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의 시「내일, 내일」에 대한 감상_ 김연수/강인한
내일, 내일
유희경
둘이서 마주 앉아, 잘못 배달된 도시락처럼 말없이, 서로의 눈썹을 향하여 손가락을, 이마를, 흐트러져 뚜렷해지지 않는 그림자를, 나란히 놓아둔 채 흐르는
우리는 빗방울만큼 떨어져 있다 오른뺨에 왼손을 대고 싶어져 마음은 무럭무럭 자라난다 둘이 앉아 있는 사정이 창문에 어려 있다 떠올라 가라앉는, 생전(生前)의 감정 이런 일은 헐거운 장갑 같아서 나는 사랑하고 당신은 말이 없다
더 갈 수 없는 오늘을 편하게 생각해 본 적 없다 손끝으로 당신을 둘러싼 것들만 더듬는다 말을 하기 직전의 입술은 다룰 줄 모르는 악기 같은 것 마주 앉은 당신에게 풀려나간, 돌아오지 않는 고요를 쥐여 주고 싶어서
불가능한 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당신이 뒤를 돌아볼 때까지 그 뒤를 뒤에서 볼 때까지
-----------------------------------------------------------------------------------------------------
두 사람은 이제 헤어지기 직전인가 봐요. 내일이란 없는 사람들처럼 말없이 앉아 있네요. 하긴 사랑하면서 내일 어쩌구저쩌구 말하는 사람이 제일 꼴불견이긴 해요. 내일, 내일 그렇게 말하면 꼭 자기 일 얘기하는 것 같죠.
그건 그렇고, 몇 개의 도시락들이 떠오르네요. 북한산에서, 창경궁에서, 도시의 공원에서 둘이 마주 앉아 먹었던 한 낮의 도시락들. 눌린 김밥에서 삐져나온 시금치 같은 것들을 보면서 먹었던 도시락들. 그 맛이 아직도 잊히지 않네요. 아마 배가 고플 때 바로 먹었기 때문에 그렇겠지요.
--김연수 (소설가)
-----------------------------------------------------------------------------------------------------
첫 연의 잘못 배달된 도시락처럼 둘이서 마주 앉은 그림자, 이건 상당히 구미를 당기게 하는 수사입니다. 아직도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으며, 당신은 내게 아무 말이 없는 상태입니다.
둘째 연에 보이는 건 심리적 파탄. 두 사람의 거리감을 표현하기 위한 ‘떨어져 있다’라는 진술에서 시인은 문득 거리감을 벗어나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끌어왔군요. 마음이 무럭무럭 자란다는 발상은 사줄 만하지만 그 앞의 ‘오른뺨에 왼손을 대고 싶어져’와의 연결은 황당하게 보이는데, 차라리 상대방의 ‘오른뺨에 (나의) 왼손을 대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난다고 했더라면.
셋째 연에서는 무의미한 첫 문장을 지나 두 번째 문장에 주목합니다. 이 시에서 주제를 띄워내는 가장 극명한 조명을 보이기 때문이지요. ‘손끝으로 당신을 둘러싼 것들만 더듬는다’는 서정적 자아의 상징적 행동이 이 시 전체를 지배합니다. 그리고 ‘말을 하기 직전의 입술은 다룰 줄 모르는 악기 같은 것 마주 앉은 당신에게 풀려나간, 돌아오지 않는 고요를 쥐여 주고 싶어서’ 당신의 주변만을 더듬는다는 것. 네 개의 연 중에서 셋째 연이 가장 시적인 대목입니다.
넷째 연은 마무리를 위해 공연히 꼬부려 놓은 현학적 수사에 지나지 않고.
이 시인은 뭔가 그럴 듯한 포즈를 보이기 위해 허세나 현학적인 과장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흠결로 보입니다. 부분적으로 몇 군데 괜찮은 비유적 이미지의 구사에 대해선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전체를 장악하는 시인의 자세입니다.
* 사족… 그런데 요즘 젊은 시인들은 왜 이런 산문 형태의 시를 좋아할까요? 어쩌면 자유시 형태를 쓰게 되면 곧바로 자신의 약점이 쉽게 드러나는 것을 저어해서, 그래서 은근슬쩍 산문의 그늘로 몸을 숨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 강인한
'문학 참고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일상의 비극 사이에도 생의 따뜻함은 머문다 (0) | 2015.06.03 |
|---|---|
| 그래,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0) | 2015.06.02 |
| 이수명의 시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감상 / 김연수 (0) | 2015.05.31 |
| 류근의 「첫사랑」 감상 / 김연수 (0) | 2015.05.30 |
| 타인의 고통에 ‘눈먼 자들의 시대’ / 박혜영 (0) | 2015.05.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