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어제는 비
신 인 문 학 상

제24회 《현대시학》신인작품공모 당선작 ㅡ 장요원. 이범근

by 솔 체 2017. 10. 5.

제24회 《현대시학》신인작품공모 당선작 ㅡ 장요원. 이범근

 

 

저수지 (외 4편)

             

  장요원

 

 

 그녀의 커다란 눈을 멀리서 들여다 본다  

 고요가 출렁임을 꾹 누르고 있다 가라앉히지도 엎지르지도 못한 마음들이 水皮처럼 일어, 고여 있는 듯 같은 자리를 부유한다

 

 흐르지 못하고 고여 있는 종족은 품는 습성이 있다지

 이미 떠나버린 철새들의 발가락이 꿈틀거린다  지난밤 달이 부려놓은 시름을 토닥거린다

 

 어쩌면 그녀의 온몸은 태胎인지도 모른다

 

 소나기가 발끝을 세우고 빙글빙글 돌자 어지러운 듯 울컥거린다 

 꼬리 긴 바람이 마법을 걸어 파동을 일으킨다

 

 수만 번 제 숨을 조였다가 푸는

 물의 태동,

 

 오랜 시간 자신의 씨앗을 품지 못한 그녀의 태동은

 이 계절을 분만하고 나서도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서쪽 하늘에 걸린 생리혈이 그녀의 눈망울로 번지고 있다

 

 

 

 


 

 바람의 손끝에 춤이 묶여 있다

  

 몸을 벗어버리자

 바람들이 옷으로 들어온다

 옷이 한번도 해보지 못한 동작을 한다

 그림자들이 바닥에서 춤을 춘다

    

 바람이 손끝으로 줄을 밀고당기는 동안

 빨래집게가 햇볕을 꽉 물고 있다


 날아가지도 못하는 공중에 관절들이 가득 들어있다

   

 셔츠를 입은 바람이 줄에서 빠져나가려고 한다

 안간힘을 쓰며 놓지 않는 햇볕의 어금니,놓아달라는 듯 늘어진 팔이 줄을 후린다

 미니스커트 속으로 바람이 든다

 점점 팽팽해지는 바람의 근육,

   

 수백 마장 바람의 층에 동작들이 접혀 있고

 한 호흡 한 호흡, 넘어갈 때마다 물기들이 퇴장한다

 눅눅한 관절이 경쾌해진다

   

 바닥에 매달린 춤이 다 마를 때까지

 다행히 오후는 햇볕을 끄지 않았고

 공중은 매여 있어

 몸을 비워낸 춤들이 반듯하게 개켜지는 저녁,

   

 빨래집게들만 캄캄하게 남아 밤새 어둠을 말릴 것이다

 

 

 

풀리고 있는 오전

  

     

 검은 실뭉치가 마당 한쪽에서 풀리고 있다

 조용히 접혀 있는 작은 새의 비행 궤적을

 개미 떼가 풀어내고 있다

 오전을 다 왕복해도 사라지지 않는 어둠,

  

 새의 몸에서 냄새가 길게 풀어진다

 오그라든 발에서 실밥이 풀어진다

 움켜쥐었던 허공은 다 어디로 날아가고 없다

 새는 허공에서 풀어지는 평생을 가졌을지도 모르는 일

 궤적의 길이,그 마지막 끝에 내려앉았는지도 모르는 일

  

 몸을 부풀린 바람이 다녀간다

 바람의 혀에

 팽팽해지는 검은 실뭉치

  

 허공엔 하현달이 날아간다

  

 여전히 파닥거리는 깃털이나 마지막으로 버렸을 비틀거림은 지상에서 배운 것

 몇 개의 깃털은 아직 바람에 매여 있고

 몸은 공기라는 관棺에 들어있다

  

 먼저 떨어진 나무 그늘 위로 붉은 이파리 하나가 떨어진다

  

 잎들이 날아간 빈 가지 아래

 개미 떼가 다 풀어간 실패 같은

 뼈들만 얽혀 있다

  

 새의 몸에서 검은 실이 길게 풀려나오고 있다

 아니, 오전의 햇볕 한 줄기가

 처마 밑 어둠 속으로 오래 감겨 들어간다



 

말뚝

 

초록이 접힌 들판에

겹겹이 바람을 껴입은 느낌표 하나 서 있다  

어스름이 내릴 때까지  

제 그림자를 묶어두고 있다

몸집 큰 바람이 그림자를 넘어뜨릴 때도 있지만

그림자는 한번도 줄을 놓지 않았다

어린 그늘에 

스스로 묶였던 기억을 떠올리곤 했을 것이다  

수만 겹의 바람이 묶였다 가는 곳,

말뚝은 처음 묶였던 목덜미를 기억한다

가끔 바람을 타고 온 굽소리를 되뇌이며

느릿한 되새김질을 한다

그때마다 머리에선

구부러진 각질 덩어리가 자라곤 한다

애기덩굴 한 줄기가

더딘 걸음으로 뒤늦게 노을을 감는다  

허리 굽은 저녁을 끌고

누군가 말뚝을 쑥 뽑아 풀숲으로 던진다

흩어졌던 풀벌레들이 누운 말뚝 근처로 모여든다

풀숲이 와글와글 소란스럽다

속이 다 타버린 것을 어둠이 뒤꿈치로 비벼 끈다

한 개피의 저녁이 꺼져가는 풀숲,  

말뚝이 사라진 들판엔

캄캄한 씨앗들이 뿌려질 것이다

나무들이 일제히 바람의 고삐를 풀어주고 있다



 

 나무의 귀

 

 

 가지마다 붙어 있던 소리들을

 나선의 밑동으로 밀어넣고

 새들이 푸른 귀를 찾아 날아갔다

 

 펄럭이던 그늘보자기가

 떨어진 나무의 소리를 다 싸서 가고

 가끔 햇볕의 뼈대만 흔들리고 있다

 어디선가 날아온 비닐이 머플러처럼 나뭇가지를 감고,

 아직 남은 몇 장의 귀가

 은색의 소란을 듣고 있다

 

 이파리들의 소임은 나무의 귀,

 햇볕의 등에 그늘을 붙였다 떼는 일

 바람의 행선을 알리는 일

 엽록의 달팽이관에 새들의 졸음을 재워주기도 한다

 

 은밀한 파동이 들어있는

 몇 칸의 서랍이 만들어지고 있을 오동나무

 햇빛 두어 채 개켜두거나 혹은,

 새들의 사서함이거나 노숙하는 구름이 묵어 갈 서랍들

 따뜻하라고,

 은색의 비닐머플러가 감겨져 있다


 늙은 오동나무는 늙은 바람의 목덜미이다

 무거운 귀를 툭툭 흘리고

 맨몸으로 서 있는 몇 칸 서랍이지만

 봄이 오면

 푸른 귀들이 빼곡, 차오를 것이다

 

* 장요원

 전남 순천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원 수료

 2011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雪山의 원근법 (외 4편)

 

이범근

 

 

탕,

짐승의 목둘레로 힘줄이 일어선다

온몸을 떠돌던 뜨거운 피가 한쪽으로 바싹 쏠린다

산비탈을 딛고 있던 발톱이

언 땅에 더 깊이 박힌다

물러서려는 것도,

나아가려는 것도 아니다

바람은 노란 동공 속으로 먼저 빨려 들어가고

팽팽한 직선에 닿은 싸락눈들이

화약처럼 타들어간다

탄환은 바람이 지나간 길 위에서

뒤로 흐르는 풍경을 비튼다

한 점을 향해 구부정해지는

눈 덮인 능선과 새들의 행로

짐승은 움켜진 땅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소용돌이치는 풍경이

제 단단한 근육을 뚫을 때까지

뜨거운 소실점이 핏물에 떠 있을 때까지

거기서 새들은 찬 날개를 녹일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유일한

 

 

오늘은 노는 날이에요, 어머니

리모컨을 쥐고 있으면

죽은 친구의 손을 잡고 있는 것마냥

자꾸 헛웃음이 납니다

도전 1,000곡을 다 보고 나면

천국에 도전할 마음도 사라지고

TV 속 여자들은 입냄새가 심하죠

코를 막으면 귀로 흘러 들어옵니다

벽 속의 거미알들이 두리번거리며 깨어나

어미를 뜯어먹는 소리 들려요

오랫동안 입맛이 없습니다

또 보내주신 반찬들

오징어볶음 장조림 김

손만 댔다 하면 항상 상해버려 나는

나를 잘 안 만져요

LOCK&LOCK에 담겨 오래 상하지 않는 허기로

늦은 밤에 밥상을 차리기도 하지만

하얀 접시들과 수저는 침묵합니다, 어째서

저보다 말이 없어요

추억에 잠겨 천장을 올려다보는 건

누워 있을 때만 온순한 애인들의 버릇

어머닌 애인 있어요?

헛웃음이 나와도 놓을 수 없는 리모컨을 쥐고

너, 이 손, 놓으면 끝이다

죽은 친구와 애인의 목소리 헷갈리는 날

어미를 다 뜯어먹고

발톱에 맑은 땀 맺힌 거미들

벽지가 눅눅해져 가는 오후 내내

아무도 모르는 유일한

당신 생각을 해요

 

 

환절기

 

혜는 나를 사랑한다

매일 밤 구운 꽁치에 독한 술을 마시자 하고

내 옆에 누워 기린처럼 잠든다

젖은 수건이 마르고 있는 아랫목 쪽으로 목을

길게 늘어뜨린 채

밤새도록 입을 쩝쩝거린다

꿈속에서, 멸종된 나뭇가지에 피어난

잎사귀를 씹고 있는지

차갑고 싸한 풀냄새를 베개에 흘린다

성에가 유리창을 꽉 붙드는 아침

내 이빨에 낀 푸르스름한 비린내도

미지근한 하품도 사랑한다

혜가 나의 하품 속으로 천천히 들어와

언 손바닥을 녹일 때

혓바닥 아래엔 맑은 침이 고인다

올해는 꼭 발가락이 넷뿐인 딸을 낳자고

연습장에다 내 코를 그린다.

식은 방바닥에 엎드린 혜가

나만을 사랑하는 동안

11월의 첫눈이 내린다

혜는 유리창에 손가락을 대고

마른버짐만 한 바깥을 만든다

낮은 담장 위의 눈발과

새의 몫이었던 가지 끝에 열매들

흔들리고 있는

풍경은 풍경 속에서 투병중이다

혜는 나를 사랑한다

 

 

그을음과 성에를 위한 미사

 

 

건반 하나가 내려가자

흐릿한 손끝을 향해 우리는 호흡을 모았지

오래 굶주린 짐승의 폐에서

들을 수 있다는 정적

그의 지문이 파르르 떨고 있었지만 아직

연주가 시작된 건 아니었어

횃불로 타오르던 몸과 얼어붙은 몸

몇몇은 오래 참은 울음을 터뜨렸고

그을음과 성에를 닦아내며 노인들은

언 유리창을 뚫지 못하는 햇살을 안쓰러워했지

더듬더듬 유언을 중얼거리는 그가

손가락을 떼어도 내려간 건반은

다시 올라오지 않았어

미신이 없는 음악을 상상할 수 없었지만

우리가 자주 용서와 헷갈려 하던

하나의 음정을 잊는다는 것은 몸을 잃는다는 거

굳은살처럼 두꺼워진 빙판 위에선

서로 먼저 넘어지기 위해 말을 아꼈지

발자국이 발자국을 따라잡지 못하는

긴 운구 행렬을 따라

짐승만 알던 길은

아무도 모르는 길이 되었어

 

 

와상

 

 

모로 누운 여자의 엉덩이는 황달처럼 환하네

은행나무 젖은 낙엽들이

한 장 한 장 손바락으로 옮아오는 밤

강물에 오래 씻긴 자갈들 사이로 손 집어넣고

그녀 몸속 느린 물살을 듣네

손끝에 비늘을 벗고 사라지는 물고기들

나는 폭우가 지난 뒤 물구경 가는 노인처럼

느릿느릿 물가로 걸어가

자라지 않는 발목만 두고 오네

한밤중 골목 가로등 아래 피워 놓은

모깃불 백발처럼 흔들리고

팥 쭉정이를 골라내며 사람들 서로의 손금을 보네

굽은 길 끝에서 번지는 밥 타는 냄새를 맡네

바람이 걸어 들어와 나가지 않는

몸속의 뼈, 뼛속의 뿌연 안개로 가득 찬 집

여자는 내 손을 잡고

이파리 몇 남지 않은 썩은 은행나무 그늘에 앉네

부러진 가지들이 떠내려오는

물살에도 흔들리지 않네

한 그루 은행나무를 혼자 흔드네

 

 

* 이범근

1985년 경북 봉화 출생

한양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현재 홍대부속고등학교 재직

 

 

* 심사평

 

 

 응모 신인들에게

 

 신인상에 응모해 주는 많은 신인들에게 실로 감사하다는 인사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시를 사랑하는 그 마음이 귀하지 않을 수 없고 무엇보다 오염된 기성의 어떤 시인들보다도 그 갈망과 집중의 순정성으로 우리 시의 계승을 도모해가는 그 신선한 모습들이 어찌 감격스럽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이번에도 1,000여 편의 시들을 읽으면서 뛰어난 작품들에서는 놀라움을, 아직 서툴고 객기가 앞서는 작품들에서는 그것들대로 사랑스럽고 소중함을 깊게 느끼는 행복을 누렸다.

 

 특히 개인적으로 감사하는 것은 무엇보다 이십여 년이 넘게 신인 응모작품을 쳔여 편이 넘게 매기마다 집중적으로 읽어오는 동안 나의 시 독해능력이 향상되었다는 점이다. 작품 자체의 이해는 물론 선도와 우열을 가릴 수 있는 분별력 또한 나름대로 그 기준을 지니게 되었다고 자부한다. 또 한 가지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내 작품의 긴장과 탄력, 투시력, 무엇보다 중요한 선도를 잃지 않는 상상력이 여기서  크게 얻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래도 생리적인 내 나이의 세포들이 생성해 내는 힘만으로는 딸리는 그 힘이 生藥처럼 부작용이 없이 내 등을 밀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신인응모 작품 읽기는 이래서 내가 내놓지 않고 있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장요원, 이범근, 김도연의 작품들은 나도 내심 누가 뽑혀도 좋겠다는 탄생의 點指를 엄숙하게 하고 있었는데, 오태환, 우대식, 고봉준 세 분 심사위원들께서도 의견을 같이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지적은 세 분의 의견을 따르기로 하거니와 다만 김도연의 것에 대하여 한 말씀 남긴다. 그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초월적 투시와 발견에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점이 시의 묘를 뚫지 못하고 있음이 아쉬웠다. 다음 기회를 보기로 하였던 점 여기 밝혀둔다.

 

 끝으로 응모작품 가운데서 1925년 10월 30일 生이라고 또박또박 적어 응모한 86세의 閔仲鉉 선생의 작품을 발견하는 놀라움이 있었음을 여기 또한 밝혀두지 않을 수 없다. 1944년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 1947년 졸업하신 분이다. 노년의 소일거리로 쓰신 작품이라고만 볼 수 없는 한 <희망>의 실체, 그 살아 있음을 보았다 ■ 

                   ㅡ정진규 (본지 주간. 시인)

 

 

 

  신인으로서의 가능성에 눈길을 주며

 

  마지막까지 논의된 작품은 김도연의 「희망버스는 내일 」외 9편, 정광덕의 「강가에서 」외 9편, 이범근의 「延着」외 9편, 장요원의 「풀리고 있는 오전 」외 9편 등이었다.

 

 김도연은 안정적이면서도 탄력을 잃지 않는 숨결로 대상을 탐색해 가는 능력이 두드러져 보인다. 그러나 때로 상식 바깥의 빈 공간에 시의 묘미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지나쳐 시 읽는 맛을 희석시킨다. (「희망버스는 내일」) 정광덕은 관념을 물질화해서 관념의 질곡으로부터 그것을 해방시키는 법을 안다.(「강가에서 」)

 

 심사자들은 이범근과 장요원의 작품들을 선에 올리기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물론 이 두 분의 솜씨가 앞의 분들에 비해 월등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범근은 부분적으로  시단 한 귀퉁이의 흐름을 베끼고 있다는 의심을 사며, 장요원은 언어가 거칠어 다듬어야 할 구석을 적잖이 드러내는 문제를 안고 있다. 어쩌면 완성도에 있어서 더 떨어진다고 여길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들에게 눈길이 간 것은 신인으로서의 가능성에 더 높은 점수를 매겼기 때문이다.

 

 이범근은 세계가 안에 숨기고 있는 질서를 핀셋으로 끄집어내어 나름의 시각으로 접근한다. 그의 상상력은 얼핏 여과되지 않은 날것으로 奔流하는 듯하지만 때로는 쾌활하게 때로는 환멸적으로 생의 기호를 재해석하면서 의미의 영역을 개척한다.

 장요원은 대상을 집요하게 천착하는 사유의 힘이 돋보인다. 물과 바람을 질료로 조직된 그의 이미지들은 낯이 익은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유인하는 어떤 힘이 있다. 그 힘은 각각의 이미지들이 서로 길항하는 것 같으나 내적으로 어떤 조화와 균제미를 획득하고 있는 데서 우러나오는 듯하다.

 두 당선자에게 축하의 말씀을 전한다. 더욱 정진하기를 바란다 ■

                                                                                                       ㅡ오태환 (시인)

 

 

 

 끝까지 정진하시기를 바라는 마음

 

 약 백여 분 이상의 응모 시 가운데 열 분의 작품을 대상으로 검토한 끝에 세 분의 작품을 대상으로 당선작 논의에 들어갔다. 장요원, 이범근, 김도연 이 세 분의 작품들은 일단 모두 당선권 내에 들 수 있는 수준이었다. 심사를 진행하면서 두 가지 의견이 제시되었다. 작품 한 편 한 편 그 자체로 완성도가 높은 것과 편차가 있지만 열린 가능성의 세계를 탐구하는 작품 가운데 어느 것을 앞에 둘 것인가에 대해 여러 논의가 진행되었다. 논의를 지켜보던 정진규 주간께서 각각의 면에서 작품의 진정성이 투철하게 확보되었다면 전례는 없지만 두 명의 당선자도 괜찮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한 사정 속에 장요원과 이범근 두 분의 작품을 공동 당선작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더러 작품의 염결성 측면에서 당선자를 내지 않는 일간지나 잡지가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탓에 조심스럽기까지 하였다.

 

 장요원의 시들은 시어의 운영 측면에서 안정적이면서 개성적인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관념적인 주제를 유연한 언어로 풀어가는 힘이 돋보였다. 그러면서도 사물과 자신을 바라보는 시점에 위악적인 포즈가 없다는 점도 높이 샀다. 「춤 」같은 작품은 빨래라는 일상적인 대상을 시적 소재로 삼아 경쾌한 보폭으로 시를 이끌어 가면서도 <눅눅한 관절이 경쾌해진다>와 같은 시적 구사를 통해 삶의 비의적 요소들을 추출하고 있었다. 「풀리고 있는 오전 」도 범상치 않은 시선을 통해 일상의 부면을 생경한 이미지로 치환함으로써 새로움을 얻고 있었다. ,잎들이 날아간 빈 가지 아래/ 개미 떼가 다 풀어간 실패 같은/ 뼈들만 얽혀 있었다>와 같이 수일한 표현들은 사물의 이면을 직시하고자 하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인다. 생성이나 생명에 관한 다양한 이미지 구사도 눈여겨본 부분이다.

 

 이범근의 십여 편의 작품들은 고르지 않았다. 여러 번 읽어보니 그의 우수한 몇몇 작품들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있는 것들이었다.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칠 때 시가 실패하고 있었다. 「雪山의 원근법」과 같은 시는 읽을수록 매력적이었다. 광포한 의식의 저변을 강렬한 언어로 형상화한 이 시는 자기 고백적이었음에도 시구절의 연쇄 고리가 유연하게 얽혀져 가독성에 큰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 <뜨거운 소실점이 핏물에 떠 있을 때 까지/ 거기서 새들은 찬 날개를 녹일 것이다>와 같은 구절은 생에 대한 치열한 태도, 좀 더 좁혀 말한다면 시에 대한 자기 동일성의 확인으로 읽히기도 하였다. 치열함, 시에서 그만한 소산은 ?을 터이다. 「그을음과 성에를 위한 미사 」, 「와상 」과 같은 작품들은 현실과 환상이 교차되면서 만들어내는 여러 이미지들로 인해 여러 번 읽게 하였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힘이 있었다.

 

 낙선한 작품들을 여러 번 뒤적였다. 아까운 작품들이 많았다. 특히 본심에서 끝까지 논의된 김도연의 작품들은 여러 면에서 우수하였으나 모든 의미망을 뚫는 마지막 한 구절이 아쉬웠다. 곧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당선된 두 분 모두 축하드린다. 시가 무슨 종교도 아니지만 큰 결심과 발원이 아니면 끝내 도달할 수 없는 측면을 포함하고 있는 장르라는 점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산소가 희박해지는 지경을 만날 것이다. 끝까지 정진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ㅡ우대식 (시인)

 

 

 

 시적 안정감과 실험성의 사이에서

 

 안정감이 빛을 발하는 작품들은 그 문학적 성취에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며, 실험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은 기존의 틀을 깨는 참신함과 발전 가능성에 높은 점수를 받는다. 그래서 문예지나 신춘문예의 신인상 제도는 대개 시적 안정감과 실험성 사이에서 선택되게 마련이다. 이번에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열 분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실험성보다는 안정감에 집중된 작품들이 많았다. 이것은 예심 과정에서 실험성을 추구한 작품들의 대부분이 단순한 형식적 실험에 머물렀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응모작들 가운데 장요원과 이범근의 시가 단연 눈에 띄었다. 처음 심사자들에게 주어진 선택의 가능성은 한 명을 뽑는 것이었으므로 두 사람의 응모작을 두고 심사위원들이 토의를 시작했다. 두 사람 모두 시적인 안정감이 특징적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장요원이 한층 전통적인 감각에, 이범근이 도시적인 감각에 근접해 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시적 경향은 달랐다. 그래서 심사위원들은 두 사람 모두에게 당선작의 영광을 주기로 합의했다. 서정적인 언어가 돋보이는 장요원의 시도 좋았지만, 이미지의 투명함이 두드러지는 이범근의 시도 장요원 작품에 필적할만 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범근의 투고작들 가운데 몇 작품은 그 이미지의 형상화가 지나치게 익숙한 서정적 승화의 방식을 취하고 있어서 아쉬움이 남았음을 밝혀둔다.

 

 이들 작품 외에도 정광덕, 김도연의 작품이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완성도에 있어서 편차가 심하다고 판단되어 선뜻 선택하지는 못했다. 신인의 최대 미덕은 기존의 시적 어법과는 다른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자세에 있을 것이다. 부디 두 사람의 당선자가 상투적인 서정의 어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감각으로 빚어낸 작품을 쓰는 시인으로 자리잡기를 희망한다.■

                                                                                         ㅡ고봉준 (문학평론가)

 

 

 

ㅡ《현대시학》 2011,10월호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