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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김언의 「어느 괴롭고 화창한 날」평설 / 김미정

by 솔 체 2015. 9. 8.

김언의 「어느 괴롭고 화창한 날」평설 / 김미정

 

어느 괴롭고 화창한 날

 

  김 언

 

 

축구장에는 사람이 두 명

인조잔디가 세 개

빈 병이 하나

 

그런 비율로

식은땀이 흘러가는 오후

 

바다로

사라진 물건은 하나

오래 생각하는 머리가 둘

 

발목은 많아서

운동장을 가득 채운 먼지가

 

접전을 벌인다

 

하나냐 둘이냐

안 보이는 축구공으로

 

 

                        —《시와 세계》 2010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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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 / 1973년 부산 출생. 1998년 《시와 사상》에 「해바라기」 외 6편을 발표하며 등단. 시집『숨쉬는 무덤』『거인』『소설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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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각자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하는가

   여기서 “축구장”은 삶의 공간이며 삶 그 자체이다

 

 

   뜨거운 함성은 멈추고 열기는 사라졌다. 축구로 시작해서 축구로 끝난 한 달이 지나고 우리는 다시 운동장에 서 있다.

시인이 그리는 축구장의 풍경은 그리 활기 있어 보이지 않는다. 공허하고 쓸쓸한 바람이 정면으로 통과한다. 그 안에 “사람이 두 명/ 인조잔디가 세 개/빈 병이 하나”가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 우리는 각자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하는가.

   여기서 “축구장”은 삶의 공간이며 삶 그 자체이다. 시인은 “진정한 소통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그 소통의 깊이를 유추하는 배경으로 축구장을 그리지만 “식은땀이 흘러가는 오후”를 맞이할 뿐이다. 소중한 것들은 “바다로 /사라”져 간다. 하지만 우리는 운동장을 벗어날 수 없다. 먼지가 반복되면 그것이 먼지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운동장을 가득 채운 먼지“가 우리의 발도 지운 채 ”접전을 벌인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축구공을 보낸다. 하지만 끝내 축구공도 소통을 담보하지 못한다. “안 보이는 축구공”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운동장 가득 아픈 발목들의 빠른 발놀림이 현란하다. “어느 괴롭고 화창한 날”들이 달력에 늘어서 있는 여름의 한 가운데이다.

 

   김미정〈시인, 문학평론가〉

 

       출처 :【웹진 시인광장 】201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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