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인의 「문신」감상 / 이진명
문신
조정인 (1954~ )
고양이와 할머니가 살았다
고양이를 먼저 보내고 할머니는 5년을
더 살았다
나무식탁 다리 하나에
고양이는 셀 수 없는 발톱자국을 두고 갔다
발톱이 그린 무늬의 중심부는 거칠게 패였다
말해질 수 없는 비문으로
할머니는 그 자리를 오래, 쓰다듬고 또 쓰다듬고는 했다
하느님은 묵묵히 할머니의 남은 5년을 위해
그곳에 당신의 형상을 새겼던 거다
고독의 다른 이름은 하느님이기에
고양이를 보내고 할머니는 하느님과 살았던 거다
독거, 아니었다
식탁은 제 몸에 새겨진 문신을
늘 고마워했다
식탁은 침묵의 다른 이름이었다
—《시와사상》2009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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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구 식탁 하나. 등장인물은 할머니 하나. 사건 한 점 없는 무언극 5년 동안 한결같이 무대에 올려진다. 인물의 동작은 언제나 똑같은 한 가지. 먼저 간 고양이가 식탁 다리에 셀 수 없이 남긴 발톱 자국의 거칠게 파인 중심부를 쓰다듬고 쓰다듬는 것. 식탁 다리에 남겨진 문신 하느님 되어, 독거할머니 하느님과 더불어 큰 고독과 침묵에 싸여서 고마운 동거생활을 했다는 보고.
하지만 독거할머니 반려 고양이도 없이 외롭게 살다 갔다는 얘기지 뭐. 할머니 가고, 5년 동안의 식탁 하나, 정말 말해질 수 없는 비문(碑文) 무대에 홀로 남았네.
이진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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