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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인 문 학 상

2011년 가을《詩로 여는 세상》 신인상 당선작ㅡ 박승일/ 이하율

by 솔 체 2015. 5. 22.

2011년 가을《詩로 여는 세상》 신인상 당선작ㅡ 박승일/ 이하율

 

푸른 방(외 2편)

 

 

 박승일

 

완강한 병의 뚜껑을 따고 들어가면

매끄럽게 굽은 안팎 어디엔가

푸른 요람 하나 옹알거릴 것 같아

병목을 지나 묏등 같은 낭떠러지 저 끝 어딘가

꼭 한 번 누워보고 싶은

청색의 방 하나 있을 것 같아

병이 비워질 때마다 기우뚱

잦아드는 몸을 들이밀고 하나 둘 셋

낙하 신호를 손꼽아 보고 싶은

꽃술처럼 도도록 솟은 입술에 귀를 대고 가만가만

목울대 긴 병의 궤적을 따라 휘돌면

깊고 푸르게 생을 요약하는 소리

덜 비워진 병끼리 바닥을 기울이는 소리

온몸이 그만 푸릇푸릇 물들 것만 같아

그것은 명백히

병!이야 발음했어야 할 누군가의 혀가 첨벙,

멍들었기 때문일지도 몰라

박음질도 없이 꼭꼭 여며진 몸

비워지고 채워지던 어디선가

파르르, 차디찬 화염이 치솟을 것만 같아

한 사람의 초라한 체온과 입김으로는

닿지 않을 저 깊고 우울한 곳, 거기

빈 무덤 하나 예약해 주시겠어요?

내일쯤 죽는 자가 될지도 몰라

병과 병의 안팎을 드나들던 세입자가

꼭 한 번, 주인 세대가 되어 볼 것도 같아

 

 

 

비 내리는 법

 

 

이발소 남자가 면도칼을 들고 올라가 지붕에 걸린 구름의 뼈를 다 발라냈다

 

뭉쳤던 근육을 풀어주고 충치를 뽑자 소나기가 내렸다

 

귀를 열고 지켜보던 아래쪽 지붕들이, 창문과 나무들이 어느새 행복해진다

 

자장면 한 그릇 시켜먹은 빗줄기가 햇볕에 부르튼 지붕을 적시고 처마를 타고 내려와

 

갈라진 길바닥을 봉합한다 갑자기 분주해진 우산들이 고립된 길과 골목을 연결한다

 

아랫도리를 적신 자판기가 빗방울의 틈을 비집고 한 잔의 수증기를 날려 보낸 뒤

 

구십오 도의 체온 유지를 위해 재빨리 입을 닫는다

 

가위와 빗을 내려놓은 미용실 여자가 온수를 틀고 물의 온도를 읽자

 

고슬고슬 양털 퍼머로 모양을 낸 구름이 고분고분 머리를 들이민다

 

주머니에 손 찌르고 방관하던 바람이 두런두런 외출 준비를 하는 하오

 

누렇게 마른 입술 달싹거리던 샛강의 입이 건너편 뚝방까지 죽 찢어져 간다

 

 

 

견고한 얼굴

 

 

누가 밤새 강바닥을 두드리는가

조각조각 단단한 울음이 모여들더니

이른 아침 물의 골격이 완성되었다

겹겹 벼르고 벼른 물의 의지가

한순간 동결된 것이다

 

주르륵, 물을 켜고 싶은 구름이

땀을 닦으려던 바람이 미끄러졌다

 

이 돌연한 변화에 강은

제 몸이 잠시

굳은 생각에 든 것이라 헤아렸으나

어디에고 그것을 암시하는 경관은 없어 보였다

 

쩍쩍쩍, 엄마가 왔단다 문을 열렴

 

스스로 쥐어짠 고백이 저런 모습일까

햇빛 주렴 사이로 흐물흐물

차가운 물옷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내 손에 네 손이 겹쳐졌구나

꽃 놓을 자리 몸 눕힐 자리 가늠할 수 없어

이렇게 꽁꽁 찾아왔단다

 

세상에서 가장 딱딱한 현상을 지닌 눈물이

호시탐탐 문밖에 서 있는 것이었는데

영하의 표정으로 켜켜이 몰입하다가

마침내, 강의 지붕을 엮어내는

저 물의 양미간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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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일: 1957년 부산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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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 스토커의 활주로(외 2편)

-지루한 편집室 

 

  이하율

 

 

폐쇄되지 않는 저 공항은 오래전 새들이 장악한 지도에 없는 섬

 

왈라키아*행 마지막 이륙이

누군가 자꾸 되살아나고 있는 당신 등 뒤에서 사라졌다

결빙을 긁고 간 마찰은

애인의 부리가 처음 닿은 귓불처럼 타올랐다

 

파랗게 탄 구름의 입자 날것들의 교성이 반죽된 극한 음습한 해후,

 

회항하려는 새들이 기우뚱 몸 낮출 때

죽은 새 그림자로 날아가 말간 달을 그릴 뿐

미래의 우리가 지시할 붉은 등은 모르는

착륙 유도 신호는 늘 드라큘라 푸른 눈빛이다

 

못 박힌 전설을 파내 또 다른 문장으로 가둔

절필 100년 동물적 독창獨創 브람 스토커도

루시**의 파리한 목덜미에 감전되었을 터,

(그의 흡혈 저서는 끝없이 알을 슬고 부화한다)

 

후각을 연 채 비웃한 연대를 지나며 수십 번 발가벗겨진 루시,

 

시간을 엎지른 낡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낯선 손 하나 솟아 흐려진 눈빛을 재생하는

3D 컬러렌즈 착용한 특별한 편집

 

흡흡, 유도등 빛 선명한 결빙의 활주로는

널브러진 루시의 파편, 붉은 셔벗을 흡입하는 소리로 선연한다

 

지하로 기우는 자막의 깃털을 당겨

달빛에 젖히던 목 급히 가렸었나, 내 숨골을 더듬으며 죽은 심야영화,

원작으로 되감기는 꼬리들 패러디의 오류들이 충돌한다

 

신선한 루시의 체취를 천천히 핥는 활주로 위 나는

루시 알레르기 중증 소유자,

 

오늘, 지루한 루시의 분열을 살해하고

누군가의 차가운 등에 업혀 트와일라잇*** 으로 가고 있는

 

 

*루마니아 남부의 역사적인 지방명

**소설 드라큘라 속 인물

***땅거미가 내리는 시간 또는 희미하게 날이 밝아 올 무렵

 

 

 

아란다스피스*

 

 

기이한 손목이 무성한 수초의 허리를 부려

거품의 그물을 짜는 가시넝쿨로 덮인 저 습지는

우거진 신화 속으로 깊이

때론 눈을 감고 들어가야 한다

새끼 낳아 던지고 성호 긋는 여자 등 뒤로

파르르 뱀의 혀가 부르는 검은 찬가가 울려요

철새 부리로 조각한 물뼈 지도 펼쳐지고

밥을 낚던 목선이 표류하는

치장할수록 늙어가는 기적의 늪

예언의 천사들이 봉인된 시간을 풀자

엎드렸던 물고기들이 그물을 끊어요

오래 굽은 등이 톱날이었지요

숨 하나, 성수에 귀를 씻고 구부러진 뼈로 배 한 척 엮어요

비릿한 사육제 끝나는 날

순한 손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맥박 치는 곳으로

피의 강을 건너가려 해요 어느 누구도 이 도피가

퇴행적 진화라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할 거라면서요

푸른 달빛이 시원의 화석을 발견한 날

습곡에서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 속에서

향유 바른 그가 기역자로 꺾인 사지**

좌우로 흔들어 틀며 도틀도틀 내게 걸어와요

여덟 개의 손가락이 엇갈린 스텝을 이끌어요

이를테면, 아직 거대한 만년설이 다 사라질 때까지만이라도

직립으로의 진화를 계속 원하면서요

그런데 기억할까요 누군가가 깨울 아침

요람의 뱃장에 고인 억만 년 전 푸른 햇빛

  

 

* 지구상의 모든 포유류의 선조라 일컫는 최초의 물고기.

** 단편소설 「아칸소스테가」에서 인용.

 

 

 

 비대한 악장과 모라꼿 주의보

 

                                                        - 악기를 바치던 해 지난 신문 오늘의 날씨에 은둔하다

                                                                     꼬깃꼬깃 버려진 나는 그때 태풍의 눈이었다

 

 

   공명의 입자를 흡수하던 하늘과 이물질로 앓던 대지가 조율을 시작하자 열대폭풍 모라꼿이 열광하듯 피어나요 어느 나라에선 에메랄드 이름을 팔아 활을 사기도 하죠 느닷없이 난타의 악사들이 줄지어 구름 무대에 오르네요 땅의 객석이 외면하며 수런거리자 그들의 손가락이 눅눅한 경고에 척척 휘감겨요

 

   물갈퀴 사이로 죽죽 물결을 펴 널어요 바람 고무래가 지나간 자리, 물의 현을 퉁기며 뛰어노는 자유 핑거링, 태풍에 맞춘 거대한 키가 치명적 세기라고 우겨요 떼떼 흔들흔들 춤춰요 하늘은 물을 켜고 우린 모라꼿에서 이렇게 살아요 발목을 푹푹 심으며 지나던 진창에 모라꼿이 마구 피고 있다는 전갈도 뚝 끊기고 이제 심오한 씨앗 한 점 묻으며 딜라이 라마를 기다려요

 

   현을 켜요 향기로운 소나무숲을 달리다 촘촘한 단풍나무숲 끝에서 숨 멈추고 젖은 나무의 살을 저미듯 물바다를 켜요 바닷물이 달궈진 염전에 푸른빛으로 스며들듯 누구라도 가벼운 입술은 닫고 와 태양혈이라도 지긋이 눌러줘요 죽은 모라꼿, 악기의 목과 몸통들이 다 흩어져도 낮은 브리지에 걸린 현을 켜려는 건 이미 젖은 대지를 비오티의 활로 긁어내는 막연한 연주

 

   비대한 악장이 넘실넘실 넘보네요 대지에 음표를 그린 이들이 노래를 부르면 나는 낡은 악보 속으로 숨을 테지요 그러나 주의보를 외면하는 당신이 여전히 난타로 시작하는 아침이라면 모라꼿으로 활짝 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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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율: 충남 홍성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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