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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이미산 「윌리엄의 철의 시대」평설 / 조정인

by 솔 체 2017. 3. 28.

이미산 「윌리엄의 철의 시대」평설 / 조정인

 

 

윌리엄의 철의 시대

 

 

                                                                                                               -피 묻은 방수복을 입은 세 번째 남자는 닭의 머리를

                                                                                                                잡고 목을 당겨 그의 손의 일부처럼 보이는 작은 칼

                                                                                                                로 싹둑 자른 다음, 그 머리를 다른 닭들의 머리로

                                                                                                                가득 차 있는 통에 던졌다.

                                                                                                                                              _『철의시대』J.M.쿳시.54쪽

 

 

 

   윌리엄은 세계적인 닭 공장에서 일한다네 노란 방수복에 노란 장화 신고 쓰윽- 쓰윽- 온종일 닭 모가지 자른다네 컨베이어에 매달려오는 닭들의 비명으로 그의 하루는 리드미컬하다네

 

   아내 플로렌스의 소망은 방 두 칸짜리 집

   아들 호프의 소망은 최신식 오토바이

   딸 뷰티의 소망은 붉은색 야광 샌들

 

   움켜쥔 칼, 손가락에 전해지는 칼의 컨디션, 그러나 부질없는 걱정, 마술의 손은 칼날을 보여주지 않는다네 닭들의 비명 가볍게 말아 올려 둥근 손등으로 세례를 행한다네 버둥거리는 목에 쓰윽- 쓰윽- 성스러운 축복을 내린다네

 

   윌리엄은 세계적인 닭 공장에서 일한다네 일주일에 엿새, 하루에 여덟 시간, 꼬꼬댁 소리만 나도 손가락이 칼날처럼 곤두선다네 신의 보혈 같은 생피가 노란 방수복에 노란 장화에 온종일 주룩주룩 쏟아진다네 피와 비명이 사뿐사뿐 어우러진다네 춤추는 액션에 종일 축복이 흐른다네

 

   아내 플로렌스의 소망은 방 두 칸짜리 집

   아들 호프의 소망은 최신식 오토바이

   딸 뷰티의 소망은 붉은색 야광 샌들

 

   세례는 쉴 틈이 없다네 피를 쏟아내고 생각을 던져버린 닭들은 놀랍도록 조용하다네

 

                                                                                           —이미산 시집,『아홉시 뉴스가 있는 풍경』(현대시시인선)

 

물신이라는 우상 / 조정인

 

 

  인간만이 영혼을 지녔으며 동물은 혼이 없는 기계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은 17세기 데카르트에 기인한다고 한다. 전적으로 인간에게 유리한 이 결론은 인간이 동물을 도륙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당위성을 제공한다. 시인은 인간의 이기로 해서 무수히 도륙되는 축생에게 한 편의 축혼가(畜魂歌)를 바친다.

  이 시는 200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야만인을 기다리며』의 작가 <존 쿳시-남아프리카공화국 출생>의 『철의 시대』(들녘)를 원텍스트로 하여 효과적으로 재창작된 시로써 시인은 시의 동인이 원텍스트의 다음 구절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피 묻은 방수복을 입은 세 번째 남자는 닭의 머리를 잡고 목을 당겨 그의 손의 일부처럼 보이는 작은 칼로 싹둑 자른 다음, 그 머리를 다른 닭들의 머리로 가득 차 있는 통에 던졌다.

                                                                                                                                              _『철의시대』J.M.쿳시 54쪽.

 

   (참고로 <윌리엄>이란, 원작 속에서 흑인 가정부 플로렌스의 남편이며 통상 작업장에서 불리는 이름이다. 다시 말하여 시인은 주변인물의 ‘철의 시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피카소는 그의 <게르니카>를 말하면서 “가슴 속에 하프만 가지면 시인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예술가는 하나의 정치적 인물이다. 비극이 터지던 그 순간부터―1937년 4월 26일 나치가 스페인의 게르니카를 폭격한―나는 게르니카를 그렸다."라고 했다. 여기서 정치적 인물이란 참여자, 발언자를 의미할 것이다. 이미산의「윌리엄의 철의 시대」는 ‘세계적인 닭 공장’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의 적나라한 현장을 통해 자본주의 광포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의 발언 속 현장묘사는 싱싱하여 독자의 시선을 붙든다. 짐작컨대 철기시대로부터 기인하는 도시산업화  이후, 지구 전 지역으로 암처럼 번져나간 산업화의 배후에는 현대인이 맹신하는 빅브라더―자본주의가 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밤과 낮의 구분도 없이 가동되는 기계, 컨베이어에 딸려오는 닭들의 비명은 더 이상 죽음이라는 공포 앞에 놓인 단말마의 그것이 아니다. ‘아내 플로렌스의 소망은 방 두 칸짜리 집/아들 호프의 소망은 최신식 오토바이/ 딸 뷰티의 소망은 붉은색 야광 샌들’을 재생산해 내는 기계음에 불과한 것이다. ‘피와 비명이 사뿐사뿐 어우러지는 춤추는 액션’일 뿐이다.

   인간은 어쩌다 저희 가운데 물신이라는 우상을 들여 지구상의 그 많은 천진한 생명들과 함께 자멸을 자초하는 것일까? 구제역이 축산농가를 강타한 작금이다. 재앙이다. 이 역시 대량생산을 기치로 내세운 산업화가 원인이다. 인간이라는 초상에서 신도 손 쓸 수 없는 원죄의 짙은 그림자를 목도하는 우울한 날들이다.

   떼이야르 드 샤르뎅의 "신 안에서 가장 신적인 것이 신 바깥에서는 無다."라는 말을 떠올린다. 자판을 두드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닭공장의 컨베이어는 팽팽하게 돌아간다. 소비가 미덕인 자본주의의 대량공급을 위해. ‘신의 보혈 같은 생피’를 흘리며 무자비하게 도륙 당하는 지구상의 그 많은 축생 역시 아담(인간의 조상으로서가 아닌 種의 개념)이 빚어진 것과 동일한 메커니즘인 흙의 양식을 취해서 왔다. 흙은 신의 자질이며 바탕이고, 흙의 시대로부터 당도해 있는 그 많은 천진한 생명들은 곧 신적 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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