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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서수찬의 「이사」감상 / 손택수

by 솔 체 2015. 9. 5.

서수찬의 「이사」감상 / 손택수

 

이사

 

  서수찬

 

 

전에 살던 사람이 버리고 간

헌 장판을 들추어내자

만 원 한 장이 나왔다

어떤 엉덩이들이 깔고 앉았을 돈인지는 모르지만

아내에겐 잠깐 동안

위안이 되었다

조그만 위안으로 생소한

집 전체가 살 만한 집이 되었다

우리 가족도 웬만큼 살다가

다음 가족을 위해

조그만 위안거리를 남겨 두는 일이

숟가락 하나라도 빠트리는 것 없이

잘 싸는 것보다

중요한 일인 걸 알았다

 

아내는

목련나무에 긁힌

장롱에서 목련꽃향이 난다고 할 때처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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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판 아래 숨겨놓은 비상금을 깜박 잊은 채 이사를 간 가계가 있었나 보다. 그들의 망각이 새로 들어온 가계의 심란한 주름살을 활짝 펴주는 힘이 되어주고 있다. 만 원 한 장의 이 소박한 횡재가 아름다운 것은 다음 가족을 위한 위안거리를 준비하는 부부의 따뜻한 마음 때문일 게다.

   시인은 무언가를 다 소유하지 않고 머물 줄 아는 마음을 얻게 된 것이야말로 가장 큰 횡재라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목련에 긁힌 상처투성이 가구에서 목련 향이 난다고 하는 아내처럼 우리의 가난과 상처에도 향기가 밸 수 있다면 좋겠다.

 

손택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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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수찬

 

 

관이 닫힙니다

스르르 마지막 어머니의 얼굴이 가려집니다

관 틈으로 동그랗게 감기지 않은 어머니의 눈이

닫히는 관 뚜껑을 필사적으로 막아섭니다

틈이 어머니의 눈이 됩니다

어머니의 눈을 감기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우글우글 틈으로 들어옵니다

갯지렁이들이 오체투지로 막아섭니다

게들이 어머니의 눈에 농성 천막을 칩니다

갯벌이 무상무욕의 자신의 속마음 바닥까지

아낌없이 보여줍니다

꼬막들이 어머니의 생전 모습을 찰지게 기억합니다

어머니는 마지막 그들의 힘으로

마지막 눈을 감을 수가 없나 봅니다

아직 남은 관 틈으로 그들이 가장 편안하게 느낄

양수를 어머니는 감지 못한 눈으로다가 끌어서 그들에게

이불처럼 덮어줍니다

덤프트럭이 어머니의 못 감은 눈에다가 줄줄이

돌덩어리를 박아 넣습니다

어머니의 눈에서 더 많은 양수가 흘러나옵니다.

 

 

지하 셋방 앞 목련나무 / 서수찬

 

 

문을 열고 나오다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목련꽃이 너무나 깊게

나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날 이삿짐을 나르다가

장롱이 안 들어가서

목련나무 몇 가지를 자른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때 일 때문인가 하고

생각하다가

금방 내 옹졸한 속을 알아차립니다

벌써 목련나무는 그 잘렸던 상처를

꽃으로 삼켜 버린 지 오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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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찬 / 1963년 광주 광산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89년 《노동해방문학》에 `접착을 하며'와 `복개공사', `안전장치'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 2007년 시집 『시금치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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