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에 ‘눈먼 자들의 시대’ / 박혜영
[시대를 읽는 문학] 한겨레 2010-02-05
지금 우리 문명의 가장 큰 부도덕성은 그 어느 시대보다도 타인의 고통에 대해 깊이 성찰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멀리 팔레스타인과 이라크, 쿠르드족 사람들의 고통은 물론이고 가까이 살고 있는 비정규직이나 도시 철거민들, 실직자들과 무엇보다도 땅을 뺏긴 농부들의 고통에 대해서도 아무런 성찰도 하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시대의 철거란 도시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행정중심복합도시니 특성화 명품도시니 하는 관료주의적 망상이 한 번씩 현안이 될 때마다 자손 대대로 땅에 뿌리박고 살던 농부들은 자기 땅에서 내쫓기게 된다. 관료나 전문가들은 얼마의 보상금이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마음의 철거는 그렇게 쉽게 아물 수 있는 고통이 아니다. 왜냐하면 땅을 빼앗긴다는 것은 곧 정든 이웃을 잃게 되는 것이며, 부대끼며 살아온 저간의 역사를 잃는 것이고, 결국은 자기 존재의 뿌리를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의 뿌리가 뽑히는 일인데 어찌 저항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부 발표로는 22조라지만 업계에서는 족히 40조는 될 거라는 4대강 개발사업으로 얼마나 많은 고통이 발생할지는 전혀 조사된 바 없다. 얼마나 많은 농지가 수용되고, 농부들이 땅을 떠나야 하는지, 이들이 일평생 공들인 가축과 작물과 흙과 물은 얼마나 망가지는지 개발주의자들은 아무도 그 고통에 대해 성찰하지 않는다. 맘몬(돈)을 섬기느라 상실의 고통조차 모르는 존재들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저들의 마음은 오래전에 녹슬고 부식되어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가 없다. 하지만 윌리엄 워즈워스와 같은 시인들은 농부에게 땅이란 단순한 생계수단이 아님을 알았다. 땅과 거기에 뿌리내린 모든 존재가 자기 자식만큼이나 절실하고 소중한 것임을 시인은 알았다. 농부에게 가장 큰 상실의 고통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시 <마지막 양>에는 한 마리로 시작해서 자식처럼 불려나갔던 50마리의 양을 결국 1795년에 닥친 기근과 정부의 잘못된 농업정책, 물가상승 등으로 한 마리씩 팔아야 했던 어느 늙은 농부의 고통이 담겨 있다. 늙은 농부는 엉터리 구빈법에도 호소해보지만 몇 마리 양이 있다는 이유로 지원을 거절당한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양을 한 마리씩 내다팔다가 마침내 마지막 남은 양을 껴안고 땅바닥에 주저앉은 농부는 상실의 고통을 눈물로 호소한다.
땅을 빼앗는 대신 어떤 보상을 한다 해도 충분하지 않다. 살아온 역사를 잃고 존재의 뿌리가 뽑히는데 어찌 저항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4대강 개발 사업으로 가장 크게 훼손되는 것은 우리 시대의 민주주의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도덕적 성찰을 멈추는 순간 민주주의도 위태롭게 된다.
제가 얼마나 자주 바랐는지 모릅니다,/ 차라리 모두 한꺼번에 없어져버리길./ 하지만 양들은 한 마리씩 한 마리씩 줄어들었죠./ 제겐 괴로운 날들이었습니다./ 나쁜 행동을 할까 싶기도 했고,/ 사악한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저와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은/ 제 얼굴에서 고통을 보았을 겁니다./ 평화도, 위안도 제겐 없었고,/ 안에서나 밖에서나 편치 않았습니다./ 낙담하여 미칠 것 같은 마음으로/ 일터로 나다녔습니다. (<마지막 양> 일부)
결국 농부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 아무리 기도를 드려도 양의 수가 줄어드는 만큼 자기 자식에 대한 애정마저도 녹아 없어지게 되었다고 토로한다.
4대강 개발사업으로 농지를 몰수당하게 된 팔당유기농단지의 농부들은 말한다. “4대강 싸움은 이 시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바람직한 삶은 무엇일까, 더불어 건강하게, 후손들에게 건강한 자연을 물려주는 것은 어떤 것인가”의 문제이기에 “함께 농사지어온 땅속 수억만 마리 미생물과 팔당의 오리, 철새, 갈대숲, 이 생명의 일꾼들을 지키기 위해서 끝까지 버티려 합니다. 이곳이 자전거길이나 공원, 휴양시설로 바뀌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고.
안미선 작가가 쓴 ‘아리랑 강물소리에 손대지 말라’(<녹색평론>)를 보면 작가는 3개의 댐과 6개의 보, 19개의 저수지가 들어서 4대강 개발로 가장 크게 훼손될 낙동강 유역도 방문하는데 거기서 만난 성난 농부들의 고통은 “농부를 뒈지라고 하는 국가는 깡패국가다”라고 말할 정도로 처절했다. 마음의 뿌리를 내린 곳은 누구에게나 절실하고 소중하기 마련인데도 우리 정부는 보상금 얼마에 자식 같은 땅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농부들은 정확하게 알고 있다. 댐이라는 것이 ‘물 부족이다, 홍수 조절이다’라며 건설한다고 선전하지만 결국은 개발업자들이 “댐을 해야 한다는 목적은 귀에 갖다 붙였다 코에 갖다 붙였다 하면서 자기들 돈을 벌려는 목적뿐”임을. 작가가 만난 농부들은 4대강 개발사업의 본질이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의 문제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에 4대강에 슬쩍 끼워 넣은 영주댐을 두고 “공사를 왜 할라 하는가면 이득을 보는 단체가 생기잖아요. 이거는 농부는 뒤지라는 이야기랑 똑같애요. 국책이다, 꼼짝 마라, 민주주의가 이러면 안 되잖니껴. 그냥 죽니 싸우다 죽어야지”라는 농부들의 분노에서 4대강 개발사업으로 가장 크게 훼손되는 것은 결국 우리 시대의 민주주의임을 알 수 있다. 맘몬을 좇느라 타인의 고통에 대한 도덕적 성찰을 멈추는 순간 민주주의도 위태롭게 되는 것이다.
자식 같은 땅을 판 뒤 밀어버린 청보리밭을 보고 눈물부터 흘리는 할머니들이 사라져도, 4대강 사업으로 사라지게 될 내성천 생각에 목이 잠기는 농부들이 사라져도 민주주의가 가능할 것인가. 현대 영국 작가인 D. H. 로런스는 일용할 양식에도 감사의 기도를 올리던 옛사람들과 달리 현대인들은 오직 맘몬을 더 잘 섬기려 기도문을 외울 뿐이라고 비판했다. “전능하신 맘몬이시여, 저를 부자로 만들어주소서!/ 어서 빨리 만들어주시고, 크게 번창하는 데 아무런 제동도 걸지 마소서!/ 저를 방해하는 자가 있거든 시궁창에나 처박아 버리소서/ 맘몬, 이 위대한 개자식아!”(<현대의 기도문> 일부)
박혜영 / 인하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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