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강론
김미승
펼치면 먹먹한 먹지 같은 하루라구요?
웬걸요, 그 위에 우북우북 쌓이는 생각의 알갱일랑
쫘악 펴버리세요, 이미 적당히 간 들어간
꿈들, 얌전히 엎드리는 굴욕도 아름답잖아요
참, 흑백의 논리는 설명이 안되겠네요
좀더 선명한 알리바이가 필요하세요?
들끓는 세상에 풀죽은 시금치, 그 퍼렇던 객기
기억하시죠? 본색 수상한 단무지와 등 기대는 거
보여요? 제 성질 못 버리는 얼굴 불콰한 햄이랑
얄팍한 변신이 뛰어난 계란의 찰떡궁합,
얼마나 힘차게 끌어당기고 있는지
그리고 다들 함께 이러구러 둥글게 말리는
저 속 꽉 찬 생 말이에요,
날 잘 벼린 알량한 이성의 칼날 쓱쓱
가슴께를 베고 가면 어떡하냐구요?
그야 산다는 거 무늬 하나 만들어가는 일
어디를 베어낸들 선명한 알리바이라면야
무슨 대순가요, 모쪼록 요약되어지는 세상에서
뼈째 썰리는 황홀한 고통쯤 감내하셔야죠
잘 생각해보시도록.
―1999 겨울, 〈작가세계〉 등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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