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고 낯선 의미의 영역, 「늪의 입구」/ 홍일표
늪의 입구
연왕모
그림자들이 늪지를 다녀갔다
무언가를 버리고 사라져버렸다
그들이 버린 것이
내 곁에 있다
가슴이 이상해요
구멍 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질 않아요
아무리 깊게 숨을 쉬어도 채워지질 않아요
내 가슴을 좀 채워주세요
흙이라도 한 삽 퍼 넣어주세요
그림자들이 돌아간 거리에선
마른 가로수들이 뽑혀나갔다
가로수로 오인된 사람들도 뽑혀버렸다
그들은 트럭에 실려 나무처럼 빳빳하게 굳어져갔다
스스로 멎어 있음은 혼돈을 부르는 것이 아닌가,
나무들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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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존재론적 질서로부터 독립된 자치 지구에 새로운 시인들이 입주하였다. 그들의 작품을 과거의 방식대로 읽어나갈 때 바로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최근에 등단한 몇몇 시인들을 봐도 이미 그들의 언어는 30년 전 언어가 아니다.
자장면 세대와 피자 세대가 다르듯 그들의 언어는 신종의 언어이다. 텍스트의 의미론적 완결성을 추구하던 지난 시기의 방식으로 접근할 때 소통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전혀 다른 새로운 독법이 필요하다. 의미 자체를 거부하고 이미지로만 다가오는 시도 있고, 랩처럼 발랄한 운율에 초점을 맞춘 시, 또는 분위기와 느낌으로만 다가오는 시도 있다. 심미적 주체로서 각자의 개성을 형성하고 모색하는 그들의 시를 옳고 그름의 규격화된 잣대로만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연왕모의 시는 신세대의 시들과는 다르지만 고정된 언어의 틀을 깨고 새롭고 낯선 의미의 영역를 찾아 나선다는 점에서 친연적 관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늪의 입구’는 비교적 수월하게 독해 가능한 시다. ‘그림자’는 근본의 실체와 분리된 부정적 상징물로서 정체성을 훼손하고 파괴하는 대상이다. ‘그림자’는 시적 자아의 삶의 기반을 한 순간 ‘늪’으로 만들어버리고, ‘늪’에서의 일상은 ‘구멍 난 풍선’이며 채워지지 않는 욕망으로 불안과 갈등의 연속이다.
4연에서 비극적 상황은 심화된다. ‘마른 가로수들’이 뽑혀나가고 ‘가로수로 오인된 사람들’조차 존재의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죽은 나무들은 뻣뻣하게 굳어가고 회생의 가능성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화자는 새로운 돌파구를 내적 고통의 극점에서 발견한다. ‘스스로 멎어 있음은 혼돈’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이 시의 눈이 바로 여기에 있다. 상식적 차원으로 퇴행하여 감상과 체념의 나락으로 빠지지 않고 존재의 혁신을 기도하여 신생의 활로를 찾아나서는 것이다. 삶은 변화하고 끝없이 살아 움직이는 것인데 ‘멎음’은 곧 ‘혼돈’이요 죽음이기 때문이다. ‘나무들이 흔들렸다’
마지막 행은 사물의 자발적 의지에 따라 욕동하는 삶의 풍경이다. 그 ‘흔들림’은 ‘그림자’와의 대립이고 ‘늪’으로부터의 일탈이다. 살아있는 한 흔들리는 것이고 그 흔들림은 삶의 풍경을 완성하는 중요한 동력인 것이다. 앞으로 연왕모 시인이 인식의 고투를 통해 시의 외연을 확장하고 새롭게 열어 보일 낯선 삶의 지점이 어디일지 궁금하다.
그곳은 지금까지 익숙하게 보아왔던 곳은 아닐 것이고, 그 세계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새로운 독법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설사 낯설고 좀 불편하더라도 고루한 일상의 질서를 전복하는 무서운 뇌관이었으면 좋겠다. 바로 그곳에 최초의 시가 자리하기 때문이다.
홍일표
(문화저널21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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