 잘 말아서
천천히 흐르게 하자
투 둑
강이 구부러지는 소리
투 두둑
물이 꺾이는 소리
내 안에 그토록 많은 사금파리가 들어 있었다니
하염없이 앉아서 구부러진 등뼈를 어루만졌다
흐르지 않고
상처의 틈에 고이는 물이
몸 안에서 출렁,
파랑주의보다
각
오동나무 통꽃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날 나는 맨발이었다
오래전 그 사람이 걸어서 과거시험을 보러 갔던
옛길이라고 했다
아직도 먹을 갈고 있는지
계곡물은 자꾸만 음표를 그려대고
새들은 기억 속의 지도를 펼쳐서
해찰 한번 하지 않고 산을 넘어갔다
비 그친 후, 수음문자로 적어 내려간 흙길
말캉한 가상자리에 발가락으로 쉼표를 찍었다
계곡을 따라 흘러가는 옛길의 이야기는
길을 걷는 사람들이 계속 이어나갈 것이고
내가 내려놓은 문장은 각주가 없는 쉬운 말이기를 바랬다
산벚꽃 흩날리며 자꾸만 온점을 찍어대고
5막의 문설주에 기대고 있던 나는
다 읽지 못한 앞 페이지의 문장을 생각했다
길을 걷고 온 며칠 후,
무엇에 베인 듯 발바닥 지문의 결이 갈라져서 사포 같았다
부드러운 흙길 속에는
지문을 잘라버릴 만큼의 날카로운 모래의 각이 있었고
나의 몸속에도 각주가 필요한 문장이 있었다
해독하지 못한 말들을 거칠게 잘라놓은 모래의 각,
남겨진 것들이 모두 부드러운 말言이기를 바라지만
부드러운 것은 그렇게 제 마음 속 보이지 않는 틈 사이에
각이 있다
장맛비에 흠뻑 젖은 흙길
아직도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당초문 그려진 책 표지만 바라보고 있다
산란
그가 오래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도
그의 마음속에 쌓아둔 것도
모두 흙 한 줌에서 시작되었다
설겅설겅 썰어놓은 짚단을 넣고 흙을 버무려서
대나무 엮은 발에 대고 벽을 쌓았다, 백 년 전의 일이라고 했다
시멘트 껍데기 한 꺼풀 벗겨 낼 때마다
풋풋한 지푸라기와 붉은 흙 살아서 꿈틀거렸다
탱자나무의, 머위의, 은꿩의다리의, 자궁이었던
아이를 낳고, 아이가 또 아이를 낳고,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의 자궁이었던
붉은 흙집 적산가옥, 산란의 눈부심을 무어라 적어야 할까
너에게로 가는 길로 들어서는 것도 흙길이었고, 강물을 거슬러서 올라갔던
은어 떼,
몸 누인 곳도
지층의 속 겹이었으니
벗어날 수 없는 산란의 감옥
한 줌의 흙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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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성 / 전북 고창 출생.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2005년 《예술세계》신인상. 시집 『와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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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킬 (외 2편)
정재춘
내겐 늘 있는 일이다
일상을 무시한 채 앞으로만,
의지로서 노려보는 바퀴의 전율.
불안한 언어로 내달린 편도 일차선에선
사유의 목마름을 해갈해 줄
영혼의 앤솔로지도
책들의 과수원도
이젠 닿을 수 없이 지나쳐온
길 위 저쪽.
무엇이더냐
마주 오는 부신 빛에 홀려
해바라기도 기웃대보고
눈뜨고 숨쉬는 제 안의 하늘과
갸륵한 사랑도 생각해보는데,
흙탕길은 포장도로가 되고
허방 갓길엔 코스모스가 피고
별빛 닮은 가로등에 소월과 네루다가 엇비칠 때,
돌연
급격한 격통과 둔중한 이 울렁임은.
그것은 날것의 냄새다.
피 냄새다.
완고한 의지로 노려보던 바퀴의 직선운동 아래
무수히 뛰어놀던 평면 위의 사유들
선혈을 흩뿌리며
산꿩으로,
고라니로,
날다람쥐로,
준열한 알몸을 내놓는다.
다슬기
하루를 꿈꾸며 고인 하늘에 웅크리고 있다
푸르름이 사무쳐 온몸으로 밤을 보고
새벽안개 시린 물결 아랑곳없이
안으로만 채뜨려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순수만을 교감하던 결연한 매달림
터져 나오는 제 안의 아우성을 어쩌지 못해
앙다문 까만 입술엔 핏빛 결기가 배어나오고
곁을 주지 않으려는 독한 다짐으로
몸피마저 새까만데,
두려운 마음에
손끝으로 몸을 여니
완고한 각질로 저항하다
자결하듯 낙하하는 분분한 숨결이
한 발치 두 발치 앞
동정(童貞)의 언덕을 만들었다
벽과 천장
그녀가 불 켜주길 기다립니다. 낙엽 같은 우울들이 바닥에 누운 거울이 되어 나를 바라봅니다. 손 닿을 것 같습니다. 떨어져 동면하는 잎새들로 그녀를 빛낼 수는 없을까요? 몸 없이 부유하던 내가 갈퀴 같은 발이라도 얻었다면, 들여다볼 외눈이 그나마 생겨진다면 직립으로 서서 영겁쯤은 무심하게 기다리겠습니다. 그녀가 울고 있습니다. 그러나 벽이 될 수 없는 나는 선으로 내려가 허리를 꺾어서라도 발치에 닿고 싶습니다만, 모로 앉아 바닥에 침잠해버린 그녀는 숫제 구멍이 숭숭 뚫린 어두운 가슴의 화석입니다. 벽은 서 있습니다. 박제된 고양이가 내려다보고 있는 벽은 서 있습니다. 벽에선 고개 돌린 해바라기가 유일합니다. 바닥에서 마주보는 또 다른 내가 날카로운 직각으로 거역할 수 없는 고행을 합니다. 그러나 나는 다가오는 나를 모릅니다. 그녀는 울고 박제된 고양이가 갸릉거려도 벽은 서 있습니다. 나는 소리치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올려다볼 수 없습니다. 벽은 그 자신만의 천장이기에 건너편 다른 자신을 만나지 못해 서 있습니다. 중력이 의미를 잃은 이곳에서 그녀에겐 늘 벽만 있습니다. 불이 켜져도 올려다볼 천장을 모르는 그녀는 여섯의 벽에 기대 울고 있습니다. 여섯의 고양이와 여섯의 고개 돌린 해바라기가 서서 울고 있습니다.
나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
정재춘 / 한국방송대학교 영문학과, 추계예술대학교 문창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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