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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가을, 제27회《시안》신인상 당선작_ 서동균 / 유지인

by 솔 체 2015. 5. 24.

2011년 가을, 제27회《시안》신인상 당선작_ 서동균 / 유지인

 

 

                                                                                         심사위원_ 문정희, 오태환

                                                              * 제27회 시안신인상 당선작은 각각 5편씩 발표되었습니다.

 

 

옥탑방 빨랫줄 (외 2편)

 

   서동균

 

 

팔레스타인 분리장벽에 그려진 새가

비산먼지 덮인 재개발지구 하늘을 날고 있다

누군가 공사가림막에 둥지를 틀어 놨다

이역만리(異域萬里) 먼 곳이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외침을

다 가지고 오지는 못했을 거다

탕-탕-탕-, 디핑머신의 굉음이

노랗게 버석이는 연탄재를 밟고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밟고 사라진다

새총으로 저항하던 그들의 깃발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연탄재같이 부서진다

마당귀에서 삐꺽삐꺽 헛물만 켜는 녹슨 펌프

나카브사막의 끝을 바라보던 새는

밤의 냉기를 관절을 비틀 듯이 떨치고 일어나

철거를 거부하는 늙은 용접공의

옥탑방 빨랫줄에 앉아 하늘을 본다

무너진 집에서 삐져나온 뼈 같은 철근과

철문의 부서진 바퀴를 용접하던

토우치 불꽃 같은 초록빛 태양이

들국화가 간신히 뿌리 내린 골목을 비추고

용접공의 힘줄 같은 낡은 빨랫줄이

온몸으로 맑은 하늘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다

 

 

 

실종자

 

 

 

실종자 한 명이 접수됐다

발로 차이고 주먹으로 맞아 찌그러진 철제책상 위에

너덜너덜한 장부를 비추는 햇살의 프리즘

시간을 봉인한 벽을 추적하는

도굴꾼의 트라울*이

창살로 막힌 사무실을 은밀히 들어와

뿌옇게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있다

사망 사건이 아니므로 검시기록이 있을 리 없다

두꺼운 표지에 눌려 흐려지는 기억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

이름 옆에 쓰인 실종일자가

그들의 족적(足跡)을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조문 리본처럼 타이핑되는 이름들이

서류철의 무게를 늘리고 있다

수사중 접근금지!

철컥철컥 여닫는 캐비닛 서랍에 ‘시ㄹ조ㅇ’으로 철자가 악착같이 물렸다

트라울의 뾰족한 탐문이 황급히 뒷걸음질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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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울 : 고고학에서 땅을 긁어내는 호미 모양의 발굴 도구.

 

 

 

벙어리장갑

 

 

 

길바닥에 떨어진 벙어리장갑은 저체온증이다

행려병자의 시체처럼 이미 싸늘하다

쓱싹쓱싹

실밥에 매달린 톱니 같은 고드름이

긴 밤을 잘게 썰고 있다

배곯은 도둑고양이가 묶어 놓은 분리수거봉투를

발톱으로 할퀴고 지나갈 때

바람이 머물다 간 장갑 끝에 손가락이 돋아난다

툭툭 고요함을 터뜨리는 실밥을 꿰어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는 새벽서리

고양이가 지나간 자리에는

장갑을 낀 발자국이 답삭답삭 걸어간다

허공을 통과하는 파란 태양에

움켜쥔 햇살을 조심스레 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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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균 : 서울 출생. 성균관대 경영대학원 졸업. 한국금융연수원 재직.

             서울시 관악구 은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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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가벼운, 담론 (외 2편)

 

   유지인

 

 

 

깨지는 게 두려운 유리컵은 언제나 투명하다

보이지 않는 것에 더 궁금해지는 시선 속에서

가끔은 모호하게 더 투명해진다

어느 미술 평론가의 아직 ‘작품에 깊이가 없다’는 말

너무 깊게 들어버린 한 젊은 여류화가가 깊이를 앓는다

제 살이 깎여져도 아픈 줄 모르는 그믐달처럼

그녀가 베란다 난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내부를 보여주기 위해 점점 기울어가는 물병처럼

그녀가 한쪽으로 기울어가다 엎질러진다

“안녕! 엎질러진 물로는 이젠 아무것도 채색할 수 없어요”

데려온 아이처럼 무표정한 화폭 속의 사물은

그녀의 열정적인 내부를 더 이상 닮아가지 않는다

해석할 수 없는 상처의 코드처럼

‘깊이에의 강요’*는 암호처럼 그녀의 머릿속을 날아다녔다

예술의 내부도 밤과 낮처럼 명징했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짐승처럼 엎드려 자기 안의 어둠을 물어뜯었다

젊음의 신선한 감각과 연륜의 깊이가

때론 공존하지 않음을 설명할 수 없다는 건

정말로 예술의 아이러니였다

도다리의 눈처럼 한쪽으로만 쏠려버린

그녀의 눈 속에서 사물은 더 이상 옷을 갈아입지 않는다

평론가의 말에 함부로 마음을 내준 그녀가

깊이를 찾아 죽음의 허공을 건너뛴다

발 빠르게 달려온 평론가의 반전의 말이

바람에 쉽게 뒤집어지는 이파리처럼

조문객들의 입속에서 팔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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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제목.

 

 

 

젖은 빵 말리기

 

 

 

그가 내게 젖은 빵을 보여줬다

아직은 빵의 내부를 열어볼 때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는지 윗입술을 달싹이다 만다

한 번도 제대로 확 부풀어본 적 없는

찬물 속 누룩 같은 얼굴들에게

빵은 자잘한 인사말 정도는 건네야한다는 건지

툭 하면 짓물러진 귀퉁이로 짧게 인사한다

안녕! 그대의 빵은 안녕하신가?

구름의 빵틀을 벗어난 빵은

차마 돌아볼 수 없을 때에 잘 가란 인사도 없이 사라졌고

필요 없어질 때에 다시 오려는 건지

하루 종일 뒤가 가려운 때가 있다

그가 갔다 어디든 막일이라도 찾아봐야 한다고

 

한 바구니에 담겨져 덩달아 시큼해져가는

빵의 내부가 끊임없이 싸움을 걸어왔다는 걸

그의 의식이 관통한 너덜해진 운동화를 보다 눈치챈다

우린 이제 따뜻한 공기층이 집을 짓는

발효의 한 순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걸까

주사위처럼 던져진 물음의 시간들이 움직일 줄 모른다

 

안부 인사 묻지 않는 사람들이 낮게 등 구부리고 사는

고시촌에서도 젖은 빵은 내부를 잘 보여주지 않는다

“찢어 먹다만 책갈피가 빵이 되는 거 봤니?”

누가 아무데나 낙서해 놓았다

 

훔쳐지지 않는 생의 모든 것은 젖은 빵 속에 있다고

짓다만 미분양 아파트 위를 위태하게 건너던 빗줄기가

안 그래도 시큼해지는 빵의 내부를 충동질하고 있다

 

 

 

바람 미술관*

 

 

 

그림 한 점 걸려 있지 않다

미감이 사라진 혀와 입의 적막한 동거 같다

텅 빈 공간 앞에서 질문을 까먹은 사람처럼 멍하다

호흡의 난간에서 날리는 비명의 한 점 같은

눈동자의 초점을 그리다 말고 주저앉은 너는

풀어놓은 호흡을 찾으러 떠난 모래사막에서

모래알 섞인 밥알을 보내왔지

모래 속을 빠져나가는 물을 붙잡으려 했던 적 있다

그런 날의 숫자들은 달력에서 눈이 빨개진 채 매달려 있다

바람의 갈비뼈 속에서도 태어나는 것들이 있다고

스스로 만든 다리를 건너는 법을 알게 되었지

뒤돌아보지 않는 바람의 눈빛을 여기서 만난다

불쑥 튀어나올 것 같은 신선한 바람의 아이들이

예술의 눈초리에 매달린 속눈썹처럼 팔랑거릴 때

바람은 산통을 끝낸 산모처럼 여유로웠다

느낌의 실체를 만나러 왔다던 너는

문틈에 옷자락을 남겨두고 돌아갔다

바람의 방백을 듣고 간 게 분명하다고

한동안 연락하지 않는 너의 침묵이 배달되어 왔다

느낌으로 알 수 없는 것들은

다 실체의 옷을 벗은 추운 몸뚱이 같은 거라고

가 닿을 수 없는 바다 끝을 바라보다

주워든 낡은 소라껍질 속에서

바람의 생각은 점점 골똘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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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서귀포에 있는 이타미 준이 건축한 미술관 이름. 그곳엔 그림은 없고 대신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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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인 : 전북 정읍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시안》201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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